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에 행복 한 스푼> 6화
남자의 소울푸드는 뭐니 뭐니 해도 돈가스다. 내가 아는 남자 중에 돈가스를 좋아하지 않는 이는 없다. 만약 누군가 돈가스를 싫어한다고 하면, 그를 더 이상 남자로 취급하지 않을 것이기에 이 말의 반증은 성립하지 않는다.
대학가 인근 식당이나 학생식당에서 20대 청년이 밥을 먹는 풍경을 자세히 살펴보라. 혼자 앉은 남성의 식판 위에는 필시 두툼한 고깃덩어리가 놓여 있을 것이다. 고깃덩어리가 없다고? 그렇다면 식당 메뉴에 돈가스가 빠져 있지 않은지 확인하라. 단언컨대, 돈가스는 남자의 혼밥을 완성하는 메뉴다. 고기 위에 소스가 흥건하게 뿌려진 경양식 돈가스를 외면할 수 있는 남자는 드물 것이다. 용기를 갖고 애써 돈가스를 외면하는 이들도 '비돈가스인은 남자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곧 정체성의 혼란을 겪을 것이다.
나와 돈가스의 인연은 꽤 오래됐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이모가 일하던 조그마한 레스토랑에서 그럴싸한 돈가스를 처음 맛본 것을 계기로 나는 그 매력에 흠뻑 빠졌다. 엄마가 사 온 냉동 돈가스와 돈가스 소스의 조합에 감탄했고, 분식집에서는 피카츄 돈가스를 무자비하게 먹어치웠다. 고기와 튀김의 조합이라면 언제나 입맛부터 다셨지만 그중에서도 돈가스는 단연 최고였다.
돈가스 사랑은 청소년 시기에도 이어졌다. 고등학생 때는 돈가스 맛집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돈가스 원정대'를 꾸렸다. 멤버는 주로 4~5명. 할 일은 많았지만 하지 않아 시간이 넘쳐나던 고등학생들이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주말 자습을 강제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평일에는 야간타율(?)학습을 하고, 토요일과 일요일까지 학교에 갇혀 지내야 했다. 모든 학생이 다 그랬던 건 아니고 성적순으로 구분된 이른바 '정독실' 멤버들에게만 적용되는 규칙이었다. 나는 공부를 그다지 잘하지 않았는데도, 모의고사를 한번 잘 쳤다는 이유로 마치 드라마 '꽃보다 남자' 속 '금잔디'처럼 그 멤버에 들어가게 됐다.
문제는 밥이었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급식이 제공되지 않아 학생들이 알아서 끼니를 해결해야 했다. 어떤 날에는 한솥도시락으로, 어떤 날에는 이삭토스트로, 또 다른 날에는 크림빵 따위로 한 끼를 때웠지만 그 어떤 것도 마음에 쏙 드는 게 없었다. 재능도 없는 공부에 매진하느라 잔뜩 예민해진 내 몸은 이미 익숙한 돈가스 소스의 단맛을 갈망하고 있었다. 따뜻하고 바삭한 튀김옷에 달짝지근한 소스의 조합. 이 정도면 토요일 자습의 악몽도 잠시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돈가스 원정대의 의기투합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왜? 남자는 모두 돈가스를 좋아하니까. 우리는 점심시간의 행복을 더해 줄 돈가스 가게를 찾아 헤맸다. 스마트폰은 있었지만 이를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대원이 없었기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몸으로 메뉴를 익혔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보물을 발견했다. 심지어 그 보물은 학교와 1분 거리에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두워도 이렇게까지 캄캄할 줄이야. 친구들 중 한 명이 김치찌개, 뼈다귀해장국, 된장찌개와 같은 한식 메뉴 사이에 숨겨진 돈가스를 우연히 발견했다. 보물의 이름은 '해양식당'이었다.
해양식당. 이름만 보면 돈가스와는 전혀 상관없어 보였지만, 그곳에서 처음 먹은 돈가스의 맛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윤기가 좔좔 흐르는 소스가 뿌려진 돈가스의 맛도 일품이었지만 양이 더 충격적이었다. 어른 손바닥만 한 고깃덩어리가 무려 두 개! 가격은 단돈 5000원. 돌아서면 배고픈 나이인 남자 고등학생들에게 해양식당 돈가스는 신세계 그 자체였다.
그때부터 우리는 해양식당을 내 집 드나들듯 다녔다. 허름한 노포가 주는 정감이 그곳에는 있었다. 해양식당은 어느새 '해식'으로, 그곳의 돈가스는 어느새 '해돈'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돈가스 원정대 멤버들은 '5000원의 행복'을 친구들에게 복음처럼 전파했고, 점심시간이 되면 해양식당에는 교복을 입은 무리가 몰려들었다. 1년이 지나고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모두 토요일 의무 등교를 하게 되면서 해양식당은 더 이상 우리만의 아지트가 아니게 됐다.
결국 여자반 교실에도 해양식당교의 복음이 퍼졌는지 돈가스뿐 아니라 라면, 김치찌개 등을 먹으러 오는 학생들도 생겨났다. 식당의 흥행은 기쁜 일이었지만, 최애의 결혼 발표를 들은 아이돌 팬처럼 어딘가 씁쓸하기도 했다.
해양식당은 우리의 놀이터이기도 했다. 사장님은 우리에게 족구공과 족구 네트를 빌려줬다. 밥을 먹고 난 뒤, 우리는 꼭 족구 세트를 빌려 학교 앞 공터에서 족구를 했다. 공부 외에는 뭐든 재밌었던 시절이라 우리의 족구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끝난 뒤 오후 수업 시작종이 울리고, 심지어 수업 종료종이 울릴 때까지 우리는 족구를 하다가 겨우 교실로 돌아가곤 했다. 주말에는 선생님이 출근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순간이었다.
5000원이라는 저렴한 돈가스 가격이 학생 할인가였다는 사실은 성인이 된 후에야 알았다. 직장인이 되어 다시 찾은 해양식당의 메뉴판에는 7000원이라는 가격이 적혀 있었다. 최근 물가를 고려하면 7000원도 매우 합리적인 가격이다. 해양식당은 그때도 지금도 음식의 모양을 본뜬 행복을 팔고 있었다. 그 행복은 누구나 원한다면 손에 닿을 수 있는 것이었다. 마치 애니메이션 '검정고무신'에 나오는 '만찐두빵'처럼.
성인이 되어 다시 찾은 해양식당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건물은 알게 모르게 더 낡았고, 메뉴판의 가격도 여러 번 고친 흔적이 보였다. 하지만 바삭한 튀김옷, 윤기가 좔좔 흐르는 소스, 손바닥만 한 고기 두 덩이는 그대로였다. 돈가스를 한입 베어 물자, 고등학생 때의 토요일 오후가 입안 가득 퍼졌다.
'5000원의 행복'이었던 그 돈가스는 이제 추억의 음식이 됐다.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해 먹었던 돈가스였지만, 그 속에는 친구들의 웃음소리, 족구공을 차며 흘린 땀, 학창 시절의 고민과 꿈이 담겨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이 허름한 식당, 평범한 경양식 돈가스 한 접시가 내 마음속에 이렇게 소중하게 남을 줄은. 해양식당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추억을 지키고 있었다.
'음식 하나에 세월이 담길 수 있다'는 말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어른들이 단골집을 왜 만들고, 꾸준히 찾는지 알 것도 같았다. 단골 식당은 단순히 음식을 파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기억을 함께 팔고 있었다.
며칠 전 친구 한 명이 오랜만에 해양식당을 찾았다고 인증사진을 보냈다. 사진 속 가게는 여전히 잘 운영되고 있었다. 사진을 보자 해양식당 돈가스의 달짝지근한 소스가 생각나 입안에 침이 고였다. 돈가스는 역시 나의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