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한 번의 심리상담, 그 기록 9
추석이 지나고 상담을 시작하던 즈음. 한 달 가까이 생리를 안 한다. 산부인과에 가보니 스트레스때문인지 자궁에 종양이 있단다. 크지도 않고 심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혹을 떼는 시술이 그리 간단치는 않았다. 당시 남편은 너무 바빠 붙잡고 하소연을 할 상황이 아니었다. 밥도 못 먹고 시술을 마치고 병원 근처 식당에서 순대국을 혼자 먹었더랬다. 그게 왜 그렇게 서글프던지. 뭐 어쩌겠나 하고 말았다. 하필 시술을 받은 다음날, 남편은 장염을 앓았다. 시술이야 끝났고, 눈에 보이는 곳을 다친 것도 아니다보니 좀 덜 아파보이는 내가 자연히 가사당번이 되었다. 다른 건 좀 덜하더라도 밥은 대충 차려 먹일 수가 없었다. 장염이니까.. 죽도 쒀서 먹이고 위에 부담 없는 국이며 반찬이며 매끼 차려먹였다.
그러는 중에 크리스마스가 왔나보다. 크리스천도 아니고 사람 많은 휴일이라는 거 말고 딱히 감흥이 없다. 여전히 남편의 밥을 차리던 중이었다. 시부모에게서 전화가 왔다. 남편이 받아 통화를 주고 받더니 나를 바꿔달란단다. 솔톤으로 전화를 받았다.
“네, 어머니~”
“크리스마슨데 뭐 맛있는 것 좀 먹었니?”
“아 그냥 밥 차려서 먹으려고요. 밥 하고 있었어요~.”
“맛있는 것 좀 먹지. 근데 크리스마스에 전화 한 통도 안하니?”
크리스마스와 전화가 무슨 관계람. 왜 본인 아들더러 하라지않고 나한테 이러나 싶었지만 그럴 기력도 없고 그냥 고분히 답했다.
“아 00(남편)이 장염이라 제가 병수발하고 있거든요. 저도 자궁에 혹을 떼고 하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죄송해요.”
“난 내 아들 아픈 것도 몰랐다? 너 내 며느리 맞니?”
표정관리가 안 된다. 지 아들 장염은 보고 받아야되는 사람이 나 아프다는 건 들리지도 않나보다. 지 아들 병수발 들어주는데 수고 많다, 고맙다 소리는 못 할 망정. 어쩜 저리 이기적일까. 난 널 딸처럼 생각한다, 고부관계라고 생각하지말고 친하게 지내자던 사람이었건만. 지 딸 아프단 소리에도 저렇게 했을까? 저게 날 가족으로 생각하는 사람의 태도인가. 도무지 이해가 가지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어찌어찌 전화를 끊고 남편에게 말했다.
“어머님이 내가 전화 안 한다고 서운하신가봐.”
“아니야. 우리 엄마 그런 사람 아니야.”
“나더러 너 내 며느리 맞냐시던데?”
“우리 엄마가..?”
“다신 이런 소리 안 듣게 알아서 연락드려.”
사람취급도 못 받은건 말도 안했다. 바라지도 않는다.
이미 결혼 전부터 각자의 가족은 각자가 챙기기로 했다. 애초에 난 내 친엄마한테도 1년에 한두번 연락하고 별 일 없음 안 한다. 그런데 시어머니라고 꼬박꼬박 안부를 묻는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전화가 받고 싶으면 지 아들한테 받아야지. 우리 엄마한테도 남편에게 괜히 전화하지말고 나더러 하라고 했었다. 그러고나서 남편은 내가 심리상담도 받고 상태도 안 좋으니 며느리노릇 바라지말고, 연락할 일 있으면 자기한테 연락하라고 했다나. 그러려니했다. 그렇게라도 조심만 하심 되지. 나에게 겨울은 너무도 혹독했다. 곧 시부모의 생신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