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세상에서 가장 저렴한 음식은 바로 오뎅 국물이다. 빨간 야구모자 같은 쪽박에 한가득 담아도 '0원'. 추운 겨울, 몸과 마음을 데워줄 더 나은 음식이 과연 있을까 싶다.
청양고추, 멸치, 파 등으로 육수를 낸 오뎅 국물을 한 모금 들이켜면 국물의 온기가 식도를 타고 몸속에 그대로 전해진다. 시원한 국물에 감칠맛까지 느껴지면 절로 '크으~'하는 소리가 나온다. 오뎅 국물이 주는 맛을 제대로 느낄 수만 있다면 겨울바람이 좀 더 쌩쌩 불어도 될 듯하다. 누군가 내게 겨울을 한 장면으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눈 내리는 어느 날 허름한 포장마차 안으로 몸을 피해 오뎅을 먹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릴 것 같다.
오뎅은 내게도 특별한 음식이다. 내 어린 시절을 따스하게 해주었던 오뎅을 난 아직 잊지 못한다. 노포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나를 반기던 분식집 아주머니의 얼굴이 지금도 종종 떠오른다.
어린 시절, 본가가 있는 울산과 할머니 집이 있는 부산을 자주 오갔던 나는 터미널에서 항상 오뎅을 찾았다. 그곳에서는 '물떡'이라고도 부르는 '떡오뎅'이 나를 반겼다. 나는 꼬깃꼬깃 접혀있는 오뎅 대신 길고 하얀 가래떡으로 만들어진 '떡오뎅'을 선호했다.
부산에서 울산으로 떠나는 길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난 항상 터미널에서 떡오뎅을 움켜쥐었다. 분식집 아주머니는 기다란 꼬치에 끼워진 가래떡을 나무젓가락에 바꿔 끼워주며 내게 "잘 가"라는 인사를 건넸다. 다른 한 손에는 종이컵에 담긴 오뎅 국물이 자작하게 일렁였다. 따뜻한 국물과 쫀득쫀득한 가래떡이 만나 내 어린 마음을 다독였다. 뜨끈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떡오뎅은 내게 환대의 기억으로 남았다. 대학생이 된 후에도 종종 터미널에 들러 떡오뎅을 먹곤 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올겨울, 오뎅탕을 직접 만들어 보기로 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내가 느낀 환대를 언젠가 다른 사람과 공유해보고 싶었기 때문. 정성을 다해 끓인 오뎅 국물에서 온기와 함께 내 마음이 전해진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일단 마음을 먹으니 행동으로 옮기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오뎅탕을 끓이며 의외로 가장 번거로웠던 일은 나무 꼬치에 오뎅을 끼우는 일이었다. 대충 끼우면 될 줄 알았던 예상과 달리 가지런한 모양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술이 필요했다. 무턱대고 하다가는 꼬치에서 오뎅이 흘러내리거나 이곳저곳에 구멍이 뚫리기도 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끼우는 방식도 가지각색이어서 오뎅의 손맛은 여기에서 좌지우지되는 것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곱게 접은 오뎅을 나무 꼬치에 끼우고, 몇몇은 칼로 예쁘게 잘랐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래떡과 식감을 더해 줄 곤약도 꼬치와 한 몸이 됐다. 국물의 맛을 더 풍부하게 해줄 대파와 청양고추도 썰어 준비했다. 물을 넣은 냄비를 가스레인지 위에 올리고 조리법에 맞춰 순서대로 오뎅탕을 만들었다. 꼬치에 끼운 오뎅을 냄비 가장자리에 넣고 어슷하게 썬 대파를 올리자 꽤 그럴싸한 모양의 오뎅탕이 완성됐다.
이젠 국물을 맛볼 차례. 국물에서는 내가 경험했던 환대와 사랑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처음인데, 이 정도면 됐지'. 뿌듯한 마음으로 내 몸 안에 온기를 채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오뎅탕에 더 큰 사랑이 채워지길 바랐다.
우리가 흔히 '따뜻함'을 말할 때 단순히 온도를 이야기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따뜻한 품, 따뜻한 손길, 온정…. 이러한 표현에는 온도 이상의 무언가가 담겨있다. 내면에 품은 사랑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데우는 일. 이게 바로 '따뜻함'의 핵심이라고 본다. 추운 겨울, 사람에게는 그 따뜻함이 더욱 절실하다.
누구나 편하게 마실 수 있도록 배려한 오뎅국물은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가장 효과적인 음식이다. 차가운 세상을 녹이는 한 컵의 오뎅 국물에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 환대가 담겼다. 우리는 의외로 가장 단순한 것들로부터 삶의 따뜻함과 의미를 발견한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오뎅 국물을 유료로 판매해 이슈가 된 포장마차를 다룬 기사를 발견한 적 있다. 파는 사람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평범한 이들에게 온기를 선물하던 오뎅 국물이 점차 귀해지고 있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그만큼 우리의 관계도 느슨해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할 테니까. 이런 변화는 한때 누구에게나 열려 있던 환대의 문이 점점 닫히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우리는 계속 작은 따뜻함을 나눌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적어도 나의 오뎅탕엔 누군가를 위한 애정과 존경이 듬뿍 담겨있기를 바란다. 그 온기가 누군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데웠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내년엔 더 맛있는 오뎅탕을 만들 수 있기를.
*오뎅탕 레시피(1~2인분) **유튜버 맛연사님의 방법을 참고해 만들었다. 육수를 따로 내지 않고 조미료를 활용해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