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소설
"괜찮으세요?"
"아.. 예"
햇살이 따갑고 바람은 시원하던 그날에 민성과 현수가 만났다. 마스크를 왼쪽 귀에 걸어둔 채 양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 울고 있던 것은 민성이었다.
"저 휴지 있어요. 잠시만요"
"아 감사합니다"
"시험 때문에 그러시는 거예요?"
"아 그냥 뭐 그것도 있고.. 일이 있어서요"
"사람 많은 나무벤치에서 울고 계시길래요"
"네. 그냥.. 그냥 울었어요"
"... 조금 더 있다가 갈게요. 그냥 있을게요. 전 시험 다 끝났어요"
"아. 네.. 감사합니다"
민성은 이전처럼 훌쩍훌쩍 울진 않았다. 눈물이 한숨으로 바뀐 듯이 연거푸 한숨을 푹푹 쉬어댔다. 현수는 뱉은 말과 달리 막상 어색하다는 듯 핸드폰을 들여다 보고 앞을 쳐다보고 옆을 쳐다보고 나무 지붕도 쳐다보았다가 민성을 힐끔힐끔 곁눈질하다 다시 핸드폰을 켜보는 행동을 반복했다.
"저 이제 괜찮아졌어요. 감사합니다"
"아 네네 휴지 더 필요하시면 말씀하세요"
"아 조금만 더 주시면"
"네네 여기요"
현수가 건네주는 휴지는 여행용 티슈가 아니라 30 롤짜리 3겹 엠보싱 화장지말이여서 꼼꼼히 발랐던 민성의 선크림이 다 지워졌고 닦아낸 자리마다 말간 얼굴빛이 복숭아처럼 발그레 빛났다. 마스크는 어느새 귀에서 떨어져 벤치 끝자락에서 흔들거렸다. 현수는 휴지로 눈물 콧물을 닦아내는 민성을 곁눈질하지 않고 쳐다보며 위아래 입술을 마주 뗐다.
"밥 드실래요?"
"네?"
"밥이요. 바로 집 안 가시면.. 저녁 같이 먹을 사람이 없어서요"
"아.."
"저 이상한 종교인 아니고요. 도믿걸 아니에요 그냥 밥 배 고프실 거 같아서요 울면 그렇잖아요 힘 다 빠져서 멍해지고 배고프고 그런 아"
현수는 말하다 말았다. 민성은 빤히 쳐다봤다. 민성이 빤히 쳐다봤다. 현수는 말을 멈췄다. 현수는 말이 멎었다. 현수는 자세를 고쳐 앉고 휴지말이를 정리했다.
"배고파요 가요"
두 사람이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아서, 민성의 말이 쉰 목소리로 갈라지듯 나와서, 시험을 망친 학생들이 소리 질러서, 벤치 뒷변 동산에 해가 걸쳤고 하늘이 빨갛게 물들어서, 그 뒤로 대화는 없었지만 둘이 나란히 후문을 향해 걸어가서, 마스크 속에 무슨 표정인지 보이지 않아서.
"아까 같이 계셔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아.. 네 그냥요 그래야 할 것 같아서요"
"네.. 휴지도 감사해요"
"아 그거 롤 휴지라서 좀 이상하셨을 거예요. 저만 쓰려고 말아놓은 거라서요"
"아니에요. 충분했어요"
"아.. 네"
"밥은 뭐 드실래요? 진짜 배고프네요. 저 모르는 분이랑 밥 처음 먹어봐요"
"저도요... 음.. 밥이요!. 쌀밥. 김.. 치찌개?"
"아 네네 좋아요 저도"
민성이 수저를 내주고 현수가 물을 따랐다. 민성이 앞접시에 덜어주면 현수가 반찬을 가져왔다. 민성이 김치를 길게 찢어 드시냐고 물어봤고 현수가 잘라먹는 게 좋다고 했다. 민성은 김치를 잘랐다. 현수가 계란말이를 추가하며 자기가 사겠다고 했고 현수가 마지막 남은 한 조각을 반잘라 민성과 나눠먹었다. 민성이 먼저 결제를 했고 돈을 보내달라고 현수에게 번호를 줬다.
"바로 보내드릴게요. 토스로 보낼게요. 토스하시죠?"
현수는 [이름 : 민성님]이라고 저장했다.
"아 네 아무거나 상관없어요. 저도 저장할게요"
민성은 [성 : 장 / 이름 : 현수 / 메모 : 9500원]라고 입력했다.
"뭐라고 저장하셨어요?"
"네? 아 저요? 저는 '민성님'이라고 저장했어요"
"아 그래요? 아"
민성은 [성 : 장 / 이름 : 현수 / 별칭 : 착한분]이라고 저장했다.
"왜요? 뭐라고 저장하셨는데요?"
"아 저도 그냥 '장현수'라고 저장했어요. 찾기 쉽게"
"네"
"네"
민성의 연락처가 현수의 시선에서 너무 잘 보였다. '장현수착한분'. 현수가 말했다.
"근데 학교는 혼자 다니시는 거예요? 동기는요?"
"아 다 졸업반이거나 편입했다고 하더라고요. 없어요 이제"
"아 그러시구나. 저도 비슷해요. 다 사라졌네요"
"수업은 아까 저 있던 벤치 주변에서 들으시는 건가 봐요"
"네네 그쪽 학과라서 거의 거기서만 들어요"
"마스크 벗고 대면 수업하면 좋겠어요"
"그렇죠.. 맞아요. 답답하네요."
현수가 대답하며 마스크를 양 귀에 걸었다. 둘 다 마스크를 쓰고 다시 핸드폰을 만졌다. 현수는 '민성님'을 즐겨찾기에 지정했다. 민성은 '장현수착한분'을 즐겨찾기에 지정했다. 현수가 말했다.
"저랑요"
"네네"
"저랑 같이 다니실래요?"
'민성님'은 마스크를 쓴 게 천만다행이라고 느끼며 귀가 빨개지지 않았는지 신경 쓰였다. 휴지도 잘 썼고 밥도 잘 먹었고 이제 집에 갈 줄 알았는데 갑자기 저런 소리를 들으니까 화를 내버렸다.
"네?? 저요? 왜요?"
'장현수착한분'은 세상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마스크를 써도 표정관리가 안된다. 이미 눈빛에서 다 들켰구나 싶다. 나름 냉정하게 보이려고 엄청 애썼는데 요놈의 주둥아리를 결국 못 참아서 일을 그르쳤다. 오늘 집에 가는 길이 너무 싫어진다. 딱 10초만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아 아니에요 아니에요 아니 그냥 친구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아. 네 아 그런 거구나 네네 그렇죠"
"..."
"..."
말이 없다. 마스크에 얼굴이 다 가려지지 않아 둘 다 뻘쭘하고 당황스럽다.
"저는 반대쪽이라서요 건너가야 해요"
"아 저는 이쪽에서 타요. 다음에 봬요"
"네네. 밥 감사했습니다. 조심히 가세요."
"네네 저도 감사했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민성의 답을 듣자마자 바로 목인사를 하고 현수는 곧장 횡단보도까지 빨리 걸어 옆에 있는 가로등 옆에 섰다. 민성은 버스 안내판을 보려 고개를 돌려서 사라진 현수를 찾았다. 현수는 집으로 가는 가장 빠른 버스를 계속 새로고침 했다. 민성은 현수의 동네로 가는 버스를 계속 새로고침 했다. 민성이 정류장 의자에 앉아서 밀린 문자를 확인하는 사이 현수는 버스를 탔다. 현수는 퇴근 끝자락 버스에 탔고 자리가 없어서 집 앞까지 서서 탔다. 집에 도착하니 하루 동안 긴장했던 피로함 탓인지 옷을 채 벗지 못한 채 바닥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
(민성님)'집 도착하셨어요?'
(민성님)'집으로 가시는 걸 못 봤어요. 죄송해요'
(민성님)'아까 물어보신 거 같이 다니자는 거요.'
(민성님)'저는 좋아요'
'장현수착한분' 작성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