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기 전에 영화의 포스터부터 먼저 보았는데, 내용이 어느 정도 예상이 되는 그런 영화였다. 포스터에는 ‘보스를 국회로’라는 대문짝만한 글자와 그 위에 작게 ‘영웅이 된 보스의 통쾌한 한 방’이라고 쓰여 있는 게 줄거리를 어느 정도 예상하게 만든다.
사람부터 되세요
막상 영화를 보니, 포스터를 보고 예상했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거대조직의 보스로 ‘밤의 대통령’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세출은 시위 현장에서 만난 변호사 소현에게 한눈에 반하게 된다. 소현은 대면한 세출에게 일단 ‘사람부터 되세요’라고 말한다. 이 말을 계기로 세출은 개과천선하게 된다. 주요 자금원인 나이트클럽도 포함하여 불법적인 사업을 모두 청산한다. 과거에는 세출과 같은 조직폭력배였지만 정치계에 발을 디딘 보윤을 도와 무료배식사업을 돕는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발생한 사고에서 시민을 구해 목포의 영웅으로 떠오르고, 이어진 인기 덕에 국회의원에까지 출마한다. 목포에서 3선을 노리던 반대파 후보 만수는 라이벌 조직 광춘과 손을 잡고 세출을 무너뜨릴 음모를 꾸민다. 그러나 세출은 악당들에게 ‘통쾌한 한방’을 먹이고 결말은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이렇게 내용과 결말이 어느 정도 오픈되어 있기에, 이야기를 얼마나 잘 풀어가면서 관객에게 다가갈 것인지가 관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이 영화가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잘 다가온 것 같지는 않다. 설정이 비현실적이고, 진부하고, 투박하고, 웃음코드도 잘 안 맞았다.
우선 조직폭력배가 국회의원이 된다는 가장 기본적인 설정이 너무 비현실적이다. 조직폭력배를 현실에서 접하면 전화기에 가장 먼저 손이 가니, 세출은 경찰에 신고 당하지나 않으면 다행일 것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요즘처럼 인터넷이 발달해 비밀이란 게 없는 시대에는 과거를 파헤치기가 너무나도 쉽다. 어두운 과거를 세탁하기에는 너무나도 투명한 시대이다. 숨을 데가 없다. 게다가 우리가 공인들에게는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가. 애초에 우리나라에서 조폭코미디라는 장르의 영화가 쏟아졌던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조폭들에게는 발언권이 없으니 그들은 아무리 희화화해도 반발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비현실적인 일을 하려는 주인공에게는 일의 비현실성을 이겨내고도 남을만한 동기가 있어야 한다. 또한 그러한 동기부여과정이 관객에게 충분히 납득되어야 한다. 영화에서는 이 동기부여가 세출이 소현을 사랑하게 된 것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서, 영화를 본 관객이 얼마나 납득할지는 의문이다. 첫 만남에서 자기 뺨을 때린 여자가 갑자기 좋아지나? 호감이 들었을 수는 있다. 아무리 그래도 몇 번 안본 상황에서, 그 여자를 위해 자신이 수십년간 살아온 방식을 바꿀 만큼,생계가 걸린 사업을 처분할만큼 애절한가?
세출이 정치에 본격적으로 입문할 수 있게 하는 계기 또한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세출이 출마를 할 수 있게 된 건, 추돌사고로 인해 바다에 빠진 버스에서 운전기사를 구해내고 일약 영웅으로 부각되어서이다. 그런데 아무런 복선이나 암시 없이 추돌사고가 벌어지는 것은 이어질 전개를 위해서 만들어낸 억지설정이다. 또한 다른 승객들은 자신이 살기 위해 이기적인 행동을 취하는 가운데, 세출만 일면식도 없는 버스기사를 구하기 위해 목숨까지 내건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다른 승객들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행동이 오히려 자연스러웠다. 세출이 그렇게 이타적이고 정의감 넘치는 사람이었다면 왜 평생을 조직폭력배로 살아온 것일까? 그렇게 이타적이고 정의감 넘치는 사람이 어떻게 ‘밤의 대통령’이 되었는지, 그런 사람이 조폭으로 사는 삶이 가능하기나 한 건지 의문이 들었다. 또한 바다에 빠진 세출은 어떻게 그리 쉽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아 돌아왔나? 개연성이 없는 부분인데도, 영화는 거기에 대해 설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러니 세출이 갑작스럽게, 아무렇지도 않게 식당으로 출근하는 장면에서 관객들이 웃었다. 감독이 웃음을 의도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가상과 현실 사이
그리고 함께 빠진 버스기사와 세출을 바다에서 구한 건 구조요원들이다. 결과만 놓고 보면, 세출이 버스기사를 살리는 데 기여한 것은 없다. 버스기사는 세출이 없었어도 살았다는 것이다. 살리겠다는 마음이 갸륵한 것은 알겠지만, 마음만 갖고 영웅이 되지는 않고 될 수도 없다. 영화만 봐서는 사람들이 영웅으로까지 떠받드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이게 현실이 아니라면, 이 영화는 사람들을 우매하게 여기며 낮잡아 본 것이고 이런 것이 진짜 현실이라면 우리 사회는 아직도 포퓰리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또한 세출의 과거 에피소드들이 자잘하게 배치되어 있으나, 너무 진부해서 재미를 반감시킨다. 조직간 사투에서 친구가 죽고, 싸움에 끌어들인 당사자가 친구 어머니에게 평생 죄책감을 지고 사는 것은 이전의 많은 조폭영화에서 반복되었던 클리셰이다. 영화 전체가 진부하다.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목숨 바치고 악당과 싸워 승리하는 해피엔딩은 그렇다 치자. 개과천선한 조폭이라는 설정은 <파파로티>나 <해바라기>를 떠올리게 한다. 악당이 주인공과 과거에 악연으로 얽혔던 사이라는 설정도 <해바라기>와 비슷하다. 나는 세출의 모습에 자꾸 태식이가 겹쳐보였다.
액션? 생각보다 별로야. 코믹? 생각보다 웃기지도 않아.
물론 이 영화는 오락 영화니까 ‘그렇게 진지 빨고 보지 말라’고 지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도 물론 장르적인 특성을 고려해서 영화를 보았다. 원래 조폭영화는 새로움을 창출한다기보다는 연출, 연기, 배우의 매력 따위로 식상함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에 가깝다. 지루하거나 심각해지는 지점들은 과감하게 삭제한다. 의혹이나 의심이 깊어질 수 있는 지점도 결단력 있게 다른 씬으로 전환하거나, 유머로서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연출은 깔끔하고 연기와 배우는 거대하다. 그렇게 다른 관객들이 좋아할만한 요소만 남긴다.
내가 위에서 지적했던 부분들도 조폭영화의 특성을 이유로 들어 변호할 수 있다. 이런 영화는 클리셰가 넘쳐나는 대신, 계속해서 긴장감을 줘야한다. 관객이 긴장감을 내려놓는 순간 지루해지기 때문이다. 그 역할을 액션과 웃음이 해낸다. 그러면 결국 이 영화는 액션과 유머가 제 몫을 해냈는지를 따지면 된다. 액션이 사람들에게 통쾌함을 주었나? 유머가 사람들을 웃겼나?
액션신? 액션신은 많았으나, 관객으로 하여금 통쾌함이나 감동을 느끼게 할 결정적 한방이 부족했다. 사람들은 어떨 때 통쾌함을 느끼는가. 좋은 서사는 주인공이 악당과 싸울 때 사람들로 하여금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게 한다. 일단 사람들이 주인공을 응원해야 하고, 주인공과 악당의 힘이 비등해야 사람들이 조마조마한 싸움이 된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했던 이유로 주인공에 이입이 안 되니 주인공을 열성적으로 응원할래야 할 수가 없다. 너무 비현실적이고 진부한 캐릭터는 응원할 수가 없다. 그리고 악당이 너무 약해 주인공의 승리가 점쳐진다는 것도 다른 이유로 들 수 있다. 반면, 감독의 이전 작 <범죄도시>는 이와 달랐다. 서사가 헐겁고 진부해도, 강력하고 지독한 악당이 등장하여 보는 이들을 조마조마하게 했다.
뭐지?뭐야?
유머? 확실히 영화가 밝기는 밝았다. 청불이었던 범죄도시와 비교 해봐도 그런데, 전체적인 수위를 내리며 진입장벽을 낮추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런데 감독의 유머코드가 나머지 단점들을 보완 할 만큼 먹힌 것 같지는 않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패배한 악당들이 서로 마주보며 노래를 부르는데, 웃기기보다는 의아했다. 관객들도 상당히 당황했는지, “뭐지?” “뭐야?”라는 반응이 객석 곳곳에서 쏟아졌다.
과칠 공삼
그럼에도, 조폭과 정치인 둘 다를 크게 다를 바 없는 짝패나 거울상쯤으로 보고 있는 듯 한 감독의 시선이 신선했다. 3선 국회의원 만수는 조폭보다 더 비열한 짓을 많이 하고, 더 빈번하게 폭력을 휘두른다. 일이 잘 안 풀리면, 부하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것도 조폭과 닮아있다. 윗물도 더럽기는 마찬가지이고, 위로 올라가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는 권력의 생리를 꿰뚫어본 것 같다.
이건 영화 속 만수만의 이야기가 아니며 현실 세태가 그렇다. 한 국회의원이 국회연설에서 현직 대통령에 대해 무례한 막말을 일삼는 것은 광기의 표출에 가까웠다. 제1야당이 불법으로 국회사무처를 점거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정상적인 범위에서 벗어나는 짓이었다. 이를 두고 한 국회의원은 “조폭보다 못한 당”이라고 맹비난하였고 제1야당이 물리적 실력행사에 나선 것을 두고 ‘폭력정치’라고 규정지었다. 정말 누가 더 조폭 같은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며, 그들에게 "사람부터 되세요"라고 외쳐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것들을 고려하면, 영화가 완전히 별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보고 이 영화를 평가하라고 한다면, 과칠공삼이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