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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O Sep 05. 2022

#05 숨은그림찾기

초단편그림소설


옆에 앉은 그녀는 기차가 출발하자 가방 속에서 칸쵸 과자를 꺼냈다.


분홍색 포장 박스를 조심스럽게 뜯고는 과자가 들은 비닐은 다시 가방 속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그리고는 손에 들고 있는 분홍색 박스 내부를 유심이 들여다 보고 있다. 나는 창가 자리에 앉아있었고, 밤이었기 때문에 유리창으로 그녀의 모습 비쳐 보였다.


단발머리에 20대 중반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다. 그녀는 고개를 거북이처럼 빼고는 열심히 박스 안을 보고 있다. 나는 계속 그녀를 보고 있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눈을 감는다. 서울까지 도착하려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남아있다.


잠깐 잠이 들었다 깨어 손목시계를 보니 30분이 지나 있다. 기차 안은 바다 속을 달리고 있는 것처럼 조용하고 무거웠다. 옆 좌석의 그녀를 보니 아직도 칸쵸 박스를 내려다보고 있다. 아까보다 더욱 심각한 표정으로. 나는 창밖을 보는 척하면서 그녀를 힐끔 보았다. 그녀는 미동도 없이 칸쵸 박스를 내려다 보면서 종종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도대체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그때 마침 그녀가 말을 걸어왔다.


“저기... 정말 죄송하지만 이것 좀 도와주실래요?”


나는 놀라며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과자 박스를 나에게 내밀고 있다.


“네?”


“실례지만 잠시 부탁 좀 드려도 될까요?.”


“아! 네. 기차에서 밀어드리는 것만 빼면 뭐든지.”


그녀는 입을 가리고 웃었다.


“아무리 찾아도 당근이 없어서요.”


“당근…이요?”


“네. 숨은그림 찾기 해보셨죠? 다 찾았는데 도끼가 아무리 봐도 안 보여요.”


“아~ 숨은 그림 찾기, 아마도 공부보다 많이 했을 겁니다. 그럼 제가 봐 드리겠습니다.” 


나는 정중히 칸쵸 박스를 받았다. 박스 내부에는 사냥꾼이 토끼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그림이 있었다. 토끼는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풀을 뜯어먹고 있고, 턱수염을 기른 사냥꾼은 조금은 바보처럼 나무 뒤에서 총을 겨누고 있다. 그리 실력이 좋은 사냥꾼 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만약 그가 토끼에게 총을 쏜다면 총알은 보기 좋게 빗나갈 것이다. 


그림 곳곳에는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그녀가 숨겨져 있는 사물들에 표시를 해 놓은 듯했다.  연필, 새, 가위, 안경, 자...


당근만 찾으면 된다. 간단한 게임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려왔고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그래서 그림을 보는 게임에 자신이 있다. 나에게는 누워서 떡 먹기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당근은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림을 가까이서도 보고 멀리서 떨어져서도 보았지만, 당근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최대한 당황한 척을 하지 않으려 했다. 그녀가 나를 유심히 쳐다보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모른 척 했다. 어쩌면 누군가 보고 있으면 실력 발휘가 안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음…”


“아무래도 없죠?” 그녀가 실망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슬쩍 손목시계를 보았다. 15분이 지나 있었다.


“이상하네요. 당근을 그려 넣는 것을 잊은 게 아닐까요. 과자 회사에서…” 나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주세요. 저 곧 내려야 해서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움이 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난 칸쵸 박스를 그녀에게 건네며 말했다. 


곧 그녀가 기차에서 내리자 기차 안은 다시 지루해졌다. 나는 토끼와 사냥꾼, 그리고 찾지 못한 당근 생각을 하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토끼의 목이 도끼에  잘리고 있었다. 피가 사방에 튄다. 피의 색깔은 검고 붉은색을 띤다. 그 도끼를 든 사내는 사냥꾼이 아닌 바로 나다. 물감같이 비현실적인 검은 피가 칼을 모두 적셨다. 손에도 피가 흘러 시멘트 바닥으로 떨어진다. 나는 목이 잘린 토끼의 얼굴을 바라본다. 토끼는 목이 잘려있지만, 이상하게 말을 한다. 


“숨은 그림찾기 해 보였어요? 숨은 그림 찾기 해보셨어요? 숨은 그림 찾기...”


토끼의 목에는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고 입은 계속 움직였다. 그런 토끼를 나는 가만히 내려다 보고 있다. 거울 속 내 얼굴을 바라보듯이.


내가 눈을 떴을 때 기차는 서울역에 거의 도착하고 있었다. 손에 기분 나쁜 땀이 차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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