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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Oct 12. 2019

며느리가 택배야? 보내긴 뭘 보내

열 한 번의 심리상담, 그 기록 10


설이 다가오고 남편과 설에 어찌할지 논의했다. 나는 설 당일에만 가고싶다고 했다. 남편은 결혼하기전에 공부하느라 혹은 바빠서 설 당일에만 간 적이 많았다. 반드시 가야되는 것도 아니었는데 결혼했다고 의무화가 되는 건 아니지 않느냐, 요즘 엄청 바쁘지 않느냐, 그날 가면 다른 날 더 힘든데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하냐, 바빠서 못 간다고 얘기하라고 했다. 남편은 거짓말 하기 싫다고(새벽 두 세시에 들어와서 아침에 다시 나가는데도 그정도로 바쁘진 않단다. 본인 바빠서 내가 집안일 다하고, 쓰러질까 걱정돼서 건강보조제도 먹였었다), 엄마한테 뭐라고 말하냐고 울고 난리를 피우다가 결국 알겠다고 정리가 됐다.


설날 전전주가 시부모의 생일이다. 모여서 밥을 먹기로 하고 날짜를 잡았다. 주말에 직장때문에 일정이 딱 하루가 비었다. 그런데 이모님들과 보기로 한 날이라신다. 그럼 이모님들과 같이 봬도 되고, 아님 설날에 겹쳐서 보면 어떻느냐 했다. 아니라고 이모님들 날짜를 옮기시겠단다. 그 다음주인가 전주인가 어차피 또 보기로해서 무리가 없으시단다. 그러시라고 했다. 시댁에 가기로 한 전날, 갑자기 연락이왔다. 이모님들한테 속초에 놀러가기로해서 날짜를 옮겨야 한다고 하셨단다. 거짓말쟁이가 되기 싫으니 속초에 같이 가자신다. 갑자기..? 전화를 받던 남편이 수화기를 든 채로 묻는다.

“괜찮아?”

묻는건가, 통보인가. 어쩌겠나. 알겠다고 했다. 생일인데 굳이 맘 상할 일 안 만들려는 마음이었다.


시부모는 경기도 모처에서 살고 있다. 당일로 못 다녀올 거리가 아닌데 어쩌다보니 우리집(본가)은 당일, 그집은 1박2일로 굳어졌다. 우리집도 경기도 모처. 시댁은 케이티엑스를 타고 가고, 우리집은 지하철을 타고 간다. 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오히려 시댁이 덜 걸린다. 지금 생각하니 상당히 불합리한데, 어쨌든 그렇게 하고 있다. 1박 2일 일정에서 첫날 경기도 모처에 갔다가 이튿날 당일치기로 속초까지 갔다가 서울로 돌아왔다. 거의 동서를 가로질렀구나.


속초에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다가 남편이 대뜸 너무 바쁘니 설 당일에만 가겠다고 말한다. 굳이 오늘 말해야하나 싶은데 주워담을 수는 없으니 별 말은 안했다.

“그렇게 바쁘니?” 시어머니가 되묻는다.

“나 요즘 죽을 것 같아. 새벽에 들어와서 아침에 나가고 있어.”

“그럼 ㅁㅁ(나)라도 보내야 되는거 아니니?”

네 명이 테이블을 마주하고 앉아있었다. 그럼 너라도 와야하는 거 아니니하며 날 보고 얘기해도 화가 났을거다. 그런데, 굳이 남편을 보고 저렇게 말하는 건 무슨 심보일까. 바로 옆에서 듣고 있는 당사자인 나는 투명인간이 된 듯했다. 게다가, 내가 택배야 뭐야. 보내긴 뭘 보내.

사진출처; 소비라이프뉴스

내가 가라면 가고 말라면 마는 존재인가. 너희 집 가정부 손 남으면 우리집으로 좀 보내도 하는 것 같다. 정말이지 그 비참함을 뭐라 표현해야할지 모르겠다. 다행히 남편이 바로 발끈했다.

“어떻게 얘를 혼자 보내! 말이 되는 소릴해!!”

못마땅한 시어머니는 시아버지와 나, 그리고 남편을 돌아가며 그래도 와야되는거 아니냐고 볶아댔다. 결국 헤어질때까지 내내 불쾌한 내색을 하신다. 그래도 당일만 가는게 어디냐, 싶어 최대한 비위를 맞춰드리고 집으로 왔다.


설 당일. 아침일찍 가서 음식을 나르고 차례를 지내고 차례상을 치운다. 여자들은 차례상을 치우면서 남자 상을 차린다. 남녀별상이다. 그나마 첫 명절엔 같이 와서 먹으라하기에 빈말이라도 이정도는 하나보다했는데, 아니었다. 첫 명절이니 겸상을 시켜줬던 것이다. 남자상이 다 차려졌다. 문제의 작은아버지가 또, 기어코 문제적 발언을 갱신하고야 만다.

"다 된 것 같은데 00(남편)이 와서 먹어라."

남편과 나는 부엌에 나란히 서있었다. 남편만 보일 리가 없다. 이 집에서 며느리는 일 시킬 때만 보이는 존재라는걸 또 한 번 각인시켜준다. 그렇게 남자들이 중요하면 남자들이 상차리고 다하지. 객식구 취급에 몸서리치는데 남편이 조르르 가서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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