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맞는 느낌은 어떨까?’ 호기심에 가출하기로 결심한 지 5분 만에 빗소리가 가늘어진다. 그녀가 오기 전에 비가 그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비 한 방울 맞아 보고 싶은데. 오늘 따라 그녀가 늦는다. 침대 밑 세상이 습기로 축축하게 젖어간다. 나는 까치발을 들고 방안을 어슬렁거리다 캣타워로 껑충 오른다. 비가 오는 날에는 캣타워도 침대도 이불도 물먹은 솜처럼 무겁고 눅눅하다. 오늘 그녀가 제습기를 돌리고 거실에 쪼그려 앉아 인간 세상 이야기 들려줄 것 같다. 제습기가 물기를 걷어 올리든, 그녀가 인간세상 인간 흉을 보든, 그녀가 돌아와 대문을 열면 그 틈 사이로 가출을 해야겠다. 그녀의 발소리가 들린다. 자신이 늦은 걸 알았는지 숨찬 걸음을 옮긴다. 가까워지는 내 페로몬 냄새. 캣타워에서 내려와 대문 앞에 자세를 잡는다. ‘끼익’ 대문 여는 타이밍에 맞춰 달렸다. 빗방울을 향해 번개처럼 달려나갔다.
가출에 성공했다! 계단을 지나 마당으로 직진, 빗방울이 내 볼록한 정수리를 적신다. 빗물은 눈물처럼 털 속을 파고들어 오래된 기억을 끄집어낸다. 내가 아깽이였을 때, 내 머리에 닿았던 그녀의 눈물처럼 안쓰럽고 서글프다. 비릿한 비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힌다. 킁, 킁. 코를 벌렁거렸다. 짜릿했던 가출은 뒤따라온 그녀의 손에 잡힌 채 막을 내렸다. 대문 한쪽에 세워둔 차 밑에서 어미 고양이가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낸다. ‘왜 그래 아가야’라고 야옹거리며. 그녀의 품 안에서 아깽이 둘이 추운지 파르르 몸을 떨어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