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 소설집 #12
“저기 실례지만 젠가 좋아하시나요?”
고개를 들었을 때,
내 앞에는 한 여자가 서 있었다.
이 카페에서 일을 하는 여자였다.
나는 자주 이 카페에 와서 책을 읽고는 한다.
이 곳은 동네에서 가장 조용하고,
흘러나오는 음악이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를 잡으면,
점원은 커피를 가져다 준뒤, 창가에 앉아
스마트폰을 내려다 본다.
그런 그녀가 내 앞에 서 있었다.
손에는 젠가 보드게임을 들고 있었다.
“잘하지는 못하지만 좋아합니다.” 나는 말했다.
“그러면 저랑 한 게임만 해주실 수 있나요? 심심해서.”
그녀는 내 테이블 위에 조심스럽게 젠가를 내려놓았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내 심장소리가 음악을 뚫고 쿵쾅거렸다.
그녀는 내 앞 의자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작은 새가 나뭇가지에 앉듯이.
그녀는 블록을 세웠다.
“룰은 알고 있죠?” 그녀는 말했다.
“10년 전에 해본 것 같은데요.”
“10년? 음…아래 블록 하나를 조심히 빼서 위에 쌓으면 됩니다. 간단하죠?
근데 몇 살이시길래 10년 전이라고…”
“30살입니다. 그쪽은?”
“여자에게 나이를 물어보는 건 실례라고요. 전 대학생이에요.
자, 내기를 하죠? 진 사람이 부탁 들어주기.”
“부탁이요?”
“네. 그냥 하면 재미없잖아요.”
그렇게 친하지도 않은 여자와
한 카페 구석에서 젠가 게임을 시작했다.
그녀는 나의 동의도 없이 먼저
블록을 하나 빼서 위로 쌓았다.
그녀의 손가락은 쓰지 않는 연필처럼
가늘고 차가워 보였다.
나도 조심스럽게 블록 하나를 빼서 위로 쌓았다.
손이 희미하게 떨렸다.
“너무 신중한거 아니에요?” 그녀는 말했다.
“신중하다고 나쁜 건 없으니까.”
“그렇게 나를 이기고 싶나 보죠?”
그녀는 말하면서 블록을 빼서 위로 쌓았다.
“전부터 궁금했는데 여기 주인은 누구예요?”
나는 이어서 조심스럽게 블록을 빼고 위로 쌓았다.
“여기 주인은 토끼 머리의 여인이에요.”
“토끼 머리 여인?”
“네 머리가 토. 끼. 머. 리. 여. 인.”
그녀는 이번에도 블록을 빼서 위로 올리고는 말했다.
“그렇게 거짓말로 나를 이겨보겠다는 건가요?”
“정말이라고요. 그는 엄청 부자라는 소문이 있어요.
그래서 카페가 이렇게 장사가 안되도,
신경하나 안 쓰는 거라고요.”
나는 토끼 머리의 여인을 상상하며
빼낸 블록 하나를 조심스럽게 위로 쌓았다.
아래 블록들이 조금씩 휘청거렸다.
“토끼머리여인, 나도 만나보고 싶군요.”
“쉽지 않을걸요. 그녀는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아요. 악!!!”
그녀가 무리하게 블록을 빼내려다,
블록이 무너져 내렸다.
그녀의 비명과 블록이 무너지는 소리가
카페에 올렸다 사라졌다.
그 소리가 컸지만 덕분에 내 심장소리가
감춰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제가 졌네요. 부탁이 있나요? 어려운 거 말고요.”
그녀는 머리를 감싸면서 말했다.
“음……”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토끼 여인이 가게에 오면 나중에 알려줘요.
그때 커피를 마시러 오고 싶어요.”
“어떻게요?” 그녀는 말했다
“가게에 오면 메시지라도 보내주세요.
난 호기심이 강한 편이거든요. 그게 제 부탁입니다.”
“그래요. 어렵지 않네요. 폰 번호를 적어놓고 가시면
제가 문자를 넣어드리죠. 대신 한 판 더 해요.”
그녀는 테이블 위에 블록을 다시 정리하며 말했다.
나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블록을 몸을 숙였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때, 정신없이 뛰던 심장이 얼어버릴 것 같았다.
내 앞의 직원의 얼굴이,
토끼 얼굴의 여인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녀는 큰 앞니를 드러내며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어떤 말을 입밖으로 꺼내야할까. 생각하던 찰나.
그녀가 입을 열었다.
“됐죠? 당신의 부탁 바로 들어드렸어요.”
“대박...” 나는 말했다.
- 매주 월, 목요일 저녁 8:30분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