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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슬빛 Sep 02. 2019

의붓가족은 위험하다?(수정)

<신데렐라의 진실>을 읽고

‘남자는 늑대다’라는 말이 있다. 남성의 성적욕망이 강하다는 것을 완곡하고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남자가 여성보다 성욕이 강하다는 것은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타당한 면이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옛날 옛적부터 그런 사실을 직관적으로 알고 이런 말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이렇듯, 대부분의 과학 분야가 대중적인 통념을 반박하려 하는 것과 달리 진화심리학은 대중적인 통념을 입증하려고 한다. ‘다윈의 대답’ 시리즈 중 하나인 <신데렐라의 진실> 또한 통속적으로 알려진 ‘표독스러운 의붓어머니’가 단순히 만들어진 이미지나 상상의 산물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과학적 “진실”이라고 말한다.

   

책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얘기는 좀 어지러운가”라는 시집이 떠오른다. 진화심리학을 논하는데 갑자기 왠 시집 제목이냐며 이해가 잘 안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정말이지 어지러우니, 한번 들어보시라.        


1.관찰

의붓자식을 학대하는 이야기는 민담에 자주 등장하는 단골메뉴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알려진 이야기가 신데렐라이다. 이 이야기는 약간만 내용을 달리해서 세계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 우리나라의 콩쥐, 일본의 베니자라, 인도의 무리몽이나 타니안같이 의붓어머니의 학대에 심한 고생을 했던 아이들 목록은 아주 길다.     

그러나 문제는 그저 민담이나 동화에만 등장하는 소재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치명적인 아기구타의 경우 52%가 의붓아버지에 의한 것이라든가 치명적인 구타를 한 의붓아버지와 친아버지의 비율은 150대 1이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의붓부모와 의붓자식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대부분은 살뜰한 애정을 느끼지 못한다고 답했고 이렇게 심각한 폭력과 살해까지는 아니더라도 의붓자식이 상당히 이른 시기에 가정을 떠난다는 사실도 이미 조사된바 있다. 친부모와 의붓부모의 자식에 대한 자원배분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었다. 자식이 친자식이 아니라는 진화적 근거가 있다면 양육투자는 자연스럽게 회피된다. 그리고 그 비율에 편차는 있었지만 캐나다, 영국, 호주 등의 지역으로 연구 범위를 넓혀보아도 그 결과는 비슷했다.     

2.주장(가설)과 증명


의붓부모의 의붓자식에 대한 폭력과 살해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같이 혐오스럽고 도덕적으로 사악해서 결국에는 몰락하거나 죽음을 맞이한다는 내용이다. 그것은 의붓부모의 폭력이 공동체에서 빈번하게 발생했기 때문에 억제하기 위한 나름의 자구책 아니었을까? 


렇다면 의붓부모는 왜 의붓자식을 구박하고 학대하며 살해하기까지 할까?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저자는 동물들의 사회적 행위와 인간의 행위와의 상관성과 유사성에 주목한다.


동물의 무리에서 핏줄로 묶이지 않은 가족 구성원은 가혹한 대우를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자의 경우에는 여자형제와 사촌, 어머니와 딸, 이모와 조카처럼 가까운 친족들이 집단을 이루어 산다. 혈연관계가 불분명한 수컷 두세 마리, 혹은 서너 마리가 암컷들의 무리에 들어가 지배하는데 기간은 기껏해야 몇 년 정도이다. 그런데 지배하는 수컷들이 바뀌면 이미 보호하고 있던 암컷의 새끼들이 차례로 사라진다. 새로이 등장한 젊은 수컷들이 이전에 있던 수컷의 새끼들을 차례로 찾아내 죽이는 것이다. 랑구르의 어린 새끼 살해뿐 아니라 암수의 역할이 바뀌지만 열대에 사는 새, 자사나의 경우도 똑같으며 다른 종들에서도 폭넓게 관찰된다. 


동물의 행동을 진화론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런 행동이 널리 퍼져있는 이유는 이런 행동을 하는 녀석들이 이런 행동을 하지 않는 녀석들보다 훨씬 빨리 번식하기 때문이다. 이런 행동을 하는 녀석들이 많이 살아남고, 따라서 이런 행동이 일반적인 행동으로 자리 잡는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종들도 자연에서 많이 관찰되지만 그것은 환경적 요인으로 원래의 성향이 억제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3.이론


이러한 현상은 당연하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종이 아닌) 개체의 유전자를 효율적으로 번식시키기 위하여 자손을 낳는다. 후대의 유전자를 위해 이 자손을 잘 키우는 게 관건인데, 그럴 때마다 양육 투자의 문제에 맞닥뜨린다. 자원은 한정되어있다. 그렇기에 부모는 자신들의 투자를 현존하는 자식들 사이에서, 그리고 현존하는 자식들과 잠재적인 미래의 자식들 사이에서 어떻게 가장 잘 배분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직면한다. 이때 분명한 것은 자식이 정말로 부모 자신의 자식인지를 나타내는 단서를 고려해서 차별적으로 배분된다는 것이다. 양육 투자를 받을 후보자가 부모 자신의 자식이 아니라는 진화적으로 신뢰할만한 지표가 있다면, 부모의 심리는 투자를 완전히 회피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기대할 수 있다. 개인은 집단을 위하지 않는 방식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숫사자는 친자식이 아닌 새끼를 잡아먹는다.

4.비판


(1) 이 책의 주장을 과학적인 설득력을 가지는 명제라고 볼 수 있을까? 일반적인 과학은 관찰 → 가설 → 실험 → 이론(증명)으로 이루어진다. 관찰을 통해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증명하는 과정은 일반적인 과학과 일치하나, 실험이 생략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즉 그럴싸한 설명은 되나, 그것이 사실인지 실험해볼 길이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극도로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책의 주장을 과학적 진리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난점이 있다.     

(2)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이 책은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통계학을 끌어들였다. 그런데 통계학에도 난점이 있다. 통계학은 경험적 근거를 바탕으로 해서 논리를 이끌어낸다. 예를 들어, 여러 번의 관측(통계학적 사실)을 통해 ‘번개가 치면 곧 천둥이 울린다’라는 명제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런 귀납추론이 진리가 되려면, 관찰의 수가 충분히 많아야 한다. 그런데 충분히 많은 기준은 대체 무엇인가? 책에서 주장을 입증하기 위한 근거로 든 영국에서의 통계 수치는 얼마나 충분한가? 세계는 넓은데 고작 다섯 개의 나라가 전 세계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을까?     

또한 반례 하나만으로 논증이 통째로 오류가 될 수 있는 한계 또한 존재한다. 실제로 의붓 부모가 의붓자식과 화목하게 지내는 무수히 많은 반대사례가 존재한다. 그런 경우에 대해서는 그 밑바닥에 있는 동물로서의 본성은 같을지 모르지만, 진화적 적응환경에 맞추어 핏줄과 관련 없는 관계에도 정성을 쏟는 것이라고 한다. 결국 “의붓부모는 의붓자식을 본능적으로 미워한다.”는 주장은 “의붓부모는 대체적으로 의붓자식을 미워하나, 진화적 적응환경에 따라 다르다.”라는 주장으로 수정된 것이다.     


왜 민담에서는 나쁜 의붓아버지보다 나쁜 의붓어머니가 많이 등장할까? 마고 윌슨은 그 까닭을 다른 데에서 찾지만, 나쁜 의붓어머니가 많은 것은 가부장제 문화의 산물이다. 가부장제 문화는 재혼하는 여자를 곱게 보았을 리가 없다.     


결국 신데렐라 민화에도 본능이 아닌 문화가 개입되었지만, 마고 윌슨은 문화를 간과하고 본성을 지나치게 중요하게 생각한다. 인간은 동물과 다르다. 인간의 본성은 문화와 제도를 거쳐 정반대의 방향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진화론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공동체를 위하지 않고 개체의 번식을 위하기 때문에, 혈족으로 이어진 15명 규모를 이루며 사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그러나 역사가 진행됨에 따라, 인류는 혈족이라는 본성의 한계를 확장시켜나가고 있다. 마을에서 제국으로, 제국에서 세계로. 문화의 힘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예전에는 뿔뿔이 흩어져 있던 유럽 국가들이 EU로 뭉치고 있다. 문명의 진보로 세계가 하나로 묶이고 뒤섞이면서 이민자에게 관대해지고, 아무런 유전적 상관관계가 없는 사람들도 긴밀한 관계로 결속을 이루어낸다. 


현대의 사회는 더 이상 예전만큼 피에 연연하지 않는 것이다. 이타성을 가능하게 한 것도 문화와 제도에 의해 인간이 학습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물의 세계의 관찰을 인간세계에까지 끌어들일 수 없을 것이다. 표독스런 어머니도 많지만 친절한 어머니도 많다. 진화론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해석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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