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계획이 최고의 계획이다

by 탕진남

여행을 떠나기 3일 전, 여행을 결정했다. 그래서 3일 동안은 하루 종일 필요한 예약을 하기 바빴다. 그래서 아주 피곤했다. 게다가 피곤한 비행 5시간과 불편한 호스텔에서 기침 소리 때문에 6번은 깼기에, 오늘 또한 상당히 피곤했다. 하품이 하도 많이 나와서, 하품 기계라도 된 줄 알았다.


3일 동안 묵을 숙소에 오자마자 씻지 못해 찝찝한 몸부터 청소했다. 이후에는 선풍기를 틀어놓고, 바로 침대에 잤다. 그렇게 오랜만도 아닌데, 오랜만이라고 느낄 정도로 감사한 꿀맛 같은 잠이었다. 그렇게 자고 일어나서 비몽사몽하고 있는데, 숙소의 보스 '상'이 나를 불렀다.


"저녁 장 보러가는데, 뭐 필요한 거 있어? 아니면 같이 장 보러 갈래?"


딱히 필요한 건 없었는데, 태국 현지인의 장보기가 궁금해서 따라간다고 했다. 온전히 거기에 집중하고 싶어 휴대폰과 지갑도 다 놓고, 몸만 들고 갔다. 그런데 갑자기 상이 나보고 먼저 내리라고 했다.


알고 보니, 상은 장 보러 가는 길에 이곳에서 유명한 맥주 펍에 나를 데려다줄 생각이었던 거다. 이 맥주 펍은 주말에만 여니, 오늘 아니면 못 간다고 했다. 사실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이었는데, 삶의 흐름이 나를 그리로 이끌었으니 기꺼이 그 방향으로 갔다. 돈이 필요한 것 같아서 상의 아내 '플라'에게 500바트도 빌렸다.


동네 구경을 하고 싶어서 지도도 없지만, 무작정 섬을 걸었다. 지도와 핸드폰 없이 걸으니 오랜만에 안 쓰던 두뇌 활동도 해보고, 주변의 풍경도 잘 볼 수 있었다. 아마 다른 데 정신 팔릴 때가 없어서 그런 것 같다. 덕분에 여기는 왜 목조 주택이 많은지, 창문이 크며 항상 열려있는지, 왜 기둥 위에 건물을 올려놓는지 알 수도 있었다. 또 나와 완전 다른 세계에 사는 태국 현지인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걸어다니면서 간접 체험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길을 까먹거나 헤맬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마치 신이 나에게 안내자를 내려준 것처럼 한 명씩나타나 나에게 길을 알려주었다. 덕분에 휴대폰 없이 1시간 30분 동안의 도보 여행을 마치고 맥주 펍에 도착할 수 있었다.


상이 미리 말해둬서 그런지, 직원들은 아주 친절했고 어쩌다 여기까지 왔냐고 물어봤다. 이후에는 짜오프라야강이 보이는 좋은 위치의 강에 앉아 홀로 맥주를 마시며 바람도 맞아봤다. 휴대폰이 있었으면 100% 인스타그램부터 켰을 때도, 그것 없이 나의 감각에 집중함으로서 그 순간에 머물 수 있어 아주 기뻤다.


느낌 상 숙소를 떠난지 3시간 정도 니난 것 같았다. 상이 저녁을 만들어준 시간이 다 왔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고, 피곤하기도 했다. 그래서 맥주 펍 보스인 상의 친구에게 상에게 데려와달라는 전화를 부탁했고, 10분이 자나자 상은 멋진 배를 타고 나를 찾아왔다.


그렇게 다녀오니 강과 노을 보이는 책상 위에 플라가 멋진 저녁을 만들어주었다. 어디가서도 절대 먹어볼 수 없는 태국 가정식이었고, 미슐랭 저리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소중한 음식을 만들어주셨다. 이후에는 또 다시 샤워를 하고, 강이 보이는 테이블 위에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여행을 떠날 때 나는 어떤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대충 언제 즈음 어디에서 잔다만 정했을 뿐, 자세하게는 어떤 것도 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오늘 하루는 완벽했다. 마치 신이 오늘의 코스를 설계한 것처럼,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당장 내일 무엇을 할지도 모르고, 이 숙소에서의 시간이 끝나면 어디서 자야할지 호텔 예약도 안 했다. 뉴욕에 가서도 구체적으로 뭘 할지는 모른다. 여기서 재밌는 건 굳이 잘하려고 애 쓰지도 않아도 인생은 생각보다 술술 풀린다는 거다. 그것을 위해서는 너무 멀리 생각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이는 것으로 충분하다.


대부분은 이런 태도를 가지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까를 걱정하고, 시간을 낭비할 것 같아 두려움을 가진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한 번만 넘어서면 나의 계획으로는 도저히 완성할 수 없는 최고의 여행을 경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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