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크리스트

by 김영중

< 00월 00일 체크리스트 >

- (출근전) 타바타 운동 20분 <인터벌 홈트레이닝>

- (출근길) 경제신문 정독 및 요약

--- 회사 업무는 회사 PC로 별도 체크리스트 관리 ---

- (퇴근길) 독서

- (퇴근후) 수영장

- (수영후) 삼겹살 구워먹기

- (식사후) 주식투자 현황 점검

- 독서 & 11시 취침

휴대폰을 키고 지문을 인식시키면, 가장 먼저 나오는 화면은 체크리스트다. 매일 잠들기 전 체크리스트를 만드는데,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잠들기 전까지 모든 할 일을 기록한다. 꾸준한 운동과 독서, 삶의 행복도를 높이기 위한 저녁 식사, 미래 노후준비를 위한 투자 활동, 좋은 컨디션 유지를 위한 취침 시간 설정까지 많은 것을 포함한다.

체크리스트를 언제부터 사용하게 된 건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5년은 넘은 것 같다. 5년이 넘는 기간 동안 체크리스트를 사용하는 방법도 나름의 변천사가 있었다.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는 체크리스트의 모든 항목을 달성하려 노력했다. 이는 스트레스로 이어졌다. 갑작스러운 약속이 생기면 달갑지 않았고, 약속에 가더라도 체크리스트의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렇다 할 변수가 없는 날에 혼자만의 게으름으로 체크리스트를 완수하지 못한 날도 많았는데, 이럴 때는 스스로가 한심했다. 체크리스트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강박에서 탈출하기 위해 한때는 체크리스트 앱을 삭제해보기도 하고, 해야 할 일의 목록을 3개 이내로 정해도 보고 다양한 시도를 했다. 그 과정에서 왜 체크리스트를 계속 사용하려고 하는가에 대해 고민을 했다.

그때 내린 결론은 이렇다.

체크리스트 본연의 목적은 해야 할 일들의 누락이 발생하지 않도록 점검해주는 것이지만, 나는 체크리스트를 통해 삶의 주도권이 나에게 있음을 느끼는 수단으로써 더 크게 활용하고 있었다. 해야 할 일들을 스스로 기록하고 실천하는 과정을 통해 내가 삶의 주인이라는 것을 매일 느끼게 해주는 일종의 신경안정제였다.

결론을 내린 이후로 체크리스트에 대한 부담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 갑작스럽게 생기는 약속도 즐겁게 참여하고, 달성률에 대한 강박도 조금은 덜어냈다.

행동의 본질을 망각하고 행위 자체에 매몰될 때가 있다. 매몰에서 벗어나 본질에 집중할 때, 무엇이 중요한지 가까스로 알 수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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