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짧은 그림소설 #07
크리스마스이브의 밤은 퇴근이 빨랐다. 빵 집에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사 가기로 했다. 하지만 자주 가는 빵집에는 케이크를 사는 사람들이 뱀처럼 길게 줄을 서 있었다. 그래서 그냥 집 앞 편의점에서 빵을 샀다.
집에 도착하니 저녁 6시가 넘어있었다. 옷을 갈아입고 사 온 빵을 입에 넣고 티브이를 틀었다. 빵을 물고 나서야 단팥빵인걸 알았다. 크림빵이라고 생각했는데 왠지 속은 기분마저 든다.
그때 현관문 노크 소리가 났다. 빵을 씹고 있던 입을 포함해서 나는 정지 상태가 되어버렸다. 누군가 티브이 리모컨으로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하지만 실제 티브이 속 세상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현실은 늘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나는 말했다.
“누구세요?!”
“아랫집 할머니야!!”
집주인 할머니 목소리였다. 나는 일어나서 문을 열었다. 할머니의 손에는 작은 봉지가 들려있었다. 할머니는 그것을 내게 건네며 말했다.
“크리스마스인데 집에만 있을 것 같아서 내가 빵을 가져왔어.”
“데이트도 귀찮고 해서.. 하하” 사실 나는 솔로다.
“이거 먹고 크리스마스 잘 보내. 그리고 난 1박 2일로 집을 비우는데 혹시 건물에 무슨 일 있으면 연락 좀 줘. 알겠지?”
“걱정 말고 다녀오세요. 전 이곳을 지키는 경찰관이 되고 있겠습니다. 하하”
할머니가 건네준 검은 비닐에는 단팥빵이 3개와 작은 흰 우유 3개가 들어 있었다. 나는 우유 한 개를 따서 마셨다. 시원한 우유였다. 빵 한 개를 다 먹은 뒤 할머니가 준 단팥빵을 뜯으려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조금 전과는 다른 기분 나쁜 소리다. 관을 두드리는 것 같은 소리 같았다.
나는 티브이 음소거를 하고 말했다.
“누구세요?”
“....”
아무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문 앞에 인기 척이 느껴졌다. 유령을 본 것처럼 기분 나쁜 침묵이다. 나는 다시 일시정지 모드가 되어있었다. 티브이 속 사람만이 눈치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좀 더 크게 목소리를 내 보았다.
“누구세요!?”
“실례합니다. 잠시 문 좀 열어주실 수 있나요?”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말했다.
“전 불교입니다.”
“수상한 사람 아닙니다.” 그가 말했다.
나는 조금 짜증이 나서 빵을 내려놓고 문을 열었다. 한 남자가 서 있었다. 키는 작고 호리호리 체격의 사내였다. 머리는 살짝 탈모가 시작된 듯해 보였다. 그는 온화한 미소를 짓고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등 뒤에서 칼을 꺼내 내게 들이밀었다. 공업용 큰 커터 칼이었다. 나는 뚱뚱한 오리처럼 뒷걸음질 쳤다. 그러다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남자는 말했다.
“아무리 큰 소리를 내도 소용없어요. 당신도 알고 계실 겁니다. 지금 이 건물에는 당신밖에 없어요. 소리를 내지 않고 제가 원하는 것만 주신다면 조용히 사라져 드리겠습니다. 저도 크리스마스이브를 즐기고 싶거든요.”
그는 옥수수처럼 누런 이를 들어내며 아까와는 다른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했다.
“원... 원하는 게 뭐죠?”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주세요. 집에 케이크를 가지고 가야 합니다.”
“저는 케이크가 없습니다. 케이크를 사시라고 현금을 드리겠어요.”
“아닙니다. 돈이 없어서 케이크를 사지 못하는 게 아닙니다. 사러 가는 게 싫을 뿐이지. 케이크를 사려면 줄도 서야 하고 여간 귀찮은 게 아닙니다.”
“전 혼자 살아서 케이크 따위는 없어요. 전.. 10년간 솔로입니다.”
왜 이런 말까지 했을까 살짝 후회했다. 하지만 그만큼 두려웠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딱하군요... 그럼 당신이 가지고 있는 빵이라도 내놓으시죠”
나는 먹던 단팥빵까지 그에게 줄 수밖에 없었다. 비닐 하나에 모든 빵을 주워 담고 할머니가 주신 우유도 드렸다. 어차피 배가 거의 찬 상태라 내겐 그저 밀가루 덩어리일 뿐이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대신 이 걸 드리죠.”
그는 말하며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작은 스노우볼이 있었다. 산타와 루돌프가 담겨있었다. 저렴해 보였지만 나는 그의 성의를 무시하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는 신발장 위에 그것을 올려두었고 말했다.
“그럼. 메리 크리스마스!”
그는 다시 누런 이를 들어내고 웃으며 문을 닫고 사라졌다.
나는 바로 움직이지 못하고 한참을 바닥에 주어 앉아 있었다. 얼음에 얼어버린 것처럼. 티브이 속 사람들은 여전히 눈치 없이 웃고 있다. 나는 신고를 할까도 생각했지만 그만두었다. 내가 뺏긴 건 빵과 우유뿐이다. 그리고 나는 스노우볼을 받았다. 몸을 일으켜 문을 다시 걸어 잠그고 욕실로 가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다. 그리고 정성껏 양치를 했다.
샤워를 마치고 나와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니 8시가 넘어있었다. 아직 크리스마스이브다. 나는 누워서 그가 주고 간 스노우볼을 흔들어 보았다. 하얀 눈이 식혜의 밥풀처럼 스노우볼 안을 떠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