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빠나콘’

‘에세이 빠나콘’ 첫 번째 이야기

by 스미스

개인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메일링 서비스인 '에세이 빠나콘'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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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27일 첫 번째 메시지 : ‘에세이 빠나콘’


무턱대고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에세이 이름을 빠나콘으로 지어야지’

나는 이보다 더 어울리는 제목은 없을 것 같다고 느끼면서 휴대폰에 메모를 남겼다.


‘빠나콘’


이 단어의 탄생은 대학교 3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확히 2017년 12월의 일이다.

자취를 처음 시작한 나에게는 한 가지 로망이 있었다. 맛있고 건강한 밥을 직접 요리해 먹는 것. 열정이 가득했던 나는 매일 저녁 각종 재료와 조미료를 활용해 무엇인가를 만들어 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내가 만든 음식은 변변찮은 것들이었지만 그때는 애지중지하며 사진까지 찍고 먹었던 기억이 난다.


문제는 ‘요리왕 비룡’을 꿈꾸던 나의 모습이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는 거다.

요리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재료를 사서 다듬는 일은 뜸해졌고, 밥을 밖에서 먹고 들어오는 횟수가 늘어났다.

매일 저녁 열리던 방구석 요리 경연대회도, 주 1회로 바뀌었고, 조금 지나자 격주 단위로 개최됐다.


하지만 내가 마냥 음식을 싫어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요리를 직접 하지 않는 대신 맛있는 음식을 손쉽게 먹을 방법을 연구했다. 맛집을 찾아다니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음식을 배달해 먹으면서 일찌감치 요리사 자리에서 물러나 미식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게으름이 빚어낸 결과였기 때문에 몸은 매우 편했다.


그렇게 맛있고 간편한 음식을 찾아 헤매던 내게 누군가 ‘얼린 바나나’를 추천했다. 바나나를 한 묶음씩 사서 냉동실에 얼려 먹으면 굉장히 맛있다는 이야기였다. 바나나는 지나가는 모든 마트에서 판매하고 있을 정도로 흔한 과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바로 실천에 옮길 수 있었다.


그렇게 도전한 아이스 바나나의 맛은 감히 평가를 하기 어려울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바나나는 평소에도 과할 정도로 달콤하지만 얼린 바나나의 맛은 그보다 더했다. 달콤한 과육에다 입술에 전해지는 차가운 촉감까지 더해져 마치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입가에 묻히고 먹는 느낌과 비슷했다. 아이스 바나나는 그 자체로 요리였다.


한동안 나는 이 맛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매일 바나나를 사서 냉동실에 얼리기 바빴다. 내게 이 달콤한 음식은 어떨 때는 간식으로, 때로는 훌륭한 한 끼 식사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친구와 만난 자리에서 이 얼린 바나나의 존재에 관해 설명하게 됐다.


“야.. 내가 진짜 대단한 사업 아이템을 생각했는데 한번 들어볼래?”

평소 사업가를 꿈꾸고 있던 친구가 눈을 크게 뜨면서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얼린 바나나로 푸드트럭을 하는 거야. 아이스크림콘에다가 얼린 바나나를 올리고 초콜릿 시럽 같은 토핑을 더 해 파는 거지. 이름은 빠나콘으로하고 가격은 천 원 어때”

나의 목소리는 정말 중요한 비밀을 말할 때처럼 작아져 있었다. 내가 생각해낸 획기적인 아이템을 누가 듣고 써먹을까 봐 조바심이 났다. 하지만 정작 내 이야기를 들은 친구의 반응은 매우 시큰둥했다. 대단한 아이템을 기대했는데 이게 뭐냐는 눈치였다.


“그건 그냥 집에서 바나나 얼려 먹는 거랑 다른게 없잖아”

친구의 날카로운 비판에 정곡을 찔려버렸다. 나는 초콜릿 시럽 같은 토핑으로 독창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친구는 그걸로는 부족하다고 했다. 좋은 사업 아이템이 되기 위해서는 ‘아이덴티티’가 확고해야 하는데 빠나콘은 그게 없다는 지적이었다. 내가 좋아했던 음식이 혹평을 받는 건 안타까웠지만 친구의 말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구상했던 빠나콘 사업은 언젠가 다시 도전해보겠다는 다짐만 남긴 채 메모장 한 켠으로 옮겨졌다.


나이를 먹으면서, 언제부터인가 ‘날 것’의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바보 같은 생각과 실용성 없는 상상들은 잘못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지 못할 걸 알면서도 사용되는 모든 에너지는 ‘낭비’로 여겨졌다. 바보 같은 행동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어린아이와 어른을 나누는 가장 핵심적인 기준인 것 같았다. 내가 에세이 이름을 빠나콘으로 짓기로 한 이유는 ‘날 것’의 생각을 더 드러내고 싶은 마음에서다. 바나나와 아이스크림콘의 조합이라는 다소 황당한 발상을 그냥 묵혀두기보다는 나름대로 포장해 꺼내놓자는 의미다. 비록 아이덴티티는 조금 부족할지라도 달콤한 빠나콘을 먹어보고 싶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에세이 <빠나콘>에 앞으로 담기게 될 많은 이야기는 대부분 ‘날 것’의 생각에서 출발한다. 전문가처럼 모든 현상을 정확하게 분석하지도, 프로 작가처럼 글을 완벽하게 포장하지도 못하지만, 나만이 담아낼 수 있는 생각들을 써 내려갈 예정이다. 이런 사소한 생각 중에서 일부분이라도 독자들의 취향과 어우러지는 글이 탄생한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상품성은 떨어질 수 있지만 얼린 바나나처럼 달콤한 소재들이 많이 준비되어 있으니 기대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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