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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긍 Nov 21. 2019

#장애이해 ‘간을 봐드려요. 아멘-’

-눈이 불편해지면서 예민해진 감각. 기가 막히게 간을 잘 맞춘다!

어쩌다가 보니...     

교회 ‘간잽이’가 됐다!


-나의 ‘간잽이’ 생활 (2009~2012)

#그림에세이 #장애극복_미긍에세이

#장애아티스트          



“할렐루야~ 안녕하세요?

 이거 받으세요! 허허..”     

 5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늦은 오후 집 방향으로 걷는 나의 걸음을 잡는다. 그냥 지나치려는 내게 초콜릿을 한 주먹 쥐어준다.


그는 내가 걸을 때 걷는 모습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리고 왜 이렇게 걷는지 묻지도 않는다.


당시의 나는 오른쪽 다리를 제대로 땅에 딛지 못해

불편한 오른쪽 다리를 질질 끌었다.     

‘어...? 이건 꽤 비싼 초콜릿이다!

교회에서 나눠주는 거치곤 꽤 고급인데?’     

#그림에세이 #장애극복_미긍에세이

#장애아티스트    


                     

집에 와서 초콜릿을 먹어보았다.

    

내가 초콜릿에 열광하는 어린아이도 아니고 좀 유치하지만

 초콜릿이 꽤 맛있어서 가만히 주보를 들여다보았다.


 ‘집 근처에 교회네..?’     

#그림에세이 #장애극복_미긍에세이

#장애아티스트    


      

나의 세례명은 ‘안젤라’다.     

조용하고 엄숙한 성당 분위기에 익숙해서 교회에 다닐 생각은 해 본 적 없었다. 하지만 그날 받은 초콜릿에 마음이 흔들린 걸까?  

   

 ‘가족적인 분위기’라는 교회를 한 번 찾아보기로 한다. 안 그래도 어두워진 시력과 방향감각인데 교회 주보에 나와 있는 주소만으론 도통 교회의 위치를 찾기 힘들다. 평소 걷다가 봤던 맞은편에 큰 교회를 막연히 그쪽이라고만 짐작했는데 교회 명을 자세히 보니 그곳이 아니다.

#그림에세이 #장애극복_미긍에세이

#장애아티스트  

        

 “아이고~ 안녕하세요?!”

때마침 나를 알아본 목사가 나를 반긴다.      

나도 그에게 인사를 하며 교회에 방문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전했다.

그러자 목사는 반가운 마음에 나의 손을 덥석 잡는다.


이윽고 목사 손에 이끌려 들어온 공간은 정말 ‘가족적인 분위기’다?!


주말 오후인데 정말..

목사 내외의 가족밖에 없는 아주 소박한 신설 교회였다.               

선한 인상의 20대 초반 자녀들이 나를 반긴다.     

“우아~! 정말 반가워요. 언니, 아니 자매님!

이제 신자가 한 명 더 늘었네요. 호호홋”     

내가 아무래도 엮인 거 같다.


#그림에세이 #장애극복_미긍에세이

#장애아티스트          



그렇게 집 근처 교회를 다니던 게 2년을 채웠다.

아직은 소규모지만 자리를 잡아 교회를 다른 곳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이제 신림 역에서 쭉 들어가 고시촌 골목에 위치한 오래된 건물 4층이다.

         

신림 역 7번 출구에서 나와 3 정거나 더 들어가야 하는데 혼자서는 버스를 탈 수 없다. 일단 버스노선이 안 보일뿐더러 승차하고 내리는 것은 물론 흔들리는 버스 내에서는 균형 잡기 위험하니까. 그렇다고 매번 택시를 잡아타기에도 버겁다.  

   

지하철을 몇 정거 타고

신림 역에 와서 목사가 운행하는 교회 차량을 탄다.


그날도 신림 역까지 지하철로 왔다가 교회에 와서 예배준비를 했다. 그곳에서 내가 맡은 직책도 있다. 매주 일요일 아침 일찍 사모가 신자들이 먹을 점심을 준비하는데 15~18인분 정도 되는 양에 간을 맞추는 게 버겁단다.     

이럴 때 내가 맡은 직책

‘간잽이’가 필요하다!

잘 안 보이면서 ‘청력’과 더불어 예민해진 감각이 ‘미각’이다. 교회차량을 이용하다보니 일찍 도착한다. 점심식사 준비로 분주한 사모의 옆에서 일을 거든다.     

          

“이거 찌게 국물 좀 떠봐요. 간 괜찮아..?”     

내가 한 술 떠서 신중하게 국물의 맛을 음미한다.     

 “음.. 지금은 약간 심심한데

 좀 더 끓이면 간이 맞겠어요.”     

그러자 사모는 다른 반찬들도 차례차례 나에게 선보인다.

부침이랑 무침 종류들..     


오늘의 음식도 역시 내가 먼저 간을 본다.     

나는 전문적인 ‘간잽이’니까.        

-‘미긍 숫가락’ (2014)     


모두 함께 찬송을 할 때면 찬송가 가사를 볼 수는 없어도

 이제 ‘음감’만큼은 많이 익숙해졌다.


오늘은 아주 맑고 푸른 가을 하늘의 축복받은 10월이다.

교회에서 돌아오는 세 정거되는 거리를 신림 역까지 천천히 걷거나

집에서 엄마나 아빠가 차로 나를 데리러 오는 게 이제 익숙하다.  

             

김 집사가 오늘따라 나에게 말을 많이 건다.     

그녀에게는 나보다 몇 살 어린 자녀가 있는데 먼 걸음으로 교회까지 오는 나를 늘 마음을 써준다.   

  

 “주혜 자매! 오늘은 내가 신림 역까지 데려다 줄게요!

나 오늘 차 갖고 나왔지~호호”     

초보운전으로 교회까지 왔다고 자랑하던 그녀가

고맙게도 나를 역까지 데려다준단다. 내가 기쁘게 답했다.    

 

“우아~ 정말 너무 감사해요!”     

오늘은 집에서 안 데리러 와도 되겠네. 잘 됐다!  

#그림에세이 #장애극복_미긍에세이

#장애아티스트     

 

  

엄마에게 바로 핸드폰을 했다.               

“엄마! 여기 집사님이 신림 역까지 데려다주신대. 엄마 안 나와도 돼요!”     

그때였다. 집에서 전화를 받던

당황스러운 엄마 목소리가 핸드폰 저편에서 들려온다.  

   

“어멋, 갑자기 컵이 미끄러져서

 물을 다 엎질렀네?! 응응.. 그래.. 조심해서 와...”   


            

“조 집사님을 먼저 모셔다 드리고

주혜 자매 신림 역까지 데려다줄게. 조 집사 댁은

고시촌 위로 한참을 올라가야 한 대요.”     


첨으로 김 집사의 차를 타본다.     

뒷좌석에 할머니 집사가 먼저 승차하고 난 조수석에 앉았다.

낯선 차량에서 안전벨트를 하기엔 왠지 번거롭다.

 금방 내릴 거라는 안일한 생각에 안전벨트도 착용하지 않았다.

#그림에세이 #장애극복_미긍에세이

#장애아티스트          


우리가 탄 차는 그렇게 신림동 고시촌 꼭대기로 향했다.

이제 중형차량이 산 꼭대기를 향해 올라간다.


덜덜덜... 이렇게 좁은 골목이 있었네?

사실 신림동도 아직 낯설은데 이렇게 등산을 하는 듯 차로 오르는 게 신기하다. 그때였다.    

 

"어..? 왜 이러지..?! 차가.. 안 멈춰. 어..?!"

엥?! 나도 웃음 짓던 안면이 굳어버린다!   

            

"차.. 차가.. 안 멈춰.. 으 악... 주혜 자매....!"     

차가 갑자기 골목을 뱅뱅 돌기 시작했다. 그렇게 돌던 차량은 브레이크가 말을 안 들어 멈추질 못한다! 이제 어떡하지..!? 나는 안전벨트도 안 맸다!!?     


고시촌 좁은 골목을 미친 듯이 뱅뱅 돌던 차량은

 전봇대를 쾅-!! 아주 세게 들이받아 겨우 멈췄다!!


나의 선글라스가 날아가고 에어백이 터졌다.

 반사신경이라는 게 참 무섭다.

 마비된 오른손 대신 불편하지 않는 왼손으로 에어백을 자동으로 막았다.     


70km 속도를 넘기면 터진다는 에어백이 터졌다!

차가 전봇대를 들이받을 때의 충격이 탈골된 오른쪽 다리를 정통으로 가격했다.

              

‘으윽.. 내가 이렇게 죽는 거구나.’     

에어백을 막던 왼손이 부러졌다.     


뒤집힌 백밀러가 검다.     


점점 의식이 흐려진다.

(2011.10 )


#그림에세이 #장애극복_미긍에세이

#장애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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