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함은 조금씩 싹튼다

by 김영중

부모님은 바라는 것이 없었다. 요구하는 것도 거의 없었다.

학창 시절에 공부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수능을 본 뒤 어느 대학에 가면 좋겠다는 의견이 없었다. 직업 선택에서는 더더욱 말이 없었다. 그래서 학창 시절에 스스로 공부했다. 지원하는 대학과 전공은 모두 나만의 결정이었다. 직업 선택은 말할 것도 없었다.

삶에서 중요한 선택의 순간들에 부모님은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다. 모든 선택은 스스로 하였고, 그에 따른 결과도 스스로 감당하였다.

어느 순간부터 부모님이 나를 키운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컸다고 생각했다. 18살 때부터 집에서 나와 부모님과 따로 살았기에 청소, 빨래, 끼니 등을 오랜 기간 스스로 해결했다. 대학, 직업을 모두 스스로 결정했다. 학창 시절 사춘기도 겪지 않았으며, 조그마한 말썽조차 일으키지 않았다. 살면서 부모님과 다툰 일도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오만한 생각은 조금씩 싹텄다.

사회에 나오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대학에서, 회사에서, 모임에서, 여행에서, 택시에서, 이기적인 사람, 이타적인 사람, 열정적인 사람, 냉소적인 사람, 친절한 사람, 예의 없는 사람, 말이 없는 사람, 말이 많은 사람을 만났다. 만나는 사람들과 간혹 깊은 얘기를 할 때가 있다. 때로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었다. 어떤 부모님들은 바라는 것이 없으셨다. 어떤 부모님들은 바라는 게 많으셨다. TV를 켠다. 요즘 가장 핫한 오은영 박사가 나온다. 그리고 오은영 박사는 갈등을 빚고 있는 가족과 언제나 함께 나왔다. TV 속 아이들은 문제가 많아 보였다. 하지만 솔루션은 언제나 부모에게 향했다.

사회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과 TV 속 다양한 가족의 모습은 오만한 생각을 반성의 마음으로 바꿨다. 스스로 자란 게 아니다. 부모님이 좋은 토양을 제공해 준 것이다. 특히,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았다. 정확히는 바라는 것은 많겠지만 말하지 않고 참는다는 것이 올바른 표현이겠다. 부모님과 다투지 않은 이유도 요구하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만족시키거나 조율할 것이 없었던 탓이었다. 그래서였다.

해가 지날수록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커진다. 결혼하고 자식을 낳으면 이 마음이 얼마나 커질지 난 아직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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