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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긍 Nov 02. 2019

#장애이해- 도전이라는 새로운 '운명!?'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나. 비로소  '작은 사회'를 본다!?

‘어쩌지? 반장- 오늘 약속.. 아무래도 안 되겠어.     

이번에 시험관 아기가 착상이 돼서 당분간 움직이면 안 된대.     

외출도 못하게 하니까 진짜 답답해 죽겠어.

이번이 벌써 네 번짼데.. 휴-’  

                  

신발 신고 막 나가려는데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 약속 아무래도 안 된 댄다. 시각장애인복지관 미술반이 없어져서 섭섭한 마음에 그림전시라도 관람할 생각이었다. 시험관으로 아이를 임신을 해도 언니 몸이 워낙 약해서인지 자꾸 유산이 된다.


하긴...  아동복 사이즈의

부서질 것 같은 요정 같은 몸매.

게다가 나이도 40대 중반이라 쉽지 않다고.

아쉽지만 할 수 없지.

괜찮다며 언니와 전화를 끊었는데

이미 준비한 터라 그냥 집에 있기엔 아쉽다.


전시를 혼자 볼 만큼

이렇게 적극적인 적 없었는데 내가 이상하다.

왠지 그곳을 찾아가야 할 느낌...?!          


나 혼자서 전시장을 찾기로 한다!               

인사동 그림 전시라고 했지?    

  

인터넷에 나온 전시 관련 문의전화를 했다.     

‘아.. 인사동 전시요? 이미 종료됐는데요?      

그건 저희 학원생들 작품전입니다.’  

전화를 받은 그가 일러스트 학원 원장인가 보다.

내가 너무 아쉬워하자 학원에

그림 구경을 하러 들르란다.


음.. 일러스트 학원이라고..?

내친김에 전시장 가려던 발길을 학원으로 돌렸다!  


        

신촌역 6번 출구에서

좁은 비탈길로 쭉 내려오라고 했다.      

그리고 찻길을 건너서 내려가 하고.. 학원으로 가는 길 안내를 마치 주문처럼 혼자 되뇌는데 오른쪽으로 들어가는 길목 입구가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미안하지만 나의 문의전화가

계속 이어졌다.

원장이 다시 설명을 해도 못 알아듣겠다.

신촌 역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등 주변을 삿삿이 40분가량 배회했다.

              

 “정말.. 못 찾겠어요.

그냥 다음에 들를게요..”     

한숨을 내쉬던 원장이 결국..

역으로 나를 데리러 오기로 했다.  

    

몇 분 후 작업복 차림의

그를 만나 인사를 꾸벅하는데..

사실 깜짝 놀랐다. 곱상한 그의 얼굴이

온통 ‘보랏빛이다!?’


얼굴에 화상을 입은 건가..?

괴이한 원장의 얼굴빛과 골목으로 들어서는 길이.. 좀 무섭.. 다.  

             

‘아. 오른쪽으로 꺾인 작은 골목이

내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구나.’     


4층짜리 오래된 건물에 들어서자

학원은 지하에 있단다. 원장이 계단으로 재빨리 내려가려는데 내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저기.. 계단 내려가기

 다리가 불편해서요..”

게다가 온통 어두운 계단은 앞도 보이지 않는다.

그의 부축을 받으며 아주 어두운 복도 계단으로 내려왔다. 왠지 더 무섭.. 다.


그렇게 겨우 내려와서

드디어 학원 문이 활짝 열렸다.

갑자기... 눈이 너무 부시다!

학원 안은 온통 딴 세상이다.            

벽의 곳곳에는 원생들이 작업 중인

그림 흔적이 붙어있다.

핑크, 주황, 블루...

너무 색이 선명하고 아름다워서 멀미가 났다.


재잘재잘 떠들면서 바쁘게 작업하는 원생들 대부분은 20대, 많아봤자 30대 초 중반으로 보인다.

스무 명 정도 되는 그들 앞에는 작업 책상들이 길게 있고 어디선가 음악이 흐른다.


눈에 갑자기 밝은 빛과 색채가 들어와서였을까?

눈물이 멈추지 않고 볼을 타고 흐른다.

이제 나도 그들처럼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별 일러스트 학원’이라고 한다.      

그림을 구경하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

자동으로 원장실을 노크했다.

그리고 손 원장에게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그림 잘 보셨나요? 원생들은 미대생들과

그림 작가 지망생들로 구성되어...”      


원장의 얘기를 듣고 솔직한 나의 사정을 얘기했다.


사고로 장애를 입어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그림을 그리던 이야기, 사실 이곳을 혼자 오는 것도 오른쪽 시선이 차단된 시각장애 때문에 찾지 못했다고.


내 얘기를 듣고 놀란 표정의 원장이

종이와 펜을 내 앞에 내밀었다.      

“오른손을 얼마나 움직일 수 있지요?

여기에 기본적인 도형을 그려보세요.”  

     

내가 느린 손으로 꼼지락 꼼지락...

도형들을 열심히 그리자 원장이 내 모습을 말없이 오랫동안 지켜본다.

그림실력을 평가받는 기분.

등에 식은땀이 쪼르륵.. 흐른다.  

    

“그림 속도가 많이 느리네요.

차라리 왼손으로 그리는 게 어떨까요?”     


아, 존심 무지 상해!ㅠ

목구멍으로 뜨거운 게 왈칵.. 밀려왔다.     

 “아니요. 그건 안돼요! 오른손을 쓰지 않으면

계속 마비가 와요. 오른손으로 할래요. 흡...”               

나의 작은 울먹임에 원장이 말을 잇는다.     


“마음을 단단히 정리하셔야 할 거 같아요.      

이곳은 월~금요일까지 매일매일

배우는 과정이 달라요.

여섯 명의 강사로 구성되어 있지요. 오전부터 오후까지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는 개인 공간입니다.”     


그리고는 글 수업은

두 명의 강사로 이뤄진다고 강조했다.

또한 강사들마다 강연 비용은

본인의 친분으로 저렴하다했다.

그래도 학원비가 39만 원이란다. 헥?! 비싸.. 다.


복지관이랑 비교하면 안 되지만..

사각장애인 복지관은 1학기가 2만 5천 원이다.

설명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여러 생각이 겹친다.

               

사실 실로암 시각장애인복지관 미술반이 없어진 후

강남장애인복지관에서 나만을 위한 도구와 공간을 마련해줬다.


하지만 미술도구가 있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었다.

그림을 구성해나갈 생각만 있다면 도구는 아무래도 된다는 걸 후에 느낀다.


이제 겨울이 깊어지고

내리막길에 얼음이 얼면 걷기 더 힘들어질 거야.      

그렇게 그 겨울을 보내며 결심을 굳혔다.     

 ‘그래. 이 겨울을 보내고

    봄에 시작하자!’        



그날 저녁 나의 발톱을 정리해주는 엄마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엄마, 나 그림 그릴 곳 찾았어.

이제 장애인 복지관이 아니야!”      

나의 장황한 설명을 들은 엄마가 내가 이상한 꼬임에 넘어간 게 아닌지 불편한 딸을 걱정과 의심부터 하는 게 어쩔 수 없다. 그렇게 불안과 걱정이 이어진다.     

“네가 그런 전문 일러스트 학원 수업을 따라갈 수 있을 거 같아? 너 혼자서는 발톱도 못 자르잖아-”                


‘나중에 그림으로 돈 많이 벌면..     

발톱부터 관리받아야지..?!     

그땐 엄마도 함께 받게 해 줄게!’


그렇게 그림을 정식으로 시작만 한다면 다 이뤄질 거라 막연히 기대를 했나보다.      


하지만‘별 일러스트학원’은  

더 이상 시각장애인 복지관이 아니다.

내가 모두의 이해를 받는 막둥이도 아닐뿐더러

 그들 중 가장 잘 보는 ‘반장’도 더더욱 아니다.      


그보다 앞서 나의 아픔에 더 이상 아무도...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아니.. 전혀 관심이 없다.      



이곳에서 냉정한 작은 ‘사회’를 본다.     

'내가 앞으로  

잘 해낼 수 있을까..?'     

(2010~2012)

-나만의 발 관리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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