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아프지 않을 아빠를 추억하며.
나는 복숭아를 못 먹는다.
더위가 한풀 꺾이는 때가 오면 나오는 맛있는 복숭아.
달콤하고 향긋한 이 과일은 사과처럼 저장해서 먹을 수 없다.
제철이 아니면 싱싱한 과육은 맛볼 수 없다.
그 복숭아를 그렇게 먹고 싶어 했던 우리 아빠.
가족들한테는 내색하지도 않고 농사짓는 사돈댁에 그 추운 2월에 복숭아를 구할 수 없냐고 물어봤다고 하지.
하지만 그 추운 겨울에 어디서 복숭아를 구할 수 있을까.
그것도 싱싱한 복숭아를….
통조림 복숭아는 달아서 못 먹겠다던 아빠. 항상 철마다 제철과일을 사다 주던 아빠.
봄이 오면 우리 집 첫 딸기는 항상 아빠가 사다 주었지.
첫째 딸이 낳은 첫 딸도 그렇게 이뻐해서, 그 손녀가 좋아하는 딸기를 항상 제일 먼저 사주셨었지.
그래서 우리 딸은 우리 아빠를 딸기할아버지라고 불렀지.
날이 풀리면서 짭짤이 토마토가 나오면 여기가 최고라면서 심서방 토마토를 사다 주던 아빠.
이번엔 내가 그냥 동네 마트 가서 최서방네 짭짤이를 사봤는데 정말 아무 맛이 없더라.
우리 아빠는 어떻게 그렇게 맛있는 걸 알고 사 왔을까.
과일을 그렇게 좋아하던 아빠.
아직 나는 딸기를 봐도 눈물이 나고 토마토를 봐도 눈물이 나와.
복숭아가 나오면 그건 눈물만 나는 게 아니라 차마 먹을 수가 없더라.
뭐가 그렇게 급해서 그 좋아하는 복숭아를 기다리지도 못하고 가셨을까.
2023 2월, 아빠가 호스피스 병원으로 들어가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너무 정정해 보이셔서 이별은 나와 상관없는 일인 것 같았다.
아빠가 입원하고 호스피스 의사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눌 때, 의사 선생님까지도 아빠 컨디션이 정말 좋으셔서 여기 있을 수 있는 만큼 계시다가 다른 호스피스 가셔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그랬던 아빠가 3월이 되고 급격하게 안 좋아지시기 시작했다.
정말 주위에서 모두가 놀랄 정도로. 거동이 완전히 불편해지시고 소변줄을 꽂게 되었을 때, 아빠가 엄마한테 너무 힘들어서 정신을 놔 버리고 싶다고 하셨다고 한다.
그게 시작이었을까.
아빠가 버텨오던 무언가가 끊어져버린 걸까.
거의 바로 의식을 잃어버리고 누워계시면서 섬망증상이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주일도 되지 않아 그날이 왔다.
그 일주일은 내가 아빠의 보호자로 매일 병원을 왔다 갔다 하던 때였다.
처음 며칠은 앉아서 나랑 얘기도 하고 그러더니 어라, 어느 순간부터 의식이 없다.
그러면서 손을 허공에 허우적거리셔서 그 손 꼭 붙잡으면서 “아빠, 나 여기 있어.” 계속 속삭인다.
그때 괜히 그런 느낌이 들더라.
이때 아니면 말할 시간이 없을지도 몰라.
“아빠, 사랑 많이 주고 키워줘서 정말 고맙고 사랑해요.”
허우적거리는 아빠 귓가에 계속 그렇게 속삭여 드리면서 옆을 지켰다.
그러고 집에 돌아간 밤.
다음날은 신랑 생일이다.
새벽까지 뒤척이며 오만 생각으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아빠가 설마 오늘 돌아가시는 건 아니겠지.
그랬는데….
잠든 지 2시간도 안 돼서 걸려온 전화에 눈이 번쩍 떠졌다.
막내였다.
병원에서 아빠 임종이 다가온 것 같다고 어른 오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허겁지겁 일어나 대충 옷을 껴 입고 둘째와 막내를 만나 함께 호스피스로 향했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어디 멀리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구경하는듯한 부유감이 있었다.
병원까지 가는 30분, 그 짧은 시간이 그저 길게만 느껴졌다.
설마 아빠가 정말 오늘 돌아가시겠어라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들었다.
'병원에서 뭔가 잘못 봤겠지.
아빠가 지금 의식은 없으셨지만 이렇게 빨리 돌아가신다고? 아닐 거야…….'
그렇게 병원에 도착해서 안내받은 곳은 아빠가 계시던 병실이 아니었다.
임종을 준비하는 방.
왜 우리를 여기로 안내해 주는 걸까.
왜 우리 아빠는 저기에 누워있지?
아빠 그냥 자고 있는 건데….
엄마랑 셋째까지 만나 우리 여섯 식구가 한자리에 모였다.
아빠를 가운데 두고 빙 둘러앉아 이게 무슨 일이지 하고 현실감 없는 생각만 들었다.
아빠는 주무시고 계신 건데.
그저 평온하게 주무시고 계신데.
이제 손도 휘적거리지 않고 그냥 색색 너무 편하게 주무시고 계신데.
그런데 왜 저 심박계는 왔다 갔다 하는 거지.
왜 이렇게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거지.
아직은 아닐 거야.
이러다 괜찮아지셔서 다시 병실로 이동할 거야.
간절한 바람이 우습게도 점점 꺼져가는 맥박이 실시간으로 보였다.
아빠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아주 평온한 모습으로 잠들어있는 아빠.
시끄럽게 울리는 심박계는 우리 눈과 귀를 괴롭히고 있는데 아빠만은 미동도 없이 점점 사그라드는 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새벽에 우리는 아빠를 보냈다.
그렇게 아빠가 돌아가신 지 이 년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복숭아를 먹을 수 없었다.
마지막까지 아빠가 드시고 싶어 했던 그 복숭아.
세월이 가면 다시 먹을 수 있는 날이 올까.
이 이별이 아무렇지 않아 지는 그런 날이 올까.
아직도 한 번씩 아빠한테 가던 그 터널길을 지나면 눈물이 나는데.
갑자기 걸려오는 전화가 아빠전화일 거 같은데.
보고 싶은 우리 아빠.
천국 가서 이제 안 아프겠지.
아픈데 없으실 테니 그 좋아하는 복숭아, 거기서 실컷 드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