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남자가 요리한다는 것

<식탁 위에 행복 한 스푼> 3화

by 스미스

주말에 보통 뭐 하고 지내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활동 대신 음식을 먼저 떠올린다. 요즘 나의 가장 큰 관심은 무엇을 할지보다 무엇을 만들어 먹을지에 있다. 음악 듣기, 운동하기, 글쓰기, 침대에서 뒹굴거리기 같은 전형적인 '집돌이'의 삶을 사는 내게 식단 변화는 꽤 파격적인 사건이다. 특히 요리에 관한 에세이를 쓰기로 한 뒤로는 무엇을 먹을지가 더욱 중요한 일상이 됐다.


며칠 전, 누군가 내게 새해에 무엇을 냐고 물었다. 유튜브로 제야의 종소리를 들은 건 기억났지만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는 가물가물했다. 특별한 일정이 없었던 탓이다. 짐작하건대 집 밖을 100미터도 채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책 보고 쉬다가 운동하고 하루 종일 집에 있었던 것 같은데요." 그렇게 대답하려던 순간, 머릿속에 떡국이 떠올랐다. 맞아. 그날 집에서 떡국을 만들어 먹었지. 실마리가 풀리자 그날의 장면이 하나둘 기억났다. 나는 아파트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마트에 들러 떡국용 떡과 김 가루를 샀다. 마침 마트에서는 새해맞이로 떡국떡 1+1 행사를 하고 있었다.


"너 혼자 집에서 떡국을 만들어 먹었다고?"

내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뻘의 지인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가 듣기에 내 이야기는 꽤 신선한 듯했다.

"너도 참 집돌이네." 칭찬인지 욕인지 알 수 없는 말과 함께 그녀가 피식 웃었다. 옆에 있던 일행도 덩달아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익숙한 반응이라 불쾌하지는 않았다.


미혼인 사람이 요리와 살림에 관심 있다는 이야기를 주변에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신기한 눈으로 바라본다. 특히 그 말이 혼자 사는 남성인 내 입에서 나오면 더 그렇다.


지긋한 나이의 어른들 (특히 남성들)은 자취하는 내가 혹여 밥을 굶진 않을까 걱정하며 남는 음식을 바리바리 싸주려 한다. 주로 경험에서 나온 걱정이다. 마음은 정말 감사하지만 혼자서도 잘 챙겨 먹는다고 말하 그들은 의심부터 하고본다. 1인 가구 남성의 주식은 분명 인스턴트나 배달 음식일 것이라고 믿는 게 그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나의 배달음식 주문기록은 지난해 6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겨우 찾을 수 있다.


'요리가 취미'라는 말을 내뱉으면 그들은 내게 어떤 음식을 할 수 있는지 묻는다. 여기서 그럴듯한 요리 이름을 대지 못하면 이를 무시하기도 한다. '고작 그런 음식을 하면서 취미를 요리라고 할 수 있느냐'는 식의 태도다. 독서나 음악 감상, 영화 감상처럼 단순히 즐기기만 하면 되는 취미와는 다른 잣대다. 요리에는 다른 취미에서 매기지 않던 성적표가 꼭 따라붙는다. 요리가 진짜 취미인지 판별하기 위한 그들만의 방식이다. 특기가 아닌 그저 취미인데도 '잘해야' 말할 수 있다. 홍길동도 이런 홍길동이 없다.


또 다른 반응은 취미로서의 요리를 가식적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여성들이 요리하는 남자를 좋아하기 때문에 요리를 취미라고 말하는 것 아니냐"는 식의 무례한 이야기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요리란 한국 남성에게 유독 편견이 많은 취미다. 그 편견은 주로 남성이 같은 남성을 공격하는 데 쓰인다. 이런 반응은 한국 사회에서 요구하는 '남성다움'에 대한 고정관념과 깊이 연결돼 있다고 생각한다. 요리하는 남성에게 이상한 시선을 보내는건, 우리 사회의 고정된 성 역할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다.


미국의 교육자 토니 포터는 그의 책 <맨박스>에서 남성성이란 이름으로 강요된 틀이 오히려 남성을 억압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책은 '남자다움에 갇힌 남자들'이라는 부제목처럼 '만들어진 남성성'에 대해 꼬집는다. 책 속에서 그는 "남자도 울어도 되고, 약한 모습을 보여도 괜찮으며, 다정하고 부드러운 모습을 드러내도 된다"고 말한다.


상냥하고 부드러운 남성이 남자답지 못하다는 인식은 남성을 좁은 '맨박스'에 갇히게 만든다. 맨박스라는 왜곡된 틀은 요리 같은 일상적인 활동조차 '여성적'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토니 포터는 세대를 거쳐 대물림되는 '남자다움'의 규범을 깨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의 경우, 요리의 매력을 '집중'에서 찾는다.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는 요리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재료를 손질하고, 양념을 배합하고, 조리 시간을 맞추는 과정에서 오직 그 순간에 몰두한다. 지금 이 자리에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이다. 그렇게 만든 결과물을 입에 집어넣으면 느껴지는 만족감은 단순히 음식 이상의 가치가 있다. 맛있는 음식으로 스스로를 다독이는 일은 나를 사랑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자, 자신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다른 사람과 나눠 먹으면 그 기쁨이 배가 되는 게 요리다. 요리의 진정한 가치는 과정에 있다.


나는 더 많은 남성이 요리를 취미로 즐기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냉장고를 부탁해'나 '흑백요리사'에 나오는 요리사들처럼 실력을 갖춘 사람만 미디어에 등장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요리를 즐기는 사람이면 충분하다. 요리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더 많은 아마추어가 필요하다.


다행히 최근에는 남성들이 요리하는 모습이 점점 더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유튜브에서는 남성이 요리를 소재로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144만 구독자를 보유한 인기 유튜버 '승우아빠'를 포함해 '밥상차려주는남자', '살림왕 옥주부', '자취요리신' 등 요리 스타일도 각각 다양해 입맛대로 영상을 골라볼 수 있다. 그럴싸한 요리의 신이자 '영원한 백주부' 백종원 씨나 이연복 셰프처럼 강호 고수들의 요리 비법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나 역시 최근에는 조용한 자연 속에서 한 끼를 차려 먹는 '캠핑한끼'라는 유튜버의 영상에 푹 빠져 있다.


요리와 살림은 누군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살림은 나 자신과 타인을 돌보는 따뜻한 실천이다. 함께 식사를 준비하고, 정성을 들여 공간을 가꾸는 일은 우리의 일상을 더욱 풍요롭고 의미 있게 만든다. 다른 사람들도 값지고 멋진 살림의 재미를 알았으면 좋겠다.


*오늘은 요리 레시피 대신 살림에 관한 지식을 쌓는데 도움이 되는 유튜버 3인을 소개한다. 워낙 유명한 유튜버들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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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설 : 세탁 전문가가 만든 채널이다. 세탁 방법과 세제 등 실생활에 유용한 정보를 찾을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EC%84%B8%ED%83%81%EC%84%A4

귀곰 : 가전제품, 생활용품 등을 리뷰하는 유튜버. 로봇청소기, 가습기에 진심이다.

https://www.youtube.com/@gwigom

1분요리 뚝딱이형 : 간단한 요리부터 고급 요리까지 다양한 레시피를 1분짜리 영상으로 편집해 올린다.

https://www.youtube.com/@1minc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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