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은 어떻게 부모가 됐을까
이제는 끝내야 할 때다. 햇빛이 유난히 따스했던 어느 토요일 아침, 잠에서 깬 나는 생각했다. 브런치북 <부모님은 어떻게 부모가 됐을까>의 마감을 앞둔 날이었다. 흰색으로 가득찬 컴퓨터 화면에 글자를 새겨 검게 만드는 일은 항상 어려운 일이었지만 이날은 마음먹기가 유독 힘들었다.
내 몸과 정신을 붙잡고 끈덕지게 매달리는 침대를 겨우 떼어냈다. 그리고는 컴퓨터 책상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억지로라도 노트북을 열어 글을 써볼 심산이었다. 흰 배경화면에 커서가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한참 반복했지만 별다른 진척은 없었다.
이내 글쓰기를 포기하고 노트북을 소리나게 덮었다. 마음이 무거웠지만 마음이 가벼워지기도 했다. 짐같던 노트북을 한켠에 밀어두고 마음의 소리에 집중했다. 이제는 끝내야 할 때다.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브런치북 <부모님은 어떻게 부모가 됐을까>는 나의 부모님이 부모가 되기로 결심했을 즈음의 나이가 된 내가, 어린시절을 돌아보며 그들의 마음을 이해해보자는 노력의 일환으로 시작됐다. 어릴적에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일들도 지금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을 보며 떠올린 생각이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알게 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생각보다 그들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야기보따리일 것 같았던 나의 예상과는 달리 나는 부모님과의 기억을 쉽게 끄집어내지 못했다. 설령 기억한다하더라도 사실관계조차 판단하기 어려웠다. 나의 기억만으로 그들의 속마음을 예측하는 건 분명 한계가 있었고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도 없었다.
하지 못한 말도 참 많았다. 부모님과의 경험을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내야하다보니 어느 정도까지 공개해야하는지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나의 마음에 적지 않은 상처를 줬던 일들은 다시 떠올리기 싫어 쓰지 않았고, 부정적인 이야기는 나도 모르게 피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쓸 수 있는 이야기는 제한적이었다.
그럼에도 이번 프로젝트가 의미있었다고 생각한다. 흐릿했던 과거의 기억이 선명해졌고, 조금이나마 그들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과장이나 비약은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왜곡은 없었다고 자신할 수 있다. 아직 세상에 남겨진 그들의 기록이 없다는 점에서도 내 기록은 부모님을 기억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유용할 듯 싶다.
언젠가 나의 부모님을 다루는 시도를 다시 해보려 한다. 그때는 나의 기억을 더듬어 전하는 간접 화법이 아니라 인터뷰 형식의 대담집이면 좋겠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목소리를 평생토록 기억하려면 녹음파일 하나 쯤은 갖고 있어야 한다고 누군가 말한 적 있다. 당시에는 흘려들었던 이야기지만 미자 씨가 외할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하는 것을 보고 그 말이 다시 떠올랐다. 녹음파일도 좋지만 그들의 인생을 선명하게 기록한 글이 내게는 더욱 의미있을 것 같다.
<부모님은 어떻게 부모가 됐을까>의 다음 이야기는 에필로그가 될 것 같다. 만나면 어색한 가족을 극복하려는 부모님과 우리 형제들의 고군분투 이야기가 담길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