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 소설집 #16
기차가 출발하자,
옆에 앉은 여자가 가방 속에서 과자를 꺼냈다.
칸쵸 과자다.
포장 박스를 뜯고
과자가 든 비닐은 다시 가방 속에 넣었다.
그리고는 핑크색 박스 내부를 유심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창가자리에 앉아,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단발머리에 20대 중반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였다.
계속 그녀를 보고 있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눈을 감았다.
서울까지 도착하려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남았다.
눈을 떠서 손목시계를 다시 확인했다.
기차 안은 바닷속을 달리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옆 좌석의 그녀를 보니 아직도 칸쵸 박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까보다 더욱 심각한 표정이다.
나는 자는 척을 하면 눈을 떠 그녀를 힐끔 보았다.
그때 그녀가 말을 걸어왔다.
“저기... 정말 죄송하지만 이것 좀 도와주실래요?”
“네?”
나는 최대한 당황한 기색을 감추려 애썼다.
“아! 네. 기차에서 밀어들이는 것 만 빼면 뭐든지.”
나의 말에 그녀는 입을 가리고 웃었다.
“아무리 찾아도 당근이 없어서요.”
“당근이요?”
“네. 숨은 그림 찾기 해보셨죠?
다 찾았는데 당근이 아무리 봐도 안 보여요.”
“아~ 숨은 그림 찾기, 아마도 공부보다 많이 했을 겁니다.
그럼 제가 봐드리겠습니다.”
나는 정중히 손을 내밀었고 그녀는 내게 칸쵸 박스를 건넸다.
칸쵸 박스 내부에는 사냥꾼이 토끼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그림이 있었다.
토끼는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풀을 뜯어먹고 있고
턱수염을 기른 사냥꾼은
나무 뒤에서 총을 겨누고 있다.
그리 실력이 좋은 사냥꾼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만약 그가 토끼에게 총을 쏜다면 총알은 보기 좋게 빗나갈 것이다.
그림 곳곳에는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그녀가 숨겨있는 사물들에 표시를 해 놓은 듯했다.
연필, 새, 가위, 안경, 자...
당근만 찾으면 된다.
간단한 게임이다.
그림에 또 다른 그림이 숨겨져 있는 숨은 그림 찾기는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나에게는 누워서 떡 먹기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당근은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림을 가까이서도 보고 멀리서 떨어져서도 보았지만 당근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나를 유심히 쳐다보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모른 척했다.
어쩌면 누군가 보고 있으면 실력 발휘가 안 되는 것 일지도 모른다.
“음....”
“아무래도 없죠?” 그녀가 말했다.
“이상하네요. 당근을 그려 넣는 것을 잊은 게 아닐까요. 과자회사에서.. 하하..”
“그냥 주세요. 저 곧 내려야 해서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움이 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곧 그녀가 기차에서 내리자 기차 안은 다시 지루해졌다.
나는 토끼와 사냥꾼, 그리고 당근 생각을 하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토끼의 목이 도끼에 잘리고 있었다. 피가 사방에 튄다.
피의 색깔은 유난히 빨간색을 띤다.
그 도끼를 든 사내는 사냥꾼이 아닌 바로 나다.
물감같이 비현실적인 붉은 피가 도끼 손잡이를 타고 흘렀다.
나는 목이 잘린 토끼의 얼굴을 바라본다.
토끼는 목이 잘려있지만 이상하게 말을 한다.
“숨은 그림 찾기 해 보였어요?
숨은 그림 찾기 해보셨어요?
숨은 그림 찾기...”
토끼의 목에는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고 입은 계속 움직였다.
그런 토끼를 나는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다.
거울 속 내 얼굴을 바라보듯이.
내가 눈을 떴을 때 기차는 서울역에 거의 도착하고 있었다.
손에 땀이 차 있었다.
왜인지, 끝내 당근을 찾지 못했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 매주 월, 목요일 저녁 8:30분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