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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긍 Mar 19. 2020

#장애극복_그림에세이 풀리지 않는 매듭-6(완결)

-변해야 하는 건 ‘장애인 고용주’ 뿐이 아니다.

장애인 본인의 가치를 먼저 채워내야지.          

-장애인고용 포스터 응모 (16)   

                           



디자인 소식지에 미긍 작가가 도전할 만한 기회가 올라왔던데   해보실래요?ㅎㅎ'   

           

아침부터 메신저로 쪽지가 날아왔다.          보낸 이는 나와 동갑인 sns 친구다. 그는 입시미술학원의 원장이기도 하다.       


그럼 주노 친구 본인이 도전하세요..'          

나의 반응에 그의  마디.  

        

공모전의 주제가 장애인 고용이라 미긍 작가에게 

더 맞을 거 같아요.ㅎㅎ’    

         

.. 장애인고용 포스터 공모전이라고?’   

            

응모 작업을 하기  일단 ‘한국 장애인 고용공단 성격에 대해 파악해본다.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직장에서 차별 없이 함께 어울려 일한다는 의미가 강조되면 좋겠다.


그동안의 당선작들을 찬찬히 살펴보니 대부분 사진 작업, 컴퓨터 그래픽으로만 담겨있다.

 

아 복잡해. 자신 없어.ㅜ  




그동안 공모전에는 응모해본  없었다. 자신은 없지만   해볼까? 결과에 상관없이 ‘도전자체만으로 이미  가치가 있으니까.

‘가즈~ 아!ㅎㅎ’


사고 전에는 잠시도 그냥  적이 없다.

    

고교를 졸업한  학교  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포장은 예쁘게  자신이 생겼다. 대학을 다니면서도 

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이어왔으니. 패션 쪽의 일을 하기 직전까지는 말이다.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어 치료와

재활만 하자니 이제 좀이 쑤신다. 꽃으로 예술작품을 만드는

 ‘플로리스트 제대로 배워서 다시 도전해볼까 생각해보지만..   맞다. 이제  못하겠구나.’


꽃을 다루는 일을 다시 할 수 없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가 생겼다.

그건 바로 ‘가위질.’이다.   

     

꽃의 밑단을 정리해내며 다듬고 자르는 일이 잦은데 

 불편해진 오른손으로는 가위질이  된다.


왼손으로도 마찬가지다.


하긴 가위질을 한다고 해도  시력으로는 포장용지를 

똑바로 잘라낼 자신이 없다.  



그동안 복지관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취미로 그림을 하면서 그걸 감히 직업으로는 발전시킬 엄두를 내지 못했다.


 세상에 그림을  그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앞으로 대체 어떤 일을 해야 하지?’



    

어느  인터넷으로 일자리를 둘러보는데 눈에 들어오는 곳이 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과일빙수 전문 카페에서 

여종업원 구직 광고다.


 나의 문의 전화에 상냥한 목소리의 여사장이 직접 면접을 보러 오란다.     

       

그 몸으로
일을 해보겠다고?
정말 괜찮겠어..?”    
     

엄마의 걱정에 내가 웃으며 대답했다.

              

여긴 돌아다니면서
서빙하는 게 아니라 카운터에서
아이스크림이랑 주스만
 챙겨주면 된대.
 
일단 한 번 면접 볼게.
 내 사정 들으면 면접에서
 떨어질지도 모르고..
걱정 마.ㅋ”              


'몸이 불편하다는 사정은 면접을 보면서 말해야겠군.'

        아침부터 깔끔하게 옷을 갖춰 입고 숭실대 앞에 위치한 카페로 면접을 보러 간다.


 7호선 지하철역과 그리 멀지 않은 건물이라

 찾기에도 쉽다.


3층의 카페 매장에 들어가 보니

 큰 창에 햇살이 가득하고

작은 테이블과 소파로 가득 들어차 있다.


그리고 창가에도

1인용 테이블이 길게 뻗어있다.

되게 아늑하군. 그리고 초여름 날씨에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다.  

           

“어제 면접을 보기로 했는데요..

안녕하세요..?”     


내 어색한 인사에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여사장이다.  

   

 “네~ 어서 와요. 일단

 저랑 얘기 좀 할까요?”    

 

그러더니 한쪽의

 구석 테이블로 나를 이끈다.  

       

“전화 목소리만 들었는데

 인상이 참 좋아요. 호호홋”     

안경을 쓰고 뒤로 하나로 묶은 갈색 파마머리.     


눈썹과 다른 화장기 없이

자주빛이 감도는 립스틱만 발랐다.

 젊은 아기 엄마로 보인다.

이번에 처음으로 매장을 오픈한 모양이다.

몸에 좋은 웰빙 과일주스와

과일 아이스크림 카페로.  

      

“사실 제가

겉모습은 건강해 보이지만..

사고로 몸이 불편해요..”   


내 사정을 듣고 깜짝 놀란 듯

 여사장 눈빛이 떨린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가 끝나자 내 손을 꼭 잡았다.


“그래도 한 번 같이 일해 봐요.

천천히 라도 괜찮아요.”   

       

웃는 얼굴로 나를 잡은

여사장의 손에 힘을 더해온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나랑 일하면 분명

 고생하실 텐데. 홋;’     


마음의 준비도 안 된 나는

 그렇게 얼떨결에 일하게 되었다.     




대학교 앞 카페라 주 고객층이

 20대 초 중반의 대학생들이다.


아이스크림 하나 시켜놓고

스터디 그룹을 지키는 학생들도 있고

공짜로 에어컨바람 쐬려는 대학생들도 있다.


그래도 싫은 내색 없이

웃어줘야 그들이 단골이 된다.

좀 너무 하는군.   

       

고객들 대부분이

소액으로 큰 만족을 원한다.  

    

아이스크림을 담을 때도

양이 푸짐해 보이게 담는 요령이 필요했다.


음.. 양이 많아 보이게

과일로 장식하는 건 할만하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또 있었다. 이곳에서

 ‘가위질’보다

 더 하기 힘든 걸 발견하게 된다.    



여종업원이 아침마다

신선한 생과일들을 작은 크기로 썰어

용기에 종류별로 담아야한다.

 하지만 나는 ‘칼질’을 못한다.


한번 해봤지만

과일을 뭉그러뜨리기만 할 뿐

깨끗하게 썰어지지 않는다.


 ‘워메~아까워라..ㅠ ’    

          

내가 칼질을 못하는 걸 알고

여사장 본인이 직접 아침마다

과일들을 썰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고객들에게

인사만 잘하는 나를 자르지 않는

 여사장에게 참 미안했다.


게다가 또 다른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서있는 자세로 오래 있다 보니 열흘이 지나자 몸에 이상이 왔다.


다리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진다.


가만히 서있으면 후들거리는 다리.ㅠ      


결국 여사장에게 말했다.  


        

“제가 일하면서

사장님께 폐만 끼치고..      

너무 미안해요. 이제     

 다리에도 무리가 오네요..”      


조용한 나의 말에

 여사장이 안타까워한다.     

     

“아니에요~

다른 알바생들보다 나이도 있고

 끈기가 있어서 오래

 함께 일하고 싶었는데..

너무 아쉬워요.ㅠ.”     

       

'아..; 내가 다른 알바생보다

최고 연장자구나.ㅠ'  

   

하긴 고용된 알바 생 네 명 중에서

 꾀부리는 일은 별로 없었다.       

항상 15분 전에 출근해서 주변을 정리해왔으니.       


어쨌든 20대 후반에 하게 되었던

알바 도전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열흘간의 알바 비를 받아서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오며

 많은 것들을 느끼게 된다.    

 

 ‘골병’과 함께.ㅋ;             


일방적으로 누구의 잘못은 아니었다.

     

선한 마음으로 불편한 나를 고용했던

여사장의 마음에 좀 미안했다. 하지만 내가

 가치 있게 쓰임을 받기 위해서는

 '장애인'이라는 불편한 입장을 호소하기 이전에

본인에게도 반드시 노력이 필요했다.   

   

물론 그곳에서의 알바가

 내가 평생 몸담을 일은 아니었기에 노력할

 가치를 발견하지 못했다.


 아마도 ‘평생직장’이었더라면

 집에서도 ‘칼질’을 열심히 연마했겠지?

‘칼싸움’이라도 하면서.ㅋ;


만약 내가 앞으로

평생 하고 싶은 일을 찾는다면

 '장애인'이라는 입장에서 권리만을 내세우기 이전에

 본인의 가치를 먼저 높여나가기를 바래본다.  


      

 그 후 30살이 되면서

 내가 가치 있게 쓰임 받을 길을 찾게 되었다.


불편한 손으로 그림을 그리며

거기에 감성을 더하기 위해 나는 늘 채워내야했다.


글쓰기 강습도 받고 일러스트 학원을

 본격적으로 다니며 제대로 매진한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

이제 당당히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입장에서

글과 그림으로 말한다.





요즘 몸이 불편한 이들에게

교육기회가 주어지고 도전기회도 많아졌다.

그래서인지 실력 없이 단지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작가라 내세우는

 ‘장애예술인’들을 쉽게 본다.


단지 장애인복지관의

취미미술반에서 몇 년 활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작가라 말 할 수 있는 걸까?  


그들이 ‘장애인 예술가’라는 말을 내세우기 이전에

 본인의 작품의 가치부터 진짜 실력으로

 탄탄히 높여내는 노력이 우선일 듯하다.


일단 나부터 실력으로 승부해나가야지.

                  

그동안 내가 느껴온 장애에 대한 이미지를 생각해본다.

나의 경우 비장애인으로 건강하게 살다가 갑자기 사고를 만나 여러 가지 얻게  장애들.


 사실 그걸 풀리지 않는 매듭에 엉켰다고 비관해왔다.    

      

.. 장애를 ‘매듭이라고 표현한다면..

매듭의 긍정적인 가치는 뭐가 있을까?  


잘 풀리지 않는 탄탄한 매듭이야말로

어찌 보면 믿음직한 '인력'이 아닐까?


장애가 있는 직장인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물론 처음에 일을 배우는 작업이 서툴지 몰라도

 꾀부리는 일없이 탄탄한 일꾼으로 성장한다는 의미를 강조해 보기로 한다.      


그렇게 완성한 작품을 등록하고

 몇 주가 지나도록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좋은 경험이라 생각했다.


응모자 대부분이 디자인학부 대학생들이나

 디자인동아리들의 출품작이었으니.    

 

어...?! 근데

나에게 메일이 왔다.

 내가 당선이라고..?!  

   

물론 대상, 금상과 같은 큰 상이 아닌          

달랑 '입선'이지만 기대도 안 했는데

 아주 소박한.. 상금과 함께 ‘땡큐’다.     


나의  도전의 성공이라 더욱 값지다.


이제야 진정한 나의 길을 찾았기에.   


          



오늘도 쉼 없이

나만의 매듭을 엮는다.  


인생이란 인연의 끈을 엮어가며           

그 엉킴을 풀어내는 ‘매듭’이로다.   

   

열심히 매듭을 엮어내는     

우리 모두를 응원한다.   


      
‘매듭하세요.’ (작품 설명 :)

장애는 풀기 어려운 ‘매듭’으로 치부된다.
작가 본인의 경우도 중도장애로
‘매듭’처럼 모든 게 엉켰다 생각했다.
  
 하지만 ‘장애’라는
 ‘걸림돌’은 달리 생각해보면
나를 더 탄탄히 다지고
다시 일어날 수 있게 하는‘디딤돌’이었다.
                     
 장애인복지관에서
회원들의 활동을 보며 비장애인과 다른 그들의 가능성들이 ‘장애’라는 고정관념에 묻히는 게 안타까웠다.

 일하는 장애인을
쉽게 풀리지 않는 매듭,           

탄탄한 일꾼으로 묘사해 비장애인들과 맺어지는 관계 역시 매듭의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해보았다.   
   


     우리 함께
            매듭 하시지요.      
-포스터 부문 입선 (한국 장애인고용공단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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