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에 행복 한 스푼> 4화
어린 시절, 우리 집안 어른들은 나를 보면 '삶은 계란'을 떠올렸다. 동글동글한 얼굴 때문이 아니고, 하얀 피부색 때문도 아니었다. 삶은 계란을 유독 좋아하는 내 모습을 보고 떠올린 이미지였다.
어릴 적 친가에서는 매년 할머니와 할아버지에 대한 제사를 올렸다. 명절이면 가족이 함께 모여 차례도 지냈다. 나는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제사에 자주 참석하지 않았지만, 명절이면 어김없이 큰아빠 댁으로 가 차례상 준비를 도와야 했다.
꼬마였던 나는 딱딱하고 재미없는 차례가 싫었다. 몇 번이고 일어났다 앉기를 반복해야 하는 것도 싫었고, 준비를 위해 음식을 이리저리 옮겨야 하는 것도 귀찮았다. 그때는 교회를 열심히 다니던 시기라, 제사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큰 죄를 짓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차례는 여러모로 불편한 일이었다.
그나마 좋았던 건 차례가 끝난 후 음식을 나눠 먹는 일이었다. 큰아빠는 차례를 마치고 나면 형과 나에게 차례상에 있는 음식 중 하나를 골라 먹으라고 했다. 이른바 '음복'이었다. 나는 그때마다 항상 삶은 계란을 골랐다.
삶은 계란은 영롱한 빛깔로 나를 유혹했다. 하얀 속살을 드러낸 단정한 모습, 핑킹가위로 자른 듯한 깔끔한 단면. 그 자태는 무척 매혹적이었다. 삶은 계란은 깔끔한 외모와 자극적이지 않은 맛을 자랑하며 언제나처럼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견우와 직녀가 만나듯, 매년 영혼의 반쪽인 계란을 집어 들었다. 그 모습을 본 사촌과 큰아빠는 나를 보면 항상 삶은 계란이 생각난다며 명절 때마다 내 선택을 유심히 지켜봤다.
내가 삶은 계란만 좋아했던 건 아니다. 나는 계란으로 만든 요리라면 뭐든 좋아했다. 계란말이, 계란찜은 물론이고, 날계란으로 간장 계란밥을 해 먹을 정도였다. 다른 사람들은 간장 계란밥에 보통 계란 후라이를 얹어 먹는다는 걸 성인이 된 후에야 알았다. 내 이야기를 들은 친구들은 "날계란은 느끼하다"며 인상을 찌푸렸지만, 난 지금도 귀찮을 때면 날계란으로 간장 계란밥을 해 먹는다.
수많은 계란 요리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요리는 단연 계란 후라이였다. 간단하면서도 맛있고 영양까지 갖춘 계란 후라이를 누가 싫어할 수 있겠는가. 계란 후라이와 케첩의 조합은, 그 자체로 '완벽'이다. 뜨거운 밥 위에 계란 후라이를 올리고 그 위에 케첩을 뿌리면 별 다른 반찬 없이도 밥 한 공기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엄마도 계란 후라이의 마법을 잘 알고 있었다. 엄마는 나와 형의 밥을 차려주면서 분홍 소시지와 계란 후라이를 자주 챙겨줬다. 우리 형제가 반찬 투정을 할 낌새가 보이면 엄마는 냉장고에서 계란 두 개를 꺼냈다. 계란 물에 적신 분홍 소시지와 계란 후라이가 나오면 식탁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계란을 얹은 분홍 소시지와 계란 후라이의 조합에 누가 반기를 들 수 있을 것인가. 나와 형은 만족스럽게 아침을 챙겨 먹은 뒤, 각자의 학교로 떠났다. 성인이 되고 난 후 모처럼 본가에서 가족과 함께 밥을 먹을 때도, 나의 영원한 단짝 계란 후라이가 가족처럼 나를 반겼다. 난 계란 후라이를 먹으며 집에 돌아왔음을 실감했다.
그렇게 좋아하는 계란 후라이였지만 어릴 적에는 혼자 만들어 먹지 못했다. 엄마는 자식들에게 가스레인지를 만지지 못하게 했다. 위험하니 다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요, 여차저차 성공하더라도 주방이 어지럽혀져 있을 게 뻔하다는 게 숨은 이유였다. 엄마는 청결을 매우 중요시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엄마의 성격을 알기 때문에(몇 번 몰래 시도해 봤지만 매번 걸리고 말았다.) 나는 엄마 말에 순응하기로 했다. 대학생이 되고, 혼자 살게 된 이후에는 자유롭게 계란 후라이를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흥미를 잃는다고 했나. 계란 후라이의 값어치는 예전만 못했다.
대학생이 된 나는 남자라면 누구나 거쳐야 한다는 군대에 가게 됐다. 군대에 가는 것보다 통일이 되는 게 더 빠르다고 생각했던 철없는 10대 청소년은, 어느새 머리를 밀고 해군 훈련소 앞에 도착해있었다. 머리가 짧아도 잘 어울릴 거라 생각했던 예상과 달리 입대 당일, 거울을 통해 본 내 머리는 그냥 웃겼다. 훈련소에 함께 모인 까까머리 청년들도 다들 나처럼 웃겼다. 입소 시간이 되고 나를 포함한 까까머리 군단은 이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채 훈련소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웃고, 우울해하고, 구르고, 먹고, 자고 하다 보니 어느덧 기초 훈련이 끝나는 날이 다가왔다. 입대 직전 엄마와 함께 먹은 냉면 맛이 훈련기간 내내 혀끝을 맴돌았다. 해군은 훈련소 마지막 날, 외출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엄마에게는 편지로 미리 수료식 날짜를 알려놓은 터였다. 수료식날, 그동안 갈고닦은 제식훈련을 선보이고 열심히 눈동자를 굴려 엄마를 찾고 있었다. 다른 까까머리들이 가족에 애인, 친구까지 데리고 오는 바람에 훈련소는 인파로 가득 찼다. 군중 속에서 엄마를 찾기란 결코 쉽지 않아보였다.
그렇게 정면을 한참 쳐다보고 있었을 때, 누군가 내게 다가왔다. 바로 엄마였다. 행사 안내문에 고지된 내 자리를 보고 찾아온 듯했다. 나를 본 엄마의 표정에는 대견함과 걱정이 섞여 있었다. 엄마는 웃는 듯 보였지만, 눈가에는 미묘한 떨림이 스쳤다. 눈동자에는 눈물이 약간 고여있는 것 같기도 했다.
"느그 형아, 군대 갔을 때는 걱정이 하나도 안 되던데, 니는 쪼매나가지고 군대에서 버틸 수 있을까 걱정했다. 오늘 하는 거 보니까 연습 엄청 많이 했겠던데. 니 몸은 괘안나"
엄마는 왜소한 체구의 내가 걱정이 됐더랬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군대에서 운동과 식단의 혜택(?)을 받고 입대 전보다 3~4kg은 더 찐 상태였다. 나는 걱정을 산더미처럼 쌓아 온 엄마에게 "별일 없이 잘 지냈다"고 짧게 대답했다.
수료식이 끝난 후 본격적인 면회 시간이 됐다. 점심을 먹어야 하는 시간이었는데, 엄마는 내게 무엇을 먹고 싶냐고 물어봤다. 나의 뜻에 따라 점심에 햄버거나 제육볶음 따위를 먹었던 것 같다. 그날 내겐 무엇을 먹는지보다 한 달 넘게 못 쓴 휴대폰을 손에 넣는 게 더 중요했다. 밥을 먹은 뒤에는 근처 공원에 앉아 함께 커피를 마셨다.
엄마는 가방에서 작은 도시락 하나를 꺼냈다. 후식을 싸 온 모양이었다. 엄마가 도시락을 열자, 정갈하게 놓인 계란 후라이 네 개와 방울토마토가 눈에 들어왔다. 모처럼 보는 계란 후라이에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저 안에서 니 좋아하는 계란 후라이도 못먹었제. 이거 꼭 먹고 들어가라이"
엄마의 말에 마음이 미어졌다. 계란 후라이가 생각났던 건 아니었는데, 막상 계란 후라이를 보니 집이 그리워졌다. 케첩이 곱게 뿌려진 계란 후라이가 내가 군대에 있음을 실감하게 했다.
난 그 계란 후라이를 조심스레, 그리고 소중하게 하나하나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어느 정도 배가 부른 상태였는데도 케첩과 어우러진 계란 후라이의 맛은 한 없이 새콤달콤했다. 내 몸속으로 들어간 계란 후라이가 나를 울컥하게 했다.
엄마는 내가 군대에 가는 것에 대해 꽤 걱정을 했다고 했다. 작고 순하기만 둘째 아들이 군대에서 적응을 못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었다. 큰아들은 알아서 잘할 것 같아서 괜찮았는데, 여리기만 한 아들이 군대에 간다니까 꽤 염려가 됐던 모양이었다. 엄마는 그 걱정을 큰아들과, 친구들에게 털어놨더랬다.
"그래도 아까 니 움직이고 하는 거 보니까 에법(제법) 잘하드라. 나중에 가서도 선임들한테 싹싹하게 잘해라이. 그래야 안 뚜드려맞는다." 엄마의 걱정은 입안에 든 방울토마토와 함께 전달됐다. 때리는 문화가 없어진지가 언젠데, 엄마는 군대에서 귀한 아들이 맞을까봐 걱정을 하고 있었다.
어느덧 면회 시간이 끝나고, 나는 엄마의 걱정을 뒤로 한 채 다시 훈련소 안으로 몸을 돌렸다. 뱃속을 채운 계란 후라이덕에 마음도 든든해진 상태였다.
요리에 관한 에세이를 쓰면서 나는 엄마의 계란 후라이를 떠올렸다. 어떻게 보면 요리라고 보기도 어려운 요리. 그냥 달궈진 팬에 굽기만 하면 되는 요리지만 계란 후라이는 내게 그 어떤 것보다 귀한 음식이었다.
'나도 앞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계란 후라이 같은 요리를 선물해야지.'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정성이 때로는 누군가에게 큰 위로가 된다는 것, 그것이 계란이 내게 준 교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