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중 < 따로, 또 같이 살고 있습니다 > 리뷰
한동안 접었던 책 리뷰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책을 읽은 기억이 금방 날아간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인데,
글을 남김으로써 느꼈던 생각을 조금이라도 붙잡아 두기 위함이다.
그래서인지 정확한 정보 전달보다는 나의 '감상'에 조금 더 치우쳐진 면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러한 감상들이 모여 훌륭한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한 글자라도 더 많이 남겨보려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집단을 이루고 살아간다. 작게는 친구, 가족으로 시작해 크게 보면 인류라는 집단으로 묶인다.
무리에 속하지 않은 사람도 존재할 수 있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그 역시도 자세히 살펴보면 어딘가에 소속된 구성원일 확률이 높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누구에게 해를 끼치기도, 도움을 받기도 하는 셈이다.
그중에서도 이웃이라는 집단은 여러 가지로 복잡한 의미를 담고 있다. 과거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이웃과 가까이 지내는 것이 당연했지만 지금은 어딘지 모르게 낯선 존재가 됐다.
가까운 이웃은커녕, 이웃이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것조차 어려워졌고
더 나아가 이웃이 나에 대해 알고 싶어 할 때도 괜히 불편함을 느끼게 됐다.
이웃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은 과거에 비해 크게 변했다.
굳이 이렇게 이웃에 대한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이 책이 담고 있는 핵심적인 소재가 바로 '이웃'이기 때문이다.
30대 여성 아파트 관리소장이라는 흔치 않은 이력을 가진 작가의 이야기는
책을 보는 이에게 흥미를 주기에 충분해 보인다.
아파트라는 건물은 꽤나 특이한 구조의 건물이다.
독서모임 중 누군가 "거대한 집에다가 큼지막하게 방만 나눠놓은 게 아니냐"라고 말했는데
이 표현이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결국 계단과 대문이라는 물리적인 차단책이 존재할 뿐 같이 산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한 집에서 가족끼리 살아가더라도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하는데, 아파트 내에서 여러 가족이 모여산다면
분쟁이 발생하지 않을 리 없다.
이 책은 아파트 내에서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하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을 담아냈다.
주차장 자리 문제를 두고 발생한 작은 다툼부터 층간 소음 문제로 불거진 이웃들 간의 분쟁까지
사소하지만 전혀 사소하지 않은 문제들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재미가 있다.
책을 읽으면서 등장하는 뻔한 이야기들을 한 쪽으로 미뤄두고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주요 문제의식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결국 '우리가 누구에게 얼마만큼의 양보(배려)를 해야 하는가'에 관한 이야기다.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관습들이 낯선 것이 되고, 전에는 없었지만 지금은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들이 생겨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이해충돌 말이다.
특히 이 책은 주택이 아파트라는 건물로 바뀌어가는 건축학적 관점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학적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가 과거에 비해 가장 크게 달라졌다고 느끼는 것은
바로 인간관계에도 금전적인 요소가 없어서는 안되게 돼버렸다는 점이다.
이웃과의 화목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돈'이 필요해졌다는 이야기다.
책에서도 등장하는 사례지만 주차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주차공간을 남용하는, 또는 이를 악용하는 입주민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방법은, 과태료를 부과하는 거다.
벌금을 부과하는 것은 어렵게 상대방을 찾아가 협조를 요청할 필요도 없는
가장 경제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사례를 생각해보자. 주변에 강아지를 기르는 입주민이 있다. 그 입주민은 강아지와 산책을 할 때마다
강아지의 용변을 치우지 않는다. 이 입주민을 어떻게 해야 좋을까.
역시 가장 손쉬운 방법은 주인에게 벌금을 부과하거나 더 나아가 반려견 양육비용이라는 명목으로
금전적 책임을 지우는 거다.
이렇듯 돈이라는 수단은 가장 합리적이고, 빠른 해결책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
그러나 제재수단으로 돈이 널리 활용될수록 안타까움도 더해진다.
이웃 간의 대화도, 타협도 사라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상상이지만, 누군가에 집 앞에 각종 '피해 목록'과
배상금이 적힌 쪽지들이 붙은 모습을 그려볼 수도 있다.
실제로 우리가 우스갯소리로 활용하기도 하는 '독서실 프로불편러 짤'이
이런 현상을 반영한 결과물로 연상되기도 한다.
과거에 비해, 서로 간에 지켜야 할 규칙과 규율들이 늘어나고
그 모든 규율들에 대한 대가가 돈이 되어간다는 점은
씁쓸함을 불러온다.
감상이 꽤나 길었는데, 이 글이 의미하고자 하는 바는 결국 인간 사이의 관계가 자칫 허물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책의 에필로그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아파트 문화는 입주민이 참여하는 잔치 개최 여부,
주민들의 아파트 인근 대청소, 단지 내 거주 어르신들을 위한 경로행사,
에너지 절감 노력, 관리소의 관리 행태 등을 말하며 이 모든 것을 종합해
'살기 좋은 아파트'를 선정한다.
다시 말하자면 입주민들이 자주 모여
얼굴을 보고 다양한 활동을 할수록 더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이다.
살기 좋은 아파트란, 건물이 화려하고, 비싼 아파트가 아니다.
결국 사는 사람들이 '고급스러운' 아파트인 셈이다.
가격과 학군, 건물의 외경만을 따지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뒤돌아봐야 할 부분이다.
과일의 당도를 결정짓는 것은 과일 껍질에 있는 무늬가 아니라
안에 있는 과즙인 것처럼, 좋은 사람들이 모인 곳은 좋은 곳이 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책의 제목처럼 우리는 따로, 또 같이 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게 중요해 보인다.
마지막으로 책의 장단점을 짧게 서술하면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먼저 장점은 '평범한 일상의 나눔'이다.
이 책은 전문작가가 아니라 평범한 시민의 이야기다. 그래서인지 이야기는 풍부하고, 현실적이다.
평범한 시민들이 자신의 삶에서 느낀 점을 쓰고 이를 나눈다는 행위 자체는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작가만 책을 쓴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책은 꼭 작가만 쓰나요?' 하는 물음을 던지는
일상 작가들의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책의 단점도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이야기가 크게 구조화돼서 긴 이야기를 풀어나갈 줄 알았는데,
막상 책을 읽어보니 그런 책은 아니었다.
수십 개의 사연을 담은 짧은 글이 연결된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간단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 점은 매우 좋았지만
깊게 몰입하지 못하고 조금씩 흐름이 끊기는 듯한 느낌도 있다.
몇 가지의 핵심적인 이야기를 묶어서 큰 챕터들을 구성했어도
충분히 독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을 거라는 평가다.
최근 경비원이 갑질로 인해 목숨을 끊은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함에 따라
<임계장 이야기>를 비롯한 경비원과 같은, 일명 '을'의 삶이 조명 받고 있다.
을의 삶을 다룬 이야기들이 많아지고, 충분한 논의가 이어질 때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변화들이 일어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