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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Oct 14. 2019

"내가, 밥을 못 먹는다고, 밥을."

열 한 번의 심리상담, 그 마지막 기록

“요즘 내가 밥을 못 먹어”

출근길. 집을 나서며 남편에게 말했다.

“왜? 이제 일도 그만두잖아”

“명절 지나고부터 계속 이렇네”

“명절? 명절 지난지가 언젠데”(열흘쯤 지났던가)

“그러게. 지난 지가 언젠데 계속 이렇네.”

 엘레베이터에 다다랐다. 남편이 말한다.

“그럼 이혼해야겠네”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맺힌다. 출근을 했다.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았지만 일은 하나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멍해지다 눈물이 나고 눈물을 훔치고 다시 마음을 다잡다가도 나도모르게 또다시 울곤 했다. 출근하고 얼마 안돼서 남편에게 카톡이 왔다.

"다 내 탓인데 내가 또 욱했네. 미안해"

답은 하지 않았다. 


남편은 여전히 숨도 못 쉬게 바빴고, 나는 남편과 마주치지 않으려 자는 척하거나 출근을 했다. 다음날 다행히 남편이 조금 이르게 집에 왔다. 밤 9시쯤이었나. 사실혼 해제 합의서를 내밀었다. 우린 혼인신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사실혼, 즉 동거의 상태로 함께 지내고 있었다. 크게 싸웠던 어느날 우리 부부는 어떠한 경우에도 이혼을 얘기하진 말자고 했고, 이혼이라는 말이 나오면 그땐 정말 이혼을 하기로 했다. 

'주택의 처분으로 발생하는 금전은 채무상환에 우선 사용하며, 차액은 균등분할한다.'

'오늘을 기점으로 양가에 대한 모든 책무는 면제된다.'

이게 주된 내용이었다. 

"이게 뭐야? 헤어지자고?"

"응. 이혼이라는 말 한 번만 더 하면 헤어지기로 했잖아."

"내가 언제 이혼하자고 했어."

"엘레베이터앞에서 '그럼 이혼해야겠네'라고 했잖아."

"미안해. 그러려는 의도는 아니었어."

"그럴 의도가 아니면 그런 말을 하지 말았어야지... 말은 못 주워담는다고, 아무리 싸워도 함부로 말하지 말자고 그렇게 말했잖아. 나한테 준 상처 되돌릴 수 있어?"

"알겠어 이제 그런 말 안할게."

"이미 했잖아. 저번에 싸울때도 그랬잖아. 다신 안하겠다고, 한 번만 더 하면 여지 없이 갈라서기로 했었어. 기억 안나? "

"그럼 어떻게해? 나는 할만큼 하는데 너는 계속 힘들다며. 그럼 헤어지는 거 말고 내가 뭘 어떻게 해야돼? 나도 힘들다고!"
"넌 그만큼만 나랑 같이 살고 싶은거겠지. 어떻게든 나랑 같이 살 생각이면, 아무리 힘들어도 같이 이겨낼 생각이었으면 그렇게 말하면 안되잖아.. 해결책을 찾자고 말하는 사람한테 이혼하잔 소릴 어떻게 맘에도 없이 해. 난 적어도 네가 아닌 이유로 헤어지고 싶진 않았어. 네가 좋아서 결혼했고, 어느 정도는 나도 책임이 있으니까 나도 버틸때까진 버텨보려고했어. 근데 네 입에서 이혼하잔 소리가 나왔어. 내가 너랑 어떻게 계속 사니.. 너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무너졌어."

"미안해.. 그럼 같이 방법을 찾아보자.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내가, 밥을 못 먹는다고, 밥을. 사람이 밥은 먹어야 살거 아니야. 그런데 하루 세끼는 커녕 하루 종일 먹는 양이 밥 한 그릇도 안돼. 목 울대까지 뭐가 차서 밥이 넘어가질 않는다고. 꾸역꾸역 밀어넣어도 두세숟가락이 끝이야. 잠도 못 자고, 수시로 눈물이 나. 명절 앞뒤로 한달은 이렇게 힘들다고. 너도 힘들겠지. 중간에서 엄마랑 내 사이 오가며 너도 힘들겠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말하진 말았어야지. 적어도 그렇게 힘들었는지 몰랐다고, 앞으로 어떡할지 같이 고민해보자고 했어야지. 아무렴 어떻게 네가 나보다 힘들겠어. 시어머니만 열댓명인 그 집에서 내 편이라곤 달랑 너 하나인데, 남편이란 인간은 내가 투명인간 취급을 받든 종노릇을 당하든 눈치도 못채고, 혼자만 분하고 서러운데도 한 소리 들을까봐 억지로 웃어주는 나보다 힘들어? 넌 나 하나 눈치보면 되지만 난 거기 있는 모든 사람의 눈치를 봐야돼. 같이 핸드폰을 봐도 난 내내 가시방석이야. 가기전부터 갔다와서도 몇날며칠 신경이 곤두서있어. 한 달 넘게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나보다 네가 더 힘들어?"

"당연히 네가 더 힘들지.. 내가 더 잘할게"

"뭘 어떻게 잘할건데? 모르겠다며. 이혼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우리 그냥 헤어지는 게 낫지 않을까..?"

"정말 헤어지고 싶어?"

"그럼 어떡해. 난 이렇게 힘들고, 넌 같이 해결할 방법을 모르겠다며. 난 계속 힘들텐데, 나 혼자 힘든거 견디면서 살아?"

"같이 찾아보자.. 우리 같이 이겨내보자.."


답도 없는 다툼이 밤새 이어졌고, 짐을 싸서 나가겠다는 날 남편이 붙들었고, 부둥켜 안고 둘이서 한참을 울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서로 마음이 맞아 사랑을 하는 것도 엄청난 기적이라고들 한다. 그 힘든 기적으로 10년 가까이 사랑을 해오고 있는데, 둘이 마음을 맞춰가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만도 벅찬일인데, 결혼이란 문턱을 넘어선 순간 훨씬 큰 숙제가 버티고 있었다. 서로에 대한 노력만으론 넘어설 수 없는, 평생 모르고 살았어도 내 인생에 하나 아쉬울 것 없는 사람들의 요구들로 우리 부부의 사랑이 위태로워졌다. 사랑과 전쟁에서나 나오는 얘기인 줄 알았는데, 막상 현실이 되니 '4주', 아니 4년이 지나도 답이 내려질 것 같지가 않다. 막막하고, 억울하다. 난 남편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었고, 세상 누구보다 남편을 사랑한다. 하지만 남편을 사랑하는 것과 부당하게 요구되는 며느리노릇은 완전히 별개다. 남편과의 삶은 분명 행복하지만, 시댁 스트레스는 그걸 상회할만큼 강력하다. 점점 불행은 우리의 행복한 시간들마저 잠식해갔다. 과연 내 행복을, 내 존엄을 남편과의 사랑이란 명분으로 내줘도 되는걸까. 그게 현명한 일일까. 내 행복과 존엄은 언제까지 유보되어야 할까. 이게 행복하자고 한 결정이 맞나. 회의감이 밀려든다. 내가 문제인건가, 내가 너무 예민한가, 나 또라이인가. 수 백번 자기성찰을 되풀이하는 내가 너무 불쌍하다. 내가 또라이가 아니면, 내가 예민하지 않으면 이 틀린 것들이 맞는 게 되는건가?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잖아.. 


© lculig/shutterstock


열 한 번의 심리상담을 받으며 다짐했다. 나를 아껴주기로. 아버지의 욕망으로 어린 시절을 잃어버릴만큼 많은 일들을 겪으며 힘겹게 살아냈고, 가난하다거나 무식하다거나 누구한테 손가락질 받고 싶지 않아 성실하게 살아왔다. 최소한 나 하나는 내가 책임질 수 있을만큼 아등아등 살아냈다. 이제서야 내 힘으로 내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날들이 찾아왔는데, 또다시 남들에게 내 인생을 내주며 살아 갈 순 없다. 열심히 살아준 나한테 미안해서 그렇게는 못 살겠다. 아무리 남편을 사랑해도, 남편 보단 나를 더 사랑하기로 한다. 나는 내 삶을 지켜줄 의무가 있다. 더 이상 내 삶이 불행해지지 않도록, 누구도 내 삶을 침해할 수 없도록 지켜줘야 한다. 잘못된 질서를 지켜주기 위해 나를 잃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하면 모두가 행복해질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행복하지 않다. 내가 아니면, 아무도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 나는 나로, 예민종자건 프로불편러건 미친x이건, 그런 나로 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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