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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긍 Jul 22. 2019

내 딸. 중환자실(음주운전 차량에 치인 후)

중환자실 내  딸 앞에서..

'요즘 딸래미 병세가 호전되는 얘기.     

듣는 나도 넘 신이 나! 오늘은 또 어땠어?! 호호홋~'       

 

지인들과의 통화에서 딸아이의 몸 상태를 얘기하는 게 빠지지 않는 하루 일과가 됐다.                     

  

 "요즘 딸이 왼쪽 눈만 번쩍~ 떴잖아~??     

이번엔 글쎄.. 입을 벌렸어!  진짜 신기하지?   곧 말도 할 거 같아!!~ 호홋"


  -병상/엄마의 시선-6   




  "환자가 의식을 회복할 가능성은 아직 희박합니다. 뇌에 피가 많이 차서 머리를 열 수도 없고 차라리 피를 말리는 약물을 투여하면서 환자 상태를 지켜보기로 하죠.. 그럼.."  의사들끼리 긴 회의 끝에 내린 결론이다. 내가 듣기에 복잡한 의학 용어로 무슨 말인지 통 모르겠지만 일단 딸의 머리를 안 열어도 된다고 하니 그것 만으로도 참 다행이다. 손상된 오른쪽 무릎과 탈골된 종아리뼈를 채우는 '대공사'도 마친 상태. 이제 산산이 부서진 골반이 문제다. 사고로 튕겨나 떨어지면서 여덟 조각났던 골반뼈가 틀어지지 않게 굳혀야 한다. 그래서 찾게 된 방법이 참 간단하고도 어렵다. 아이가 늘 침대에 묶여서 움직임 없이 굳혀야 하는 것. 담당의는 환자가 골반을 안 움직이고 뼈를 굳히면 될 거라고 쉽게 말했지만 그리 간단치 않은 문제. "어.. 어머! 안 돼!!.."  아이는 마비된 오른손 대신 왼손가락으로 깨진 골반을 손톱으로 후벼 파기 시작했다. 조각난 뼈의 환부가 붙으면서 묶여 있는 자리가 많이 가렵고 답답한 모양이다. '헉.. 이건 피?! 골반에서 피가..!!' 묶인 골반 붕대에서 피가 붉게 배어 나온다. 딸의 힘이 너무 완강해서 나의 두 손으로도 왼손 하나의 힘을 누를 수 없다. 답답해진 에미는 오늘도 눈물에 한숨만 짓는다.

  딸의 빡빡 밀은 머리가 듬성듬성 자라 올라온다. 뇌압으로 얼굴이 퉁퉁 부은 까닭에 누가 보더라도 나이보다 훨씬 어리게 본다. 최근 몸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지인이 적극 추천한 보양식을 알게 됐다. 그건 바로 곰의 '쓸개즙'이다. 그리고 이걸 섭취할 방법을 찾았다. 벌리지 않는 입을 대신한 다른 구멍을 활용하기로 했다. 바로 '콧구멍'에 호스를 연결해서 주입시키는 방법이다. 미개한 방법이라고 할지 몰라도 회복에 힘이 되고자 하는 에미의 '모정'을 막을 수 없다. 그게 효력을 발휘하는 걸까? 어쩌면 남성 간호사도 힘으론 딸을 못 당할 듯. 힘이 장난 아니다. 풀린 고삐를 채우듯 다시 왼손을 복대로 묶어 침대에 겨우 고정시켰다. 그때 내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따님 때문에 많이 힘드시지요..?"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덩치가 꽤 좋은 여성 '요양 간병인'이다. 당시 옆자리 환자 간병을 맡고 있었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본인이 맡은 할머니 환자가 다른 곳으로 보내진 다며 그만두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 자신이 딸아이를 돌봐도 되겠냐고 나에게 묻는다.  '휴.. 요양 경험이 많아 뵈는데 정말 다행이다!' 사실 간호 경험이 전혀 없는 식구들끼리 돌아가면서 병상을 지키는 건 아무래도 무리가 있다. 기쁘게 OK 했다.


   "주혜 어머님, 환자복을 받을 땐 미리 두 개를 받아놔야 해요. 환자를 씻기 전 새벽에 제일 먼저 받고 다시 요청해야 하죠. 그래야 약물이나 피가 튀더라도 위생적으로 갈아 입힐 수 있고..."  요즘 간병인의 한 마디 한마디를 다 놓치지 않고 지킨다.  ".. 그리고 거즈 수건도 반에 반으로 접어 이렇게 닦아내야 깨끗하게..."  간병인에게 배우는 병원 생활의 꿀 팁이 정말 굉장하다! 이래서 경험이 중요한 거구나. 오늘도 집에서 필요한 물품들을 챙겨서 차에 싣고 운전하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간병인 이모였다.  "주혜 어머님! 기쁜 소식이요. 오늘 주혜가 눈을 뜰 것만 같아요! 눈꺼풀이 가늘게 살짝 바들바들 떨리네요! 호홋"  내가 대답했다. "정.. 정말이요?! 어머 정말... 너무 감사해요! 얼른 갈게요!"  여의도 성모병원에 도착해서 떨리는 마음으로 아이에게 달려갔더니 간호원들과 주치의가 아이를 둘러싸고 있었다.

  "축하합니다. 따님이 드디어.. 눈을 떴어요! 곧 의식도 돌아올 거예요!"  아이는 한쪽 눈만 덩그러니 뜨고 무표정하게 있다.  "다들 넘 넘 감사해요! 흑흑.."  여의도 성모병원에 입원한 지 벌써 한 달이 됐다. 이렇게 왼쪽 눈만 번쩍 뜬 아이가 나를 보며 무슨 말이라도 할 것 같은데 아직 입을 꼭 다문 채 떼지 못한다. 그래도 너무 욕심내지 말아야지. 한쪽 눈만 뜬 채 또 보름이 지났다. 간병인이 또 나에게 말한다. "주혜 어머니, 이제 주혜가 입을 벌릴 것 같아요!"  그리고는 자신이 사 온 요구르트를 거즈에 적시더니 아이의 입 주변에 촉촉이 묻힌다. '난 하나도 모르겠는데 뭐가 다르다는 거지..?"  그러자 갑자기 아이가 재빨리 혀를 날름~ 내민다! 이번엔 신이 난 간병인 이모가 더 많은 양의 요구르트를 거즈에 적셔서 입 주변에 발랐다. 그러자 또 입을 벌려 혀로 입 주변을 핥는 아이.  "와~!! 정말 감사해요!! 이모님 최고예요..!"  노련한 간병인 이모가 입을 벌릴 때 거즈 수건으로 이빨을 닦아내고 혀를 소독시켰다. 입을 닫고 있을 땐 몰랐는데 딸의 앞 이빨이 두 개가 깨졌다. 바닥에 떨어질 때 충격으로 앞니가 깨진 모양.  그 날 병실에 모인 아이의 친구들과 근처 호프집에서 기쁨의 맥주 파티를 열었다. 이제 다 제자리로 돌아갈 거야! 여기 중환자실에서 죽어서 시신으로 나가는 환자들이 하루에도 몇 구씩이다. 환자의 주치의가 보호자를 호출하면 환자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봐 다들 긴장했다. 이제 많이 호전된 딸은 '중환자실'을 벗어나 '중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중환자실에 머무는 동안의 병원비는 자동차 두 세대.. 값에 버금갔다. 하지만 그걸 어디에서도 보상받을 수 없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음주 운전자들은 사고를 내더라도..

 보상으로 감방에서 몸으로 죗값을 치른다는 걸.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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