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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O Nov 01. 2020

알람

아주 짧은 그림소설 #11

그는 늘 밤 11시 전에 휴대폰으로 알람을 맞추고 잠이 듭니다. 그리고 아침 7시에 일어나 8시에 집을 나섭니다. 꽤 괜찮은 회사에 다니고 절대 지각을 해본 적이 없는 성실한 사람입니다. 오늘도 내일 출근을 위해 그는 11시 전에 불을 끄고 침대에 눕습니다.  

휴대전화로 알람을 맞추던 그가 스탠드 불을 켜고 갑자기 몸을 일으킵니다. 이마에 주름이 잡힙니다. 아무래도 휴대전화가 고장이 난 것 같군요. 갑자기 폰이 꺼져서 다시 켜지지 않는 것입니다. 배터리가 다 되었을지도 몰라서 충전을 해보지만 휴대전화의 화면은 여전히 어둡습니다. 그는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를 바라보고있는 괴짜 과학자같은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시간은 흐릅니다. 네 저는 시간입니다. 저는 그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존재입니다. 

“휴... 짜증나게 왜 이래!” 그의 입에 거친 말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휴대전화를 침대 이불 위로 던져버립니다. 그는 생각에 잠겨있습니다. 아무래도 다른 방법을 찾고 있는 것 같아요. ‘알람을 맞출 다른 방법이 없을까?’ ‘아침 7시 전에 저절로 눈이 떠질 것이 가?’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책상 서랍을 여기저기 뒤져 봅니다. 작은 손목시계가 나오지만 그것은 알람 기능이 없습니다. 다른 서랍속에도 알람 시계 따위는 없습니다. 던진 휴대전화를 다시 만져봅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손톱을 물어 뜯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똥이 마려운 강아지처럼 불안해 보입니다. 폰은 아직도 단호하게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알람이 없는 손목시계에 시간은 11시를 넘어버렸습니다. 

그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침대 위에 앉아있습니다. 잠시 깊은 한숨을 쉬더니 옷장으로 걸어가 옷을 갈아입습니다. 어쩌면 공중전화에 가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할지도 모르겠군요. 가방에 무언가를 챙기고 지갑을 주머니에 넣고 차가운 현관문을 엽니다. 10월의 밤공기가 의외로 차갑다는 듯 몸을 움츠립니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집 앞 지하철역으로 갑니다. 그는 거의 막차에 가까운 지하철에 몸을 싣습니다.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저는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그를 지켜볼 뿐입니다. 지하철에 술 취한 사람들이 몇몇 보입니다. 그들을 피해 자리에 앉아 눈을 감습니다. 그 모습이 어딘가 애처로워 보입니다. 비를 맞은 떠돌이 강아지처럼. 지하철에서 내려 지하를 빠져나와 그가 큰 빌딩 안으로 들어갑니다. 이곳은... 이곳은... 그가 다니고 있는 회사입니다.

그는 자연스럽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가 4층에 내립니다. 그리고 가방에서 열쇠를 꺼내 문을 열고 다시 문을 잠급니다. 불을 켜지 않은 채 가방을 열어 얇은 담요를 꺼내 바닥에 깔고 눕습니다. 그는 많이 피곤해 보입니다. 가지고 온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하고 그대로 잠이 들어버립니다. 많이 피곤했나 봅니다. 나는 그가 잠든 곳 바로 옆 책상에서 그를 지켜봅니다. 그는 추운지 다리와 팔을 오므리고 잠을 자고 있습니다. 꼭 죽어버린 매미의 시체 같네요. 

새벽 4시가 되었을 때 그가 깨어납니다. 그는 정수기 쪽으로 가서 따뜻한 물을 마십니다. 그리고 또 가방을 베개 삼아 잠에 빠집니다. 여기서 잠을 자다니 저로서는 신기하네요. 그는 왜 여기서 잠을 자는 걸까요? 제가 지켜봐 온 그는 주말에 알람이 없이도 늘 아침 일찍 잘 일어났습니다. 인간은 참 신기한 동물입니다. 불쌍한 그의 옆에 누워 저는 그를 안아줍니다.  

아침 7시가 다 되어 갔을 때 그가 일어나 담요를 가방 안에 넣습니다. 그리고 화장실로가 양치를 하고 비누로 머리를 감습니다. 그리고 티슈로 대충 물기를 닦아내고 핸드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립니다. 얼굴에 휴지 조각이 붙어있어서 거울을 보고 잠시 그것들을 떼어냅니다. 그러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봅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정지상태가 됩니다. 저도 쥐 죽은 듯이 그를 바라봅니다. 

“후....” 그가 긴 한숨을 쉽니다. 그의 얼굴에는 티슈 조각이 아직 몇 개 붙어 있습니다. 머리에서는 물이 떨이 지고 있습니다. 그의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흘러나옵니다. 그는 주저 않아 흐느낍니다. 어린아이가 소중한 장난감을 잃어버린 것처럼. 바닥에 주저 않아 펑펑 울고 있네요. 성인이 된 그는 도대체 무엇을 잃어버린 걸까요. 나로서는 정말 알 수 없습니다. 저는 그저 아무런 소리도 냄새도 없이 그를 바라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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