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고양이 묘연 만들기

by 이장순

얼굴이 백지장 같다는 말은 언제 쓰일까? 바로 지금 같을 때 쓰일 것이다. 가출을 감행한 나를 붙잡은 그녀의 얼굴은 백지를 벗어나 파랗게 변했다. 신발도 안 신고 정신없이 내 뒤를 쫓아온 그녀는 나를 방바닥에 내려놓고는 울음을 터트려버렸다. 울면서 같은 말을 여러 번 한다.

“깜짝 놀랐잖아, 가출하면 죽는다고.”

집고양이는 길고양이와 달라서 밖에서는 못 산다며, 우는 건지 화를 내는 건지 모를 말을 웅얼거렸다. 비를 맞아보고 싶다는 소원을 이루었으니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구슬처럼 흐르는 그녀의 눈물 앞에 숙연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제습기 돌아가는 소리와 훌쩍거리는 소리가 오랫동안 방안을 떠다녔다. 오늘 밤 편히 자기는 틀렸다. 창문 밖에서 기침 소리를 내는 노란 길고양이 오빠. 아마도 어미 고양이에게 나의 가출 소식을 전해 들었나보다.

“정말 가출했었어? 우와! 너 용기 있구나. 다음에 가출할 때는 나한테도 말해줘. 내가 도와줄 수 있어. 길고양이 세상을 구경시켜 줄게. 꼭 보여주고 싶어. 성공하도록 도와줄게!" 길고양이 오빠는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서 밤새 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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