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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스 Jul 06. 2024

넘버원

부모님은 어떻게 부모가 됐을까

"자자~ 카메라 보고, 다 같이 손가락 하나 들어봐라. 따라 해봐 넘버원"

영문을 알 수 없는 요구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그는 한 마디 덧붙인다.


"이번이 첫 모임이니까 숫자 1로 표시하는 거다. 한 장만 더 찍어보자 넘버원!"

한 장만 더 찍자는 그의 말과 달리 사진 촬영은 몇 번의 '넘버원'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끝이 났다. 찍힌 사진을 확인한 그는 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길남 씨에게 이날은 무척 의미 있는 날이었다. 모처럼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여행을 왔기 때문이다. 여행이라고 해봤자 집에서 고작 20분 거리에 있는 오토캠핑장이었지만, 그는 비행기라도 탄 듯 들떠 보였다. 가족끼리 마지막 여행을 떠난 게 언제인지조차 기억이 안 날 정도니 그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평소 "비싸고 거창하기만 하다"며 멀리했던 아이스크림 케이크와 와인을 기어코 구매하는 것으로 설레는 마음을 표현했다. 자식들이 도착하기 전에 무엇을 살지, 어디에서 살 지까지 고민해둔 그였다.


"이번에는 집 근처로 왔지만 다음에는 큰아들 있는 서울도 가고, 작은아들 있는 부산도 가고, 딸내미 있는 대전도 가고 하자"

길남 씨의 목표는 확고했다. 더 자주 모이고 더 좋은 곳에 놀러 가고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눠 먹는 것.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결코 쉬운 일도 아니었다. 여행 가자는 이야기가 나온 지 거의 1년 만에 일정이 정해진 걸 보면 말이다. 길남 씨의 자식들은 어느덧 다 직장인이 돼 시간 비우는 게 쉽지 않았고, 어렵사리 낸 시간에 '가족을 만날 마음'을 채우는 건 더욱 어려웠다.


아이스크림 케이크에 꽂은 촛불이 꺼지고 기념사진을 한두 차례 더 찍고 난 뒤 한바탕 술판이 벌어졌다. 태양이 이제 막 하늘 한가운데 뜬 참이었다. 돼지고기와 회, 산낙지, 해삼 등 각종 먹거리로 테이블은 넘칠 듯했고, 오가는 술잔 속에 우리는 모두 금방 얼큰해졌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자식들에게 술을 마시지 말라며 잔뜩 겁을 주곤 했던 길남 씨였지만, 이제는 당신이 신이 난 듯 빈 술잔 이곳저곳을 채웠다.


"아빠가 자랄 때는 이런 게 전혀 없었다. 부모님이 먹고 사느라 바빠서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랬지. 너네 클 때만 해도 아빠도 아빠 부모님이랑 비슷했던 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이런 모임도 하고 하니까 아빠는 기분이 너무 좋다. 이번에는 1년 만에 한 번 모였지만 앞으로는 상반기, 하반기마다 한 번씩 모여서 얼굴도 보고 하자"

얼큰해진 길남 씨는 말을 마치고서 쑥스러운 듯 안주를 찾아 헤맸다.


"그래 명절이고 뭐고 집에서 모이면 저녁 먹고 서로 나가기 바쁜데 이렇게 놀러 오니까 얘기할 시간도 많고 좋네"

옆에 있던 미자 씨도 모처럼 길남 씨의 편을 들었다.


레드와인인 줄 알고 산 샹그리아를 홀짝홀짝 마시던 길남 씨는 밥을 먹다 말고 무엇인가를 찾았다. 그가 주섬주섬 꺼낸 건 다름 아닌 반지 호수 측정 도구였다. 크기가 제각각인 원형의 장난감 반지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모습이 꼭 열쇠고리 같았다.

"아빠가 특별히 다른 건 해줄 건 없고, 니들 반지 하나 맞춰주려고. 가족 반지라 생각하고 하나씩 맞춰줄꾸마. 이거 가지고 손에 한 번씩 껴봐라"


길남 씨가 말을 마치자 옆에 있던 동생이 손가락을 펼쳐 보였다. 동생의 손가락에는 자그마한 금반지가 끼워져있었다.

"딸내미는 이번에 대학 졸업 선물로 하나 해줬다. 아들내미들은 아빠가 용돈 모아가지고 하나씩 해서 보내줄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제안에 잠시 놀랐지만 형과 나는 그의 요구에 따라 손가락 치수를 쟀다. 한 번도 반지를 껴본 적 없는 나로서는 무척 생소한 장면이었다.


우리는 하늘에 뜬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먹고 마시고 떠들어댔다. 어린 시절 함께 다녔던 교회 이야기, 친척의 근황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길남 씨는 샹그리아를 먹다 지쳤는지 어느새 방 안 에 들어가 누운 채로 TV를 봤다.


"나도 느그 아버지가 저렇게까지 할 줄 몰랐다. 옛날에는 그저 지삐(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나이 드니까 인자 철이 드나보다"

길남 씨가 사라지자, 미자 씨가 소곤댔다.


"약속도 봐라. 아빠가 너네한테 시간 내라, 시간 맞춰봐라 계속 안 했으면 이렇게 모일 수 있었겠나. 아저씨가 늙으니까 가족 소중한지 아나보다"

미자 씨는 칭찬 같기도 하고 욕 같기도 한 말을 내뱉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그녀는 길남 씨의 바뀐 모습이 싫지 않은 눈치인했다.


무르익는 밤과 시답잖은 대화가 남은 일정을 가득 채웠다. 영화 '서울의 봄'을 틀어놓고 대화를 나누며 남은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처리했다. TV소리가 조용한 걸 보니 길남 씨는 잠에 든 것 같았다. 우리도 술상을 정리하고(우리라고 했지만 대부분은 엄마가 치웠다) 잠에 들었다.


아침이 되자 선선한 바닷바람이 창을 타고 들어왔다. 난 하루 종일 숙소에만 있었던 게 왠지 조금 아까워 산책을 하겠다고 집을 나섰다. 평일에 떠난 여행이라 그런지 고요한 아침 풍경이 맘에 들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가기 싫었던 마음은 바람을 타고 조금 날아갔다.


퇴실 시간이 되자 숙소를 정리하고 집으로 향했다. 대전으로 일찍 출발해야 하는 동생은 이미 친구와 함께 떠났고, 길남 씨는 형과 나를 기차역에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혼자 가는 게 더욱 편했겠지만 그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아빠는 니네가 자랑스럽다. 직장도 성실하게 잘 다니고, 속 썩이지도 않고. 어디를 가도 내가 자식 복은 있다는 이야기는 듣는다. 연락은 자주 안 해도 되니까 돌아가서도 다들 잘 해라이"

그는 어색한 손 인사와 함께 약간 겸연쩍은 말을 남기고는 집으로 떠났다. 나도 서둘러 기차를 타고 살던 집으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며칠 후 길남 씨가 가족 단톡방에 찍었던 사진을 보내왔다. 분명 쉴 새 없이 사진을 찍었는데, 그가 보내온 사진은 대부분 얼굴이 불그스름하거나, 각도가 이상하거나 표정이 어색했다. 그걸 보고는 꼭 우리 가족 모습 같아 왠지 웃음이 났다.



이전 글에서 예고한 대로 브런치북 <부모님은 어떻게 부모가 됐을까>는 여기서 마칩니다.

많은 분이 읽어주시고, 애정어린 댓글도 달아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의지가 약하고 변덕이 심해 꾸준히 연재하지 못해 죄송할 따름입니다.


다음 브런치북은 '살림'을 주제로 한 일상 에세이를 준비 중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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