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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슬빛 Aug 27. 2019

삶의 가면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공중그네> 리뷰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의 직업 때문에, 또는 남들과의 관계에 지나치게 신경을 쓴 나머지 자신의 본모습을 감추고 가면을 쓰며 살아간다. 이럴 경우 자신의 본 모습은 가면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고 쭈글쭈글 망가진다. 

살면서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고 한다. 전자가 우리의 맨 얼굴과 관련된 것이라면, 후자는 가면과 관련된 것이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 혹은 우리에게 다려 있지 않은 것들이 가면(철학자들이 페르소나라고 했던 것)과 관련될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의 건강이나 재산상태, 혹은 평판이나 지위가 모두 타인들에 의해 평가 되고 이해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삶은 연극판처럼 진행되고 우리는 각자 맡은 배역에 충실해야 하지만 배역 이면에 있는 맨얼굴 또한 중요하다. 즉, 우리 자신의 고유한 믿음, 충동, 욕구, 혐오 등 우리 자신의 맨얼굴에 해당하는 것도 우리가 타인을 대할 때 쓰는 가면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다. 


이라부는 등장인물들의 맨얼굴, 그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들에게 알려주고 가면을 쓸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본성 그대로 살아가는 법을 그들에게 알려준다. 그는 가면을 쓰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한다. 그래서 그는 아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왜 그런지 저항할 기력마저 사라져버린다. 눈앞에 보이는 넙데데한 저 남자는 영락없는 다섯 살짜리 아이다.” 그러나 그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감추지 않는 솔직한 매력을 갖춘 사람이란 것을 깨닫게 된다. “신이치는 솔직하게 루키에 대한 반감을 털어놨다...아마도 상대가 이라부였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보통 의사였다면 아마 훨씬 더 체면을 차렸을 것이다. 자기 약점을 토로하는 일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이라부에게는 비밀을 털어놔도 아무렇지 않았다.”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는 영화, 연극으로 계속해서 리메이크 되고 있다.

공중그네에서 등장인물들이 가면을 벗어던지고 자신의 맨얼굴을 돌보는 법을 배웠다면 공중그네의 후속작 면장선거에서의 등장인물 안포는 필요에 따라서는 가면을 쓰는 법을 배운다. 너무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출한 나머지 그는 애써 만들지 않아도 될 분쟁에 자꾸만 휘말려든다. 그는 이라부와 유치원에 가서 자신이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자각한다. 자신은 타당하다고 생각한 행동들이 남들의 눈에는 이기적이게 비춰졌던 것이다. 이렇게 타인의 입장과 시선에 자신이 어떻게 비춰질지 거울삼는 계기를 마련한 안포는 남들을 좀 더 배려하는 사람으로 바뀌게 된다.

“다카아키가 고개를 깊이 숙였다. 일제히 플래시가 터졌다. 기자들의 태도가 바뀌는 걸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무리하게 거리를 좁혀 들어오지 않았다. 다음 질문도 나오지 않았다.”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는 삶에 대한 고통과 갈등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 수 있다. 그것은 맨 얼굴을 드러내야 할 때 가면을 쓰거나, 반대로 가면을 써야 할 때 맨 얼굴을 보여주는데서 발생한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맨 얼굴이 없다면 가면을 쓰는 일도 없다는 사실이다. 가면을 지나치게 신경 쓰는 우리에게 자신의 맨 얼굴을 잃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맨 얼굴이 건강하다면 우리는 여러 가면을 써도 자신을 잃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마치 주인공 이라부처럼. 불행히도 맨 얼굴을 관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신이 쓰고 있는 가면을 벗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가면을 벗는 순간 망가진 맨 얼굴을 볼까 두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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