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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긍 Aug 19. 2020

#장애이해 ‘소리’로 세상을 보는 그들 앞에서.(종편)

-‘앞으로 언니라고 해도 되죠? 언니~’ 헙. 내가 글케 어려보여?!

‘안녕하세요? 그때 강연 정말 잘 들었어요~’       


이른 아침 도착한 메시지.

첨에는 명진 학교 교직원인가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강연을 듣던 1학년

권민주 학생이다. 그렇다면 그녀도 눈이 불편할 텐데 어떻게 메신저를 보내지?


하긴 불편한 시력으로 나도 sns를 하니까 뭐.


나처럼 시력이 불편한 정도인가 보군.

          

그렇게 그녀의 메시지는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계속됐다.




사실 구체적인 내용을 꼽을 만한 것도 없다.


 ‘저는 매운 음식 못 먹는데
같이 다니는 애들이 매운 것만 먹겠대요~
ㅋㅋㅋㅋㅋㅋ...’


또는 날씨 탓에 기분이

울적하다는 것까지 보고한다.


윽, 그림 작업하는 데 집중할 수가 없다.  


Q. 그녀는 나한테
대체 왜 이러는 걸까?!ㅠ           


‘앞으로 언니라고 불러도 되죵? 언니~’      


헐. 아무리 내가 ‘동안’이라고는 해도

20년 이상 나이 차이에 언니라는 호칭은 좀 그렇다. 안 되겠다.


아무래도 교통정리를 해야겠군.   

         

‘민주 양, 저에게
그런 호칭은 좀 불편한데요..
그냥 미긍 작가라고 하는 게 좋겠어요.

그리고 새벽이나 늦은 밤까지
용건 없는 메시지도 좀...’          


그 후로 고맙게도

민주 양의 메시지가 잠잠해진다.


이제 개인전 준비에

매일 정신없이 바쁘게 지냈다.   

  

혼자만의 개인전은 장단점이 있는데

좋은 점은 전시의 컨셉을 내 마음대로 정하는 자유로움이 있다는 것.


그리고 어려운 점은 그림 재료와 액자들, 작품들을 디스플레이하는 인부들까지 일일이 신경 써야 하는 등의 번거로움이 수반된다.  

      

전에도 소개한 

나의 세 번째 개인전

 ‘사사 삵’ 전(展)이다. 


겉으로는 아픔이 드러나지 않아도

멸종위기 야생동물로 지정된 '삵'의 모습에

괜찮아 보이려고 애쓰지만 아직 장애로 힘든 나를 담는다.


그러고 보면 저마다의 아픔이 내재되어 있는 현대인들도 '삵'의 모습이 있지 않을까?


메인 테마 '삵'으로 전시 포스터가 나왔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이 몇 년 만에 내린
 ‘폭설’이란 말인가?ㅠ

        

일단 춘천 명진 학교의 교직원들에게도 전시소식을 알렸다. 얼마 후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교장이다.       


‘오! 미긍 작가님
초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이들과 교직원들 함께 갈게요. 하하..’


정말 감동이다. 사실 날씨 땜에

다들 올 거라고는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눈이 흩뿌리는 12월의 평일 아침 춘천에서 관광버스가 도착했다.


차량은 미리 말해둔 혜화아트센터 옆의 동성중학교 쪽에 주차했다. 내가 전시장 입구까지 나와서 모두를 반겼다.         

-전시장 입구    


“안녕하세요?
미긍 전시를 찾아주셔서
 너무 고마워요!”


많은 아이들이 새까맣게

전시장을 가득 메웠다. 교장에게 다가가 감사인사를 하자 그가 말한다.


“우리 아이들은 이번이
 전시장 구경 처음이에요.
 와보니까 너무 좋네요.”     


춘천에서 이곳까지 나들이가 아까워서

근처의 다른 전시장도 둘러보길 권했더니

다른 전시장에서는 관람의 의미가 없단다.


그림을 눈으로 감상할 수 없기에.   


    

이제 나는 작품들을 눈으로 볼 수 없어도

마음으로 그림의 감성이 느껴지도록

작품마다 안내를 했다.


‘흠.. 그런데 아이들의 반응들이 너무 늦다.

목소리를 낮춰 옆 여교사에게 물었다.

          

“선생님, 저의 설명이 좀 지루한가요?
아이들 반응이 너무 늦게 오는데.”


그러자 나에게 나직이 속삭이는 그녀.  

         

“아,, 그건 아니에요. 이 정도면
 아주 집중이 잘 된 거랍니다.
아이들은 그림의 설명을 끝까지 들어야만
작품 이미지를 제각각 상상할 수 있거든요. 호호..”  


아.. 그랬다. 시각으로 그림을 볼 수 없는 그들에게는 내 설명을 들으며 그림의 이미지를 상상할 여유가 필요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강연할 때에도

아이들의 반응이 너무 늦게 나왔다.

다른 교육기관에서처럼 화면을 보며 설명하면 즉각 즉각 나오는 반응을 기대했나 보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


교육기관을 돌 때마다 강조하는 건데

생활 속에서 내가 그걸 지나치다니. 씁;     


나의 설명이 계속 이어졌다.         


“이번 전시 메인 캐릭터는 ‘삵’으로 정했어요.

 '삵’의 생김새를 보면 살찐 고양이 같기도 한데 야생 동물이에요.
덥수룩한 얼룩무늬 털에 두 귀는 쫑긋 섰고 귀 끝에 검은 털이 몇 가닥 났어요.

그리고 다리는.. 두툼하고요.
입을 크게 벌릴 수 있어서 물어뜯는 힘이 무척 세다고 해요. 이 그림에서 삵이 바라보고 있는 건  여러 겹으로 보이는 교통 표지판 ‘좌절 금지’  저에게  생긴 시각장애를 삵이 보는 시선으로 의미했고요..”

 삵 위에 오른 건 '휘파람새.'
여기에도 13년 만에 불게 된 휘파람을 휘파람새로 담는다.    

- 웰페어 뉴스(17)  

  

아주 자세히 작품 설명을 하고는 그림을 상상할 수 있도록 기다리는 동안 나의 등이 축축이 젖어들었다.     


“여러분들은 혹시 ‘인형 뽑기’ 아시나요?
 동전을 넣으면 철제 상자 안의 인형을 뽑을 수 있는 게임이에요.

집게로 인형을 잡을 수 있는데 그걸 ‘인생 뽑기’로 재구성한 작품입니다.

 여기엔 인형 대신 여러 부류의 현대인들이 들어있어요. 피곤에 지친 회사원도 있고 사기를 치려는 작자들, 모두들 힘든 표정들이에요. 그들 중 누가 뽑혔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하는 미긍이 뽑히는 걸로 설정했습니다.

제가 뽑혀나가는 걸 기구 밖에서 삵이 지켜보고 있어요. 작품과 함께 나온 시를 읊어드릴게요.”    


인생 뽑기

           -미 긍    


여기는 노란 철제 상자

‘인형 뽑기’ 안이야.

   

“지이, 지이익~ 쓰으으윽~”  

내려간다, 내려간다.

    

“꽉 잡았다!”   

     

같은 표정의 사람들이

기다리는 이곳은‘사원 모집’ 대기실이야.        


‘두근두근,


어떤 걸 준비하지?’  

  

선택한다, 선택된다.


“뽑혔다!”   

 

세상은 언제나 긍정의 웃음만을 택하지.

    

마음을 다하는 노력이 먼저였어.

       

인생은 한판의  

‘뽑기 놀이’와 닮은 까닭에.


-a2 수채 펜/캘리


작품 에스코트를 마치며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마음을 다해 노력하는
 저와 여러분 되길 바라고요,
항상 웃는 거 잊지 말기예요. 아셨죠?”


아이들이 한 목소리로

“네~!”를 외치며 박수를 쳤다.     


전시 홍보를 언론에 부탁을 했었는데

이날 내 전시를 소개하며 나와 아이들 몇몇을 인터뷰했다.


이제 기념사진을 찍고 개인 시간이 주어졌다.


그때 나에게 누군가 반갑게 다가온다.

         

"헤헤.. 안녕하세요?!

미긍 작가님, 정말 반가워요!

제가 권민주 예요~ㅎㅎ”


 앗?! 그녀를 보고 너무 깜짝 놀랐다!?


 일단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곁에 길 안내 도우미로 보이는

20대 여성이 나에게 싱긋 웃으며 눈인사를 건넨다.


내가 민주 양에게 가까이 다가가니

그녀의 초점 없는 작고 뿌연

두 눈동자가 허공을 향해 있다.  

   

- 권민주 양과 도우미, 미긍


“아.. 민주 양!

메시지만 하다가 직접 만나니까 너무너무 반가워요~! 전시장 찾아줘서 정말 고맙고요~”


그렇게 말하고 나는 그녀를

품에 꼬옥 안아주었다.

    

빛을 볼 수 없는 학생들이

40%지만 민주 양이 혼자 활동할 수 없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녀가 너무 자주 보내는

sns 메시지 때문이었나 보다.


하긴 내가 시각장애인 복지관을 다니던

과거를 돌아보면 빛을 볼 수 없더라도

그들의 sns 공간은 열려있다.


물론 이미지를 볼 수 없지만

글이 올라오면 음성으로 인식되니까.

    

나의 목소리가 그녀에게 친숙하고 편안하게 느껴졌나 보다. 그렇다면 내가

'동안'이라 ‘언니’라고 부른 건

아니었던 거?!!ㅋ;




소리로 보는 그들과의 소통은  

‘봉사’가 아닌 앞으로도 더 열심히

도전해야 하는 이유다.  

                      

모두에게 힘이 되는 모습으로

‘사샤 삵~ 다가갈 테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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