지극히 개인적인 이유
캐나다가 살기 좋은 이유
캐나다의 좋은 점을 논하면 아마 누군가는 워킹홀리데이 1년밖에 안 다녀왔으면서 환상만 가져간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그 말이 물론 맞다. 하지만 한국에 살기가 힘들어서 뛰쳐나온 것이라 캐나다가 선택지 중 하나였고 1년 살다 보니 괜찮네 싶은 것이다. 그러니 캐나다가 천국이라고 얘기할 수는 없다.
퇴사 전 회사에서 상사에게 한국 문화가 잘 맞지 않는 성향이라고 들었다.
정확히 보신 것이다. 대화할 때는 절대로 속내를 보이지 않고 회사 사람들에게 선을 긋고 회식은 업무의 연장이었던 것이 상사에게 다 보인 것이다. 난 그들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나는 백조의 호수의 오리였을 뿐이였다.
나를 괴롭힌 건 구조적인 이유에서 오는 괴로움이었다. 왕복 2시간 넘는 통근시간과 포괄임금제로 야근수당 없는 야근, 집에 돌아오면 9 시인 하루를 5번 보내고 이틀간 잠시 쉬는 나날들이 점점 숨통을 조여왔던 것이다.
퇴사하기 세 달 전부터는 증상은 날로 심각해져 금요일 퇴근하는 순간부터 월요일 출근 걱정에 마음이 불편했다. 일주일 중 7일이 힘든 나날들을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받는 월급이 그간 보상을 충분히 해주냐 하면 그것은 아닌지라 들인 노력에 비해 보상이 적다고 생각했다. 그럼 당연히 업무의 효율과 재미가 떨어지고 나에 대한 자존감은 점점 낮아져 스스로를 좀먹어 드는 수밖에 없었기에 회사와 나를 위해 그만둔 것이다.
캐나다는 이에 대해 높은 최저임금이라는 해결책을 선보였기에 나는 캐나다가 살기 좋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앞선 글에서 하루에 5시간씩 5일만 일해도 120만 원을 번다는 계산이 나왔다. 나의 경우, 한국에 돌아오기 약 4개월 전부터 스타벅스와 레스토랑을 병행해서 일을 했었다. 그러면 스타벅스에서 한 달 평균 120만 원을 벌고 레스토랑에서 서버로 일하며 추가로 60만 원 정도를 벌었으니 한 달에 약 180만 원을 벌었단 것이다. 그래서 캐나다행 편도 티켓만 들고 온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행 티켓과 뉴욕 여행까지 얻고 돌아온 것이다. 중간에 텍스 리턴 받은 것은 LA 여행으로 소진했다.
스타벅스에서 파트너로 레스토랑에선 서버로 일하는 것은 나의 몸을 쓰지 않으면 소득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물론 유급휴가 정책이 있다.) 그러므로 노동을 하며 다가올 월급에 대한 기대감과 순수하게 노동으로 발생하는 성취감과 기쁨은 덤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내가 사람을 대하는 직종에 강하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언어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어서 그렇지 사람들과의 스몰 톡 속에서 얕고 넓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루에 5시간만 일하면 나머지 시간은 장을 보고, 공원에 산책을 다녀오고, 낮잠도 자고, 온종일 그 시간을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기에 활력을 끊임없이 얻는다.
그리고 이 부분이 바로 엄마가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로 그 지점이다.
엄마는 그럼 그렇게 살면 저축은 어떻게 하며, 살 집도 없어서 죽을 때까지 월세만 내다 끝나냐고 말이다. 즉 미래를 위한 대비 없이 어떻게 오늘만 보고 사냐는 말이다.
이 글을 보는 엄마가 있기에 나의 의견을 조심히 피력하자면, 이 것은 엄마와 나의 사회적 배경이 달라 생기는 가치관의 차이라 생각한다. 엄마의 젊은 시절은 은행이자가 10%였고 그때 샀던 부동산은 지금 뒤에 0이 몇 개가 더 붙었을 것이다. 취업난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기에 안정된 직장에서 저축만 꼬박꼬박 하면 큰돈이 쌓이는 시절이었다. 하지만 나의 젊은 시절은 은행이자가 0%에 근접하고 이미 저 멀리 가버린 부동산 가격은 내가 감히 꿈을 꿀 수도 없다. 직장 또한 더 이상 안정적인 고용을 약속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미래가 없는 젊은 세대는 현재 즉각적으로 얻을 수 있는 여행, 명품 소비에 열광하는 것이다. 이런 젊은 세대의 추세가 캐나다 생활방식과 잘 맞물려 있기에 좋다고 말한 것이다.
캐나다 영주권 하면 유명한 것이 바로 연금이다. 연금제도 및 노후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어서 젊은 시절에 여행을 다니고 소비에 열중한다 해도 노후에는 정부에서 제공하는 저렴한 아파트에서 거주하며 취미를 즐길 수 있다. 캐나다는 은행에 돈을 저금하면 오히려 내가 돈을 내야 한다. 이자는 대출이자에서만 가능한 단어이다. 일단 영주권을 갖게 되면 모기지 대출로 집을 마련하고 최저 임금이 높으니 열심히 일하면 모기지를 갚아가면서 일을 할 수 있다. 혹시 가족이 있는 경우에는 자녀의 교육비가 무상이고 추 후 대학 등록금은 외국인 학생에 비해 절반 정도인 가격으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물론 본인도 진학이 가능하다.
경제적인 이유가 높은 최저임금으로 답이 될 수 있다면 이 점은 비판의 소지가 다분하다. 소규모 사업자의 경우에는 인건비가 부담스러울 것이다. 일단 레스토랑은 인건비를 보상받는 방법이 있다. 손님들에게 그 몫을 돌리는 것이다. 레스토랑의 업주는 최저임금으로 사람을 고용한다. 하지만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것은 서버, 요리사 모두가 육체노동으로 만들어지는 고된 직종이기 때문에 최저임금만으로는 사람을 구인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손님들이 팁을 내는 것이다. 최저임금만으로 부족한 보상을 손님들의 팁으로 추가하는 것이다. 이 팁의 금액이 만만치 않다. 식사금액의 최소 10퍼센트 이상을 내야만 한다. 10퍼센트를 받으면 내가 뭐 잘못했나 싶다. 그래서 팁을 많이 받기 위해서 손님들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면 결과적으로 레스토랑에 오는 손님을 유지하거나 더 불러 모을 수 있으니 업주로서도 아쉬울 것이 없는 것이다.
캐나다는 최저임금이 높은 것 뿐 아니라 고된 노동에 대해 그에 따른 정당한 노력의 대가가 주어진다.
가게 앞 건물 공사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쉬고 있는 사진이다. 언니에게 들었는데 이렇게 젊은 사람들이 공사장에서 일을 하면 돈을 아주 많이 버니까 공사가 끝나면 다시 신나게 약을 하거나 클럽을 가서 노는 등 벌어둔 돈을 다 쓸 때까지 쉰다고 한다.
그들이 돈을 어떻게 소비하냐는 논외로 하더라도 육체 노동자에게 큰 보상을 준다는 것은 캐나다가 살기 좋다는 방증일 것이다. 한국은 육체노동에 크게 주안점을 두지 않는다. 그러니 사람들은 어쩌면 생명이 위험할지도 모르는 육체노동을 기피하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그 결과 회사에 취직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방안이고 이에 따라 어느 회사에 가는지 더욱 경쟁은 치열해졌다. 더 이상 회사가 안전지대가 아닌 것이 드러난 IMF 이후 공무원과 공기업 등의 근로 안정성이 보장되는 곳으로 쏠림 현상이 발생한 것은 노동에 따른 정당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것이 그 근본적인 원인이라 생각한다.
솔직히 터놓고 말하면 한국은 직업의 귀천이 있지 않은가. 캐나다도 마찬가지이다. 화이트칼라 직종이 우선시되는 것은 캐나다도 똑같았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처럼 계급이 분리되지는 않았다. 개인적인 문화와 더불어 육체노동을 하는 건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하는 개인의 선택에 따른 결과일 뿐이니 소시민들은 크게 연연하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육체노동을 하는 것이 개인의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캐나다에서 공부하고자 하면 할 수 있다. 교육비와, 나이에 대한 불안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학을 나와서 화이트 칼라 직종으로 가는 것이 즉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놓아졌다는 것일 의미한다. 캐나다 시민권자나 영주권자는 외국인 유학생에 비해 거의 반 값 수준의 등록금을 지불하면 된다. 그러니 만약 주변 환경에 의해 기초교육만 이수했다면 추 후 성인이 되어 돈을 벌고 다시 대학에 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멀리 돌아와도 늦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다. 하지만 캐나다는 나이를 물어보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이력서에 나이를 기재하지 않아 오로지 커버레터의 경력으로 인터뷰까지는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있다. 굳이 비교하고 싶진 않지만 한국의 이력서와 캐나다의 커버레터를 보면 극명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출처: http://220.90.193.66/xe/board_WWzc65/4057한국의 이력서만 보면 지원자의 성별, 외모, 나이 그 모든 사적 정보가 그대로 노출되어있다. 어느 이력서 양식은 가족관계도 기재하게 되어있다.
캐나다의 이력서이다. 전화번호 및 주소를 제외한 개인 정보를 기재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늦었다는 불안감 없이 늦은 만큼 본인이 skill highlights에 기재할 것이 많아지니까 누군가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나이에 대해서 자유로운 분위기는 이어져서 노후에 대한 걱정이 한국에서보다는 덜하다.
미국에서 가장 충격받았던 일은 필라델피아 여행 중 미술관에서 일어났다. 필라델피아 미술관을 자세히 투어 하고자 도슨트의 설명을 듣고자 투어 시간에 맞추어 로비로 찾아갔다. 로비에서 관람객들을 맞이해 준 도슨트는 머리가 하얗게 샌 할머니였다. 사실 관람객은 나랑 다른 사람 단 둘이라 더 자세하게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미술에 대한 그분의 지식과 교양이 어느 전문가와 못지않았었다. 필라델피아 미술관뿐만 아니라 메트로 미술관, 하버드 인포메이션 센터에서도 나이 많으신 분들이 헬프 데스크에 계셔서 일을 하셨다. 심지어 러시아 블라디보스크의 미술관에서도 연세가 지긋한 노인 분들이 전시관내에서 작품을 지키고 있었다.
미국의 노인들이 한국 노인에 비해 더 똑똑하다는 말은 당연히 아니다. 나는 그분들의 모습에서 미국의 짧은 역사 속 오랜 근대화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아주 오래 전 부터 근대화를 이룬 결과 교육에 대한 접근성, 여성 문제 등의 사회적 문제 해결을 거듭하니 지금의 노인들이 오래전부터 교육을 받아 학식 많은 분들이 많이 계신 것이다. 또한 나이에 대한 건 문제가 되지 않은 곳이니 당연히 사회 곳곳에서 노인을 많이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로 잃어버린 30년 동안 우린 이 것을 놓친 것이다. 이후 근대화의 속도는 그 누구보다 빨랐지만 시민의식의 발전 속도가 이를 쫓아가지 못해서 노인들의 복지가 다른 국가들 만큼 이루어지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자식보다 노인이 되기까지의 시간이 더 빠른 부모님 세대는 당연히 본인들의 윗 세대를 보며 노후에 대한 불안감으로 자식 세대보다 더 초조하니 나와 엄마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갈등을 빚는 것이다.
카페에서 일하다가 노인들의 주문을 받는 데 그분들은 다양한 음료를 본인의 취향에 맞게 주문했다. extra hot이면서 우유 거품을 많이 넣은 업사이드 다운 라테를 주문하시는 분도 계셨고 달달한 걸 좋아하시는 분은 캐러멜 마키아토를 주문하셨다. 사이즈에 대한 설명은 할 필요도 없었다. 이 분들을 보자니 한국에 계신 할머니가 떠올랐다. 할머니가 젊은 시절 다방은 많이 다니셨을지 몰라도 현재 카페 출입은 나랑 있을 때 말곤 이용하지 않으니 말이다. 한국에서 노인이 스타벅스에서 음료를 주문하는 건 그리 흔치 않은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분들을 보며 나도 노후에 체력적인 이유로 지금과 같은 활동을 할지 못하더라도 시류에 맞는 문화를 향유하고 유지할 수 있도록, 그리고 어느 방면의 전문가가 되어 은퇴 후 봉사활동으로 사회에 도움이 될만한 일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기술의 발달 속도보다 더딘 시민의식의 성장 속도도 나와 같은 젊은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느 선에서 맞춰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때 노인복지에 더욱 신경 쓰는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도 살기 좋은 나라가 되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