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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스 Sep 04. 2019

시간과 자존감

스미스의 다섯 번째 생각

1. 시간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시간은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중요한 시험을 칠 때, 

나에게 주어진 100분과 

평소처럼 하루를 보낼 때 

나에게 주어진 100분은 

무게부터 차이가 난다. 


세무사를 준비하는 나의 오래된 친구는 

시험을 준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벌써 자기에게 주어진 부담감이 크다고 했다.


반면 취업을 그다지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한 친구는 이곳저곳을 

마음껏 돌아다니며 이것저것을

다 해보고 싶다고 한다. 


둘에게는 똑같은 시간이 주어져 있지만, 

그들이 느끼는 시간의 범주는 사뭇 다르다.


시간은 경제력과도 관련 있다.

일반적으로 부를 갖춘 사람일수록 

시간에 대한 부담을 덜 느낄 확률이 높다.


경제력을 갖춘 이들은 어떤 일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에 적극적이다.

그들은 기회비용을 감내할만한

여력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반면 힘들게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어쩔 수 없이 부모님에게 손을 벌려야 하는 

이들에게 시간은 곧 자본력이 된다.


그들은 마음대로 실패할 수도 없고,

하던 일을 중간에 그만두는 것도 

용납되지 않는다.


부자들은 이따금씩 젊음을 갖고 싶다고 말한다.

자신에게 젊음이 있으면, 지금 젊은이들보다

더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이 말도 부자인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


일반적인 가난하고, '젊기만 한' 청년들은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버겁기만 하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2. 자존감


오늘 누군가 나에게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낮아질 대로 낮아져 버린 자존감이,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나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이 얘기는 내가 

나 자신에게 한 말일지도 모른다.


자존감을 높이며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세상에는 우리의 자존감을 

깎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는 어릴 때부터 학습 받아 온 결과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누군가와 경쟁을 한다. 

대표적인 예가 공부다. 

경쟁에서 승리하면 자존감이 올라가지만

패배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들은 극 소수고,

대개는 모두 패배를 경험한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든, 

못하는 사람이든 간에 

패배를 경험한다는 것은 동일하다. 


학교 생활을 마치고 나면 

경쟁이 더는 없을 것이라고

착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경쟁은 어떤 형태로든지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이 과정에서 문제는 발생한다. 


우리 사회에는 시험에 낙방해도 

자존감을 지키는 사람이 있는 반면

시험을 통과해도 자존감이 떨어지는 사람이 있다.  

7급 공무원을 준비했다가, 

9급 공무원으로 합격한 친구처럼 말이다.


사회는 '자존감을 지키는' 

사람만을 높이 평가한다. 

자존감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비아냥댄다. 


나는 이 구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타인과의 경쟁을 무한대로 

치러야 하는 인생 속에서 

자존감이 떨어지는 것을 

죄악시하는 이 구조 말이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을 보며

'왜 너는 왼쪽 팔뚝에 

총알이 스쳐 지나간 흔적이 있냐'고

추궁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자존감이 떨어진 친구를 보게 될 때면 

그를 붙잡고 한마디 해주고 싶다.  


"네가 살아돌아와서 기뻐. 

총알에 맞은 자국은 조금 아파해도 괜찮아.

애써 괜찮은 척할 필요는 없어. 

다만, 상처가 잘 아물 수 있도록 

스스로를 잘 보살펴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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