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xmas79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긍 Oct 31. 2019

#그림에세이‘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찾은 '빛'

만약 그곳에서 그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장애이해교육 #그림에세이 

“안녕하세요?! 잘 부탁해요.     

미술반 강사를 맡은 저는 일러스트레이터... ”                    

새로 온 강사는 나보다 몇 살 나이가 어린 일러스트레이터라고 했다. 나보다 한 뼘은 큰 키에 밝은 갈색으로 염색을 한 긴 생머리, 무채색 옷...

뭔가 좀 특이하다.  그녀가 하는 강의도 기존 해오던 정물이나 풍경이 아닌 자신의 생각을 그림으로 담으라고 한다. 이제 실로암 시각장애인복지관 미술반이 변화를 맞는다!

              

“일러스트는 형태가 꼭 반듯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오히려 본인에겐 비율을 따지는 

고전적인 서양미술보다 이 편이 훨씬 나을 거예요.

자신만의 자유로운 생각을 담아 보세요!”     

#장애이해교육 #그림에세이 


그녀와 함께 그림을 그리면서

내가 기존에 갖고 있던 미술에 대한 고정관념이 철저히 깨졌다. 강사가 주로 지도하는 기법은 ‘아크릴화’다. 수채화나 유화의 장점을 살려 개발된 물감이 아크릴 물감인데 습도나 온도에도 균열이 가지 않는 뛰어난 내구성으로 20세기 초기에는 벽화용도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사용도 비교적 간편해서 유화처럼 오일을 사용하는 번거로움 없이 수채화처럼 물로도 용해할 수 있다. 게다가 유화처럼 건조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기 때문에 빠르게 작업하는 현대인들에게 아주 유용하다고.             


강사는 검은색 용지에

기본적인 구도만 대충 스케치해서 채색하는 그림 기법을 소개했다. 아크릴 화는 틀리더라도 수채화처럼 번거로운 수정과정 없이 물감으로 덮어버리면 그만이다.        


‘와! 진짜 신기하다!

색감도 너무 선명하고..아크릴화를 배워두면 정말 유용하겠는데?!’                    

그녀에게 배운 기법 아크릴화로 자화상을 그려보았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물감이 붓에 스미는 느낌, 색감이 퍼지며 번지는 순간, 그 물감 냄새까지... 모든 게 신비스럽다! 물감이 마르기 전 촉촉한 상태에서 여러 번의 빠른 붓질로 두 가지 이상의 색도 묘~하게 혼합되는 매력이 있다.

#장애이해교육 #그림에세이 



하지만 붓으로 가볍게 색을 혼합하는 ‘블렌딩’(Blending: 섞다. 융합하다.)을 빠르게 할 수 없으니 미리 칠해놓은 물감이 이내 다 말라버린다.

나처럼 손이 잘 안 움직이는 장애에는

치명적인 단점인 듯.                      



“저 이제 그림 그리게 되었어요.    

그쪽 복지관 미술반에서도 반장이에요! 헤헷~”          

영어 반 모두에게 이 기쁜 소식을 알렸다. 내가 불편한 오른손으로 그림을 시작했다는 말에 강사와 여러 회원들 저마다 본인의 일처럼 기뻐했다.          


“우아~! 쥬디, 정말로 축하해요!”          

“쥬디! 혹시.. 그림 그리다가 손이 불편해지면 언제든지 미리 말해! 알지~?!”     

특히 봉사마가 나의 굳어오는 손을 사용하는 것에 마음을 써준다.                    

“주디 그림 정말 멋지겠다!!”

소리가 가장 큰 강 원장은 안마센터 '두드림'을 운영하고 있다. 50대의 그녀는 봉사마와 맹아학교 같은 학번 동기다. 맹아학교의 재학생 대부분이 아동기부터 성인이 되어서까지 연결되어 있단다. 그리고 선천적인 시각장애들끼리는 대부분 서로 친분이 있다.                    


봉사마의 유년기 교육원 시절 강원장과 더불어 한 방에서 취침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때 어두운 방에서 잠들기 직전까지 그들만의 ‘소리놀이’를 즐겼다고 했다.

그들이 소통하는 데 ‘빛’은 필요치 않다.

함께 하는 시각장애인들끼리는 숨소리만으로도 서로의 존재를 인지할 만큼 아주 친밀한 우정이란다.

‘봉 사마’의 안마시술소에서 ‘침 치료’를 받으며 들었던 얘기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세상에 오직 ‘소리’만이 그들의 ‘빛’이 되는 세상.

그것을 친구들과 늘 함께한다는 것.

그 얼마나 따스한 ‘빛’으로 다가올까?     



나의 친구들은 사고 나기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사고로 나의 모든 것들이 변해버렸고 변한 나를 ‘절친’일수록 더 포용하지 못했다.

어렸을 때부터 소꿉친구는 시집으로 외국에 이민을 가서 연락이 끊기고 다른 친구는 이혼 후 연락을 끊었다. 영원할거라 믿어 의심치 않던 학창시절 가까운 친구들은 모조리 연락이 안 되는 상태.     


그들 중 가장 찾고 싶은 ‘지연이’만은 내가 병원에 있을 때 걸려온 전화에 전화번호가 아니라며 못난 마음에 연락처까지 지워버렸다. 나는 여기에 이렇게 있는데 친구들이 바빠서 변해가는 모습들을 더 인정하기 싫었다.

나머지 또 다른 절친 네 명은

퇴원 후 더이상 나의 연락을 받지 않는다.

결혼 후에 연락이 뜸해지는 친구들을 보니

아무래도 여성 쪽이 결혼 후 아이 낳아 변해가는 환경에 친구까지 챙길 여력이 없는 듯.

사고 후 알게 된 인맥들은 나보다 높은 연령에 공통점은 그다지 없지만 나의 아픔을 진심어린 가슴으로 이해한다.  

        

수업을 마칠 무렵

강 원장이 나를 향해 넌지시 말했다.

“요즘 매장에 새로 인테리어를 하는데 쥬디 그림 걸고 싶네~ 호호”  

강 원장은 평소에 손이 커서 언제나 영어 반 회원들이 수업 중 먹을 간식을 대량으로 챙겨온다.

그녀 덕분에 헬레나와 아침을 거르고 바쁘게 이곳에 와도 영어수업을 받으며 커피와 함께 맛있는 빵을 먹고 어쩔 땐 점심으로 근사한 식사까지 대접받는다.

“네! 원장님 기다리세요~ ! 카운터 앞에 걸어둘 멋진 작품 선물할게요.”     

이참에 두드림 안마센터에 그림선물?! 좋~다!    

#장애이해교육 #그림에세이 

                              

사실 말은 그렇게 자신 있게 했지만

 도저히 엄두가 안 난다. 

이제 매주 수요일 미술반에서 나의 고민이 이어졌다.

‘두드림(dodream)은 불편한 곳을 두드림으로 편하게 풀어준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안마시술소 이름을 참 잘 지었다!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 작품으로 ‘두드림’을 표현하면 어떨까? 손으로도 볼 수 있는 ‘두드림’을 만들어보는 거야! 손으로 두드리면서 꿈을 행한다?!

아크릴화가 유화처럼 두꺼운 질감 표현도 가능하다고 했지? 아크릴 물감으로 두텁게 펴 발라 채색해서 눈으로 볼 수 없어도 손으로 만지면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내 지문까지 꼭꼭 눌러 찍어가며 드디어 나도 행복해지는 작품을 완성했다!


물론 지금 보기엔 너무 어설프고 허접하지만 나의 작품으로 기뻐할 누군가가 있다는 게 나도 기쁘다.  

A3 사이즈 이렇게 큰 작품으로는 첫 도전이다! 

      #장애이해교육 #그림에세이 

-일러스트 '두드림(do dream)'(2008)                  


그림을 그리는 게 이렇게 나의 재활치료와 취미가 되고 그렇게 나온 그림을 선물하며 나누게 되었다. 고교 동창인 정미의 결혼 선물로도 아크릴물감으로 그린 그림 ‘함께’를 선물했다.  

-함께 (아크릴화 2008)                              


어느 날 미술반에 갔더니 어쩐지 분위기가 어둡다?!

나와 친한 언니가 하는 말.          

“반장~! 어떡해.. 이제 미술반이 없어진대!”          

헉. 미술반이 없어진다고?!


곁에 있던 강사가 자세한 얘기를 한다. 이제 복지관 수업이 취업중심의 교육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미술반 같은 취미 반은 없어진다고.        

그리고 강사가 눈물을 글썽이며 우리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간 3년 반을 미술반 활동을 함께 하며 즐겁고 너무 감사했습니다! 제가 강사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 많이 배우고 갑니다.”

너무 섭섭한 마음에 짐을 정리하며 마지막 수업을 마쳤다. 

그녀를 복지관 입구까지 배웅하려는데 강사가 나에게 말했다. 

    

“저랑 커피 한잔 하실래요..?”     

우리는 복지관 입구의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뽑아 마셨다. 

    

“이제 미술반이 없어지니 너무너무 아쉬워요!” 나의 말에 그녀가 본인의 진심을 말한다.          

“주혜 님은 본격적으로 그림에 도전해보세요! 복지관에서 취미로만 그림을 그리기엔.. 주혜 씨 재능이 너무 아까워요. 이제 일러스트를 시작하세요!”                    


복지관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

 그 자체만으로 나에게 커다란 에너지였는데 

이제 너무 막막하고 아쉽다. 


 '일러스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해보세요.' 라던

 그녀의 말이 한동안

 나의 귓가를 왕왕 거린다.


기회는
아주 우연한 기회에 다가온다.
이제 나의 진짜 ‘빛’을
보게 되었으니.
(2009.12)   
매거진의 이전글 #장애이해 #그림에세이 엄마의 꿈 '해피아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