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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긍 Jun 18. 2020

#그림에세이 당신이 감히 해서는 안 되는 것들.

-‘네가 나한테 어떻게 감히..?!’ 그녀는 전혀 모른다.그말의 위력을.

 "우리 커플 만나는  부럽다고 걔네들도 소개팅 받는다네-~"

-일러스트 에세이집 '아름다운 긍정 미긍' 중에서.


당시 만나던 남자 친구가 말했다.

얼마 전에 자신의 친한 친구들에게

여친이라며 나를 소개했었다.

      

대학교 동기인 친구들은 그동안

일 때문에 정신없이 바빠서 연애에는

그닥 관심이 없다고 했다.

그러다가 그에게 여자 친구인 나를 소개받아

부러워하던 시선들이 떠오른다.

      


그중 한 명은 170이 조금 넘는 키에

짧고 까만 머리, 다부진 체구의

수줍게 웃던 철민 씨라고 했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그보다 체격이 크고

벙글벙글 웃는 인상의 제국 씨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쟁이라도 하듯 비슷한 시기에 두 사람 다 핑크빛 연애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다.


본인들의 여친을 소개하던 자리,

나는 삭발한 짧은 머리에..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병원 휴게실에서 그들을 만났을 때

노란 프리지어 꽃다발을 내게 안긴다.


'아.. 그동안 이곳 병원 냄새가

너무 지겨웠는데 향긋하다.'


    

“안녕하세요?
얘기 많이 들었어요~ 호호..”  

그리고 옆의

다른 여성도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언니라고 불러도 되지요?
오호호홋"      



잘 보이지는 않지만

둘 다 목소리가 선하다.


그들을 가까이서 자세히 관찰해보니

그중 한 명은 짧은 단발머리에

동그란 눈망울, 작은 체구(초딩 몸매)였고

나보다 키가 한 뼘은 작아 뵌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나보다 세 살 어린데

(남친 철민 씨보다 7살 연하)

조용하고 무뚝뚝했던 철민 씨를

완전히 180도 딴 사람으로 바꾸어놓았다.




철민 씨는 이제 '다람쥐'의 약자라며

 '람지'라는 애칭에 스킨십까지..

서슴지 않는다.  

    

"오빵~ 아잉~

몰라 몰라요~ 까르르~"


솔직히 철민 씨와 큰 차이 없는

165가 넘는 큰 키에 마른 체형의 그녀가

넘 귀여운 척이라 속이 거북하다.

(큰 키에 날씬한 몸매가

부러워서 그런 건 절대 아님!;)   

  


처음에 소개받은 제국 씨의 여친은

회계로 일한다. 나와 공통점이 별로 없었지만 이내 찾게 되었다.


그녀도 큰 키에 어리고

연거푸 귀여운 척하는 람지가 그리

맘에 들지 않아 하는 눈치.


내가 그녀에게

휠체어를 돌리며 말했다.


 “우아~ 언니 저보다

 네 살이나 많은데 왤케 어려 보여요?!

넘 귀엽당~”


그리고 그녀에게만 들리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귀여운 척하는 저기..

람지보다 언니가 훨 귀여워요~ㅋ;'

      

결과는 역시나 대성공이다.


남친의 친구와 동갑인 그녀를

어려 뵌다고 마구 띄워주며 우리보다 어린 람지를 씹어댐으로써 그녀를

내 편으로 만든 것이다.


이내 그녀도 웃으며 나에게 다정히 말한다.

     

 “호호호~ 주혜 씨도

몸이 많이 아프다고 들었는데

인상이 밝아서 좋아요~”


그리고 그녀도 휠체어 뒤로 쓱 다가와서

 나에게만 들리는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저렇게 큰 다람쥐는

 생전 첨 봐요..귀여운 척 작렬~ㅋㅋㅋ'


이렇게 오고 가는 덕담(?) 속에

우린 점점 가까워진다.    

   

꽤 오랜 시간이 흘러 철민 씨와 람지는 결혼해서 두 아이를 낳아 알콩달콩 잘 산다는 것만 메신저의 사진으로 확인했다.


나는 오래 만나던 남자 친구를 놓아줬고

제국 씨의 그녀도 결혼 문제로

그와 옥신각신 하다가

결국 몇 년 후에 헤어졌다.


알고 보니 제국 씨가 뼛속까지 마마 보이였다나? 그렇게 남친과의 연결고리는 끊어졌지만 우린 꾸준히 만남을 이어간다.   

   



‘주혜야~ 이번엔

내가 잘 가는 유명한

중화요리 집 어때?’  

    

그녀가 메신저로 묻는다.  

   

 ‘어..? 중국음식?

 난 자장면, 탕슉 밖에 모르는데?;

그래도 나야 뭐든지 OK징~

이따 봐~’

- 일러스트 에세이집 '아름다운 긍정 미긍' 중에서

나와 함께 할 때마다 내 불편함을

먼저 챙겨주던 그녀.


자주 만나는 지인들도 잘 잊게 되는

그런 섬세한 부분까지 기억하는

언니의 꼼꼼함에 늘 감동이다.


      

가령 오른쪽이 차단된
내 시선 얘기를 들은 후부턴
 늘 나의 왼쪽에서 내 팔을 부축하며 걷는다던지,

오른쪽에서 발걸음에 걸릴 만한
위험요소를 미리 알려준다던지,

또 잘 못 하게 된 불편한 젓가락질에
미리 나무젓가락이나 포크를 주문하거나
구비가 안 돼있는 매장이라면 먹기 전에
그녀가 음식을 먹기 좋게 자르거나 비벼준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우린

명동거리를 한 바퀴 쇼핑하다가

차를 마시고 헤어지면 어느새

9시가 조금 넘는다.


집으로 돌아가려면 명동 역에서 4호선을 타고

사당 역에서 다시 2호선을 갈아타는

지하철 구간의 번호까지 외우게 되었다.


늘 외출이 새로웠던 나에게는 참 특별했다.

          



사실 앞에서도 언급했듯

예전에 친했던 친구들과는 결혼과 육아,

직장생활이라는 공통점이 없어지다 보니

 만나도 재미가 없어졌다.


그래서 내가 유일하게 사회에서 알게 된

은희 언니와의 만남이 더욱 각별했는지도 모르겠다.


명동에서 돌아오며 언젠가

그녀에게 뭔가를 보답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언니~ 올만.. 바빠?’  


본격적으로 일러스트를 시작하고

메신저로 말을 거는 나를 대하는 게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거리감이 생긴다.


한참 후에 그녀가 대꾸했다.


 ‘응.. 언니 지금 회사도 생활도.. 바쁘넹..

 나중에 말 시킬게...’  

    

그렇게 또 오랜 시간이 흘렀고

그녀가 전과 달라진 이유를 점점 알게 된다.  

아주 오랜만에 그녀의 메시지.   

     

‘주혜야~ 올 만이야!’   

  

‘와~ 언니! 올만~

인제 안 바빠? 잘 지내공?ㅎ’    

  

얼마 동안 서로의 안부를 묻다가 알려오는

그녀의 결혼 소식이다. 하긴 언니도 이제 나이가 있으니 결혼 생각을 해야겠지.


당시 그녀의 나이가 40이 얼마 안 남았으니.

결혼할 남성은 언니보다 몇 살 많은

육가공 업체를 운영한다나?


혼자서는 낯선 곳을 못 찾는 나이기에

엄마의 도움을 받아 예식장을 찾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아뿔싸!!?' 이내 고민이다.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남성이 생겼다는 것과

결혼 소식을 여유 없이 함께 알려왔는데 하필이면 그날이 아빠가 오래전 예약한 가족여행이었기에.


미리 알았더라면 일정을 피해 잡거나

여행이 하루짜리 일정이라면 빠질 텐데

 2박 3일에다가 숙소까지 이미 예약을 마친 상태.

특히나 장애인복지관이 아닌
일반 일러스트 학원을 다니며 다른 전공자 원생들과의 실력 차이(나이 차이 포함.ㅜ;)에 늘 주눅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또다시 사고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고

치료를 받는 것 아님 일주일에 100장씩 그림 숙제에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였다.


그래서 이번 여행이 사실 나의 휴식을 위해 마련된 일정이기도 했다.  

며칠 후 그녀에게 말을 시키며 슬슬 눈치를 본다.   

  

‘언니~ 요즘 결혼 준비 잘 돼가?

힘들겠다.ㅎㅎ~'


그러자 그녀가 잠시 후 대답을 한다.

 

’어 주혜구나?

언니가 요즘 정신없이 너무 바쁘넹.

시댁에 인사도 가고..

웨딩드레스 준비에 살림할 집에

혼수장만에. 넘 정신없어..’      


그렇게 그녀의 눈치를 보다가


 말을 이었다.


정말  많이 들겠다..
근데 어쩌지...? 정말 넘넘 미안해..

  아무래도 그날 결혼식 
참석    같아.. 전부터 
가족여행이 잡혔더라고.

2 3일이라 빠질 수가 없네.
미안해 정말!’      


그렇게 쩔쩔매는 내게

그녀의 짧은 메시지.   

  

‘뭐..? 뭐야?!!!

그게 말이야??!! 어떻게..

니가 감히?!!

언니 결혼식에 못 온다고?!!

감히...?!!’      


그 메시지를 보는 순간 정신이 아찔해온다.  

    

‘네가 어떻게

 감히...??!’

       

그 말은 10년이 넘게 이어온

우리 인연을 ‘감히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나와의 만남을 그저

봉사한다고 치부했던 걸까?  

    



그녀도 바쁜 일정 탓인지

그 후 더 이상 나에게

그 어떤 말도 걸지 않았다.


그리고 정말 신기하게도

나역시 점점 마음에서

그녀를 향한 미안함을 내려놓게 된다.

   

그렇게 1년이 채 안 된 어느 날

 그녀의 sns 메신저의 사진이

 딸아이의 얼굴로 바뀌었다.


어쩌면 덜컥 생겨버린 아이 덕분에

결혼을 급히 서두르며 그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았으리란 짐작이 간다.


 하지만 그 어떤 말도 걸지 않았다.


이제 '감히' 그녀에게

 말을 건넬 용기도 없는 소심함 때문에.

        



아이 그림을 자주 그렸는데

그림 소재를 찾다가 그녀의 아이의 귀여운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러면 한 번 그려볼까?


무심코 펜을 들다가도 황급히 내린다.   

   




'누군가의 마음에 감히..

상처를 입힐 권리는 어디에도 없어.  

   

 마음에 생긴 상처에  

꾸덕꾸덕 살이 차오르면..


그때 갚을게!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요.'


(20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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