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 냥이가 되고 싶은 거야?” 그녀의 물음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는 그런 나를 보고 웃는다. 외출? 하고는 싶다. 외출은 하고 싶지만, 길고양이의 삶은 좀 생각해 봐야겠다. 자유를 만끽하면서 자유로운 묘생을 산다는 것도 나름 의미 있는 일이겠지만, 창문 밖에서 가출을 유혹하는 오빠에게 선뜻 '도와줘'라고 못했던 것은 결국 내가 자유로운 묘생을 원하지 않는 탓일 거다. 지금 익숙한 평화와 안식을 위험한 자유와 바꿀 수는 없으리라. 또한, 이모의 배려가 내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킨 탓도 있으리라.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그녀의 이모가 온다.
캔을 먹고, 이를 닦고, 이동장에 들어가 피아노 선율에 자장가 음률이 기막힌 아름다운 커피숍에 가서 단잠을 자기 때문에 지금 난 만족할만한 묘생을 살고 있다. 그녀도 아마 만족할만한 집사 인생을 살고 있지 않을까? 밤마다 행해지던 우다다가 줄었으니까. 우다다가 줄고 그녀의 팔을 붙잡고 숙면하는 시간이 많아졌으니까. 우리 둘 다 꽤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