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시방도 경력자가 필요하다고요?

보람찬 실패 일기 네 번째 이야기

by 스미스



나의 스펙 중 하나는 아르바이트 경험이 많다는 거다. 수능을 치자마자 처음으로 일하게 된 고깃집을 시작으로,

대학 입학 후에도 매 학기가 끝날 때마다 아르바이트를 해왔다.

물론 나의 이런 화려한(?) 알바 경험이 입사에 큰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지만 배울 점이 있는 시간이었다.


고깃집, 밀면집, 조선소, 일용직 노동자(흔히 생각하는 그 '노가다'가 맞다), 피시방 등 여러 아르바이트를 거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건 '잘 되는 집엔 이유가 있다'라는 거였다.


경험했던 사장님마다 스타일은 전혀 달랐지만, 일반적으로 '잘 되는 집'은 손님뿐 아니라 아르바이트생도 아낀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아르바이트생에게는 알파이자 오메가인 월급뿐만 아니라, 환경, 사람을 모두 배려해 주는 사장님이 있는 곳에는 항상 손님이 따라다녔다. 나 역시도 그런 사장님과 일을 할 때면, 시키지 않은 일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 같다.


그러나 마음만 먹으면 방학 때마다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었던 '알바황금기'와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난이도는 높아져만 갔다. 방학 때 잠깐 일을 할 수 있었던 단기 아르바이트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고, '1년 이상'을 내세우거나 정직원을 모집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단기 아르바이트를 위해서는 장기간 근무를 할 수 있다며 사장님을 속여야 하는 상황도 연출됐다.


나 역시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기웃거려봤지만, 딱히 할만한 일이 보이지 않았다.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매일 하자니 공부가 불가능할 것 같고, 그렇다고 새벽 늦게까지 시끄러운 술집에서 서빙을 하는 것도 원치 않았다. 그렇게 꽤 오랜 탐색을 끝내고 나서야 학교 앞에 있는 한 피시방을 발견하게 됐다.


'주말(토, 일), 하루 8시간 근무'

썩 완벽한 조건은 아니었지만 힘들게 발견한 일자리라 적혀있는 번호로 문자를 보냈다. 담당자는 날짜와 시간을 내게 정해주었다. 시간과, 요일이 정확히 규정돼있으니 마치 대기업 면접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약속한 시간이 되자, 나는 정장은 아니지만 깔끔하게 옷을 차려 입고 가게를 방문했다. 자신을 '매니저'로 소개한 담당자와 만나 약 15분간 대화를 나눴다.


매니저님의 질문은 생각보다 날이 서있었다. 질문을 하는 동안에도 오래 일을 할 사람을 구하고 있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해 말했다. 주말 아르바이트를 구하는데, 3일에 걸쳐 면접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나는 꽤나 충격을 받았다. 다행히도 나는 피시방 아르바이트를 약 1년 가까이했던 경험이 있었고, 매니저님은 이를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동안 제대로 된 지원자를 찾기 힘들었는데 다행이라는 매니저님의 푸념과 함께 나는 합격 통지를 받을 수 있었다.


면접을 마치고 피시방을 나가면서, 다음 면접자로 추정되는 인물과 눈이 마주쳤다. 영웅은 영웅끼리 알아본다고 했나. 나는 그가 취준생임을 단번에 알아챘다. 채용확정 통보를 받은 뒤라 나의 마음은 편했지만, 그의 마음이 어떨지까지는 헤아리지 못했다.


'피시방도 경력이 있어야 하는구나'

씁쓸함이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았다. 차라리 내가 경력이 없어 떨어지는 쪽이었다면, 황당하고 어이없는 이 상황을 웃으며 넘겨버렸겠지만 '경력직 아르바이트생'이었던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매니저님은 내게 큰 기대를 걸고 있는 듯했고, 나 역시 많이 해본 업무였기 때문에 기대에 부응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내가 본격적으로 취준에 뛰어들기 직전까지, 약 6개월간 아르바이트를 계속했다.


얼마 전, 스무 살인 동생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는 방학 때도 알바를 거의 구하지 않는단다. 방학이든 개학이든 관계없이 장기간을 근무할 수 있는 능력자라야 아르바이트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과거에 내가 아르바이트를 해 학비에 보탰다면, 이제는 온전히 그 역할을 '한국장학재단'이 떠맡게 된 셈이다. 물론 나의 동생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방학이든 개학이든 관계없이 일할 수 있는 능력자가 바로 내 동생이었다.


물론 내 사례가 특이한 것일 수도 있다. 아르바이트생 채용 공고는 여전히 올라오고, 일자리를 찾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내 사례보다 훨씬 특이한 사례가 더 많을 거라고 믿는다. 편의점에서 '직무적합도'를 고려하는 곳도 있고, 3차에 걸친 면접과 실무테스트를 병행하는 피시방 이야기도 들었다. 단기간의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자소서 첨삭을 받아야 한다는 것도 우스갯소리로만 치부되지는 않을 상황이 된 거다.


내 환경을 탓하고, 비관하고자 이 글을 쓴 건 아니다. 청년에게 왜 이런 사회를 남겼냐고 기성세대를 탓할 마음도 없다. 그저 힘든 것조차 힘들다고 말하지 말라는 어른들을 향한 푸념이다. 기성세대가 기성세대가 처음 돼본 것처럼, 청년들도 청년이 처음이다. 어디까지가 견뎌야 할 범위고, 어디서부터 저항해도 되는지 알기 어려운 나이다. 이런 모호함 때문에 청년의 푸념이 '징징거리는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를 일이다.


앞서 사장님의 배려가 잘 되는 집의 공통점이라고 한 바 있다. 자신이 아르바이트생의 처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을 들어주고, 그의 고충에 대해 함께 고민해 주는 것이 비법인 셈이다. 아르바이트생의 뜻이 반영되고말고의 문제와는 별개로 경청이라는 녀석은 의외로 힘이 세다.

'누군가를 떠나보낸 어른이 느끼는 슬픔이,
아끼던 인형을 잃어버린 아이의 슬픔보다
반드시 크다고 생각하지 마라 '


어디선가 들었던 이 말은 어른들의 기준에서, 아이의 감정을 과소평가하는 것을 경계한다.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고 경청하는 미덕은 여기에서도 빛이 난다.

오늘 하루도 보람차게 실패를 경험하고 있는 한 청년으로써 한 마디만 하고 싶다.

"힘들땐 힘들다고 하면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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