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츠비는 위대한가?

..라는 조금은 오래된 떡밥이지만, 각설하고..<위대한 개츠비> 읽기

by 이슬빛
위대한개츠비.jpg 전공 수업 때 접한 개츠비. 원서, 번역본, 영화를 통해서 세번 읽은셈.


소설의 화자


개츠비3.jpg

<위대한 개츠비>라는 소설은 화자인 닉이 자신의 아버지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어질 때면 네가 지닌 이점을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누리고 있지는 못한다는 것을 꼭 기억해라”


아버지의 이런 충고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닉이 이 말을 소설의 첫 머리에 넣은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것은 닉 자신이 스스로를 객관적인 서술자라고 말하고 싶어서 그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버지의 충고의 핵심은 모든 사람들에 대해 편견이 아닌 열린 마음을 갖고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보라는 것이었다. 닉은 이 말을 가슴 속 깊이 새겼고, 스스로 관용적이고 남을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실제로 닉은 많은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게 되 었고 더 나아가 그들이 자신의 고민과 속사정을 자신에게 털어놓게끔 했다.


닉이 믿을만한 화자인가, 아닌가는 개츠비가 위대한가, 아닌가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닉의 신뢰성을 인정할 경우 주인공 개츠비는 닉이 “그래, 결국 개츠비는 옳았다”(31)라고 단정하듯 작가의 도덕 규범에 부합되는 영웅적인 인물이 된다. 그리고 “위대한 개츠비”라는 이 소설의 제목은 정당화된다. 그러나 닉의 신뢰성을 부정하거나 의문을 제기할 경우 개츠비는 여러모로 흠결이 많아 작가의 도덕 규범에 부합되지 않는 반주인공이 된다. 그리고 “이 작품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며”(Stern 193), 제목 자체 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그런데, 닉이 인용한 아버지의 말은 공자가 말한 “화이부동”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지 않는가? 이는 다른 사람과 생각을 같이하지는 않지만 이들과 화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관계지향적인 철학이다. 이러한 철학이 닉의 아버지가 한 충고에서, 또한 닉에게서 잘 드러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닉만큼 객관성과 도덕성을 갖춘 화자는 찾아보기 드물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며, 우리는 닉의 서술을 믿고 따라갈 수 있다.



<위대한 개츠비>와 아메리칸 드림


이런 닉이 동부로 처음 왔을 때, 그에게 길을 물어보는 사람이 있었다. “웨스트에그”에는 어떻게 갑니까? 그는 길을 가르쳐주었고 자신이 안내자요 길잡이이며 초기 개척자라고 느끼게 된다. 스스로를 안내자, 길잡이, 초기 개척자라고 비유하는 것은 초기 미국을 이끌었던 개척정신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렇게 소설의 시작부터 뉴욕과 동부는 개척자의 도시, 아메리칸 드림의 터전이라는 느낌을 풍긴다.


또한 닉은 증권업에 종사하고 그가 읽는 책의 내용은 은행업과 신용대부와 투자 증권에 관한 것이다. 이는 닉이 금융업을 통해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을 보여준다. 소설이 나온 그 당시를 살아가는 젊은이들도 닉과 마찬가지로, 과거 미국의 경제적 번영을 재현하고 싶어했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미국의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이상에 대한 탐구라고도 할 수 있다.


개츠비 파티.png

그리고 이런 아메리칸 드림의 화신이 바로 개츠비이다. 개츠비는 자수성가하여 큰 돈을 모으고, 매일 파티를 연다. 그 파티를 연 목적은 자신의 옛 연인인 데이지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가 돈을 모은 이유도 옛 사랑을 되찾겠다는 자신의 숭고한 이상을 실현하고자 함이었다. 그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던 과거에 데이지를 만나게 되었고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전쟁 때문에 그녀와 이별을 해야 했고, 전쟁이 끝나고 돌아왔을 때는 상황이 많이 변해있었다.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사이 데이지는 톰 뷰캐넌이라는 예일 대학교 출신의 부자와 만나 결혼을 한다. 개츠비는 그가 처음으로 만난 상류사회의 여자인 데이지 앞에 당당하게 서기 위해 온갖 수단을 가리지 않고 돈을 모은다. 돈이 있으면 그녀 앞에 좀 더 당당하게 설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갖고.



개츠비의 한계

개츠비2.jpg

소설 속에서 개츠비는 바다를 두고 데이지의 저택 맞은편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녀의 집 앞에 있는 초록색 불빛만을 바라보며 그녀를 그리워한다. 초록색 불빛은 개츠비가 꾸어왔던 꿈과 이상을 상징한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원했지만 데이지는 이미 그가 손을 뻗어 닿을 수 있는 곳 너머에 있었다. 개츠비가 그리워하던 데이지는 지나가버린 과거 속에만 존재했고, ‘목소리가 돈으로 가득 찬’ 부박한 여자에 불과했다. 개츠비 자신도 이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을 직시하는 것도 잠시, 그가 쫓던 이상을 향해 다시 달려간다.


그러나 개츠비의 꿈과 이상은 현실 속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았고, 상상이라는 거대한 힘 속에 얼어붙어 있음과 동시에 과거 속에 갇혀 있었다. 개츠비는 데이지가 톰에게 가서 “난 결코 당신을 사랑한 적이 없어요.”라고 말하기를 원한다. 이는 현실감각이 없는, 설사 현실감각이 있더라도 현실을 외면해버리고 마는 개츠비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5년이라는 세월 동안 상상해왔던 데이지에 대한 환상은 너무나 커져버려서 실제의 데이지조차 그것을 충족시킬 수 없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과거를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데이지와 사랑을 나눴던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어쩌면 그는 사랑을 했던 것이 아니라, 사랑을 하고 있다고 믿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개츠비 6.jpg

이러한 개츠비와 극적으로 대조되는 톰은 어떤가. 톰이 데이지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것은 이전부터 계속되어 왔던 불륜행각들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톰은 데이지를 잃고 싶어하지 않는데, 이는 데이지를 하나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톰의 심리가 반영된 것이다. 톰에게 있어 데이지는 자신이 가진 막대한 부와 마찬가지로, 잃어서는 안되는 소유물이다. 또한 톰에게는 이상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누리고 있는 현실을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이는 데이지에 대한 집착으로 나타나고 이를 잃지 않기 위해 사랑을 가장한다. 사랑이나 정신적 가치를 위해서 물질, 돈, 권력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물질, 돈,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사랑, 순수, 정신을 져버리는 물질주의에 빠진 현대인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다. 닉은 이러한 톰에 대해 환멸을 느낀다. 반면에 개츠비는 데이지가 속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기는 하지만, 그녀에 대한 사랑을 져버리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좇는 이상과 사랑을 위해 물질, 돈, 권력을 희생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신변에 위협이 가는 행동도 마다하지 않는다.


개츠비의 위대성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꿈을 꿀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꿈을 가슴에 품고 그것을 추구하려는 자. 도덕적으로 타락한 면모도 보이지만 이상을 추구하고 모든 것을 그곳에 바친 헌신적 노력들이 닉의 눈에는 숭고하고 위대하게 느껴진 것이다.

결국 개츠비는 죽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츠비.gif 내가 지금껏 본 소설의 표지 중 가장 인상 깊게 남아있는 표지

이렇게 현실을 도외시한 이상은 무너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개츠비의 비극적 종말이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개츠비의 죽음은 물질적인 것에만 치우쳐져 있는 당시의 아메리칸 드림이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나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그를 한층 더 숭고하게 만들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개츠비는 소설에 등장하는 한 인물로만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개츠비를 통해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이상을 추구했던 당대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소설이 시대를 담고 있고, 좋은 소설이 시대의 감성에 호소한다는 말은 이런 것을 염두에 둔 말이 아닐까.


피츠제럴드는 최고의 지성이란 상반되는 두 가지 개념을 가지며 어떤 일이 가망이 없다는 사실을 꿰뚫어 보면서도 이를 바꿔보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개츠비가 그러했던 것처럼 이상은 비현실적이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 자체가 시대를 바꾸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개츠비 같은 인물들의 시도가 계속되고 닉과 같은 인물들이 그들의 정신을 계승하며 타락해버린 현실을 바꾸고 있다는 이야기를 피츠제럴드는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 있다. 그렇기에 개츠비는 죽었지만 그의 꿈은 아직 유효하다.


개츠비.png


2018.12.10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정리노트>심리조작의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