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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Oct 13. 2019

“며느리도 있는데 네가 왜 하니?”

열 한 번의 심리상담, 그 기록 11

여자들은 아직 일을 하고 있다. 남편을 따라 자리에 앉을 순 없어서 난 마저 일을 거들었다. 남편은 술까지 받아먹었다. 그래놓고는 도로 와서 슬쩍 묻는다.

"나 저기 앉아도 돼?"

정말이지 염병을 한다. 이미 술도 받아먹고 안주도 집어먹고 다해놓고 대체 무슨 소릴 바라고 온건가. 이걸 배려라고 하는건가. 어이가 없다. 좁아터진 부엌에서 한 소리 할수도 없다. 이를 악물고 말했다.

"응.. 가서 먹어.."

“아니, 와서 먹으라고 하시잖아”

“알겠으니까 가서 먹어^^”

억지로 웃어주니 괜찮은가보다 하고 도로 가서 앉는다.


비닐막이나마 두르고 있던 남편마저 사라졌다. 사실상 초면인 남편집 며느리들과 나 홀로 별상에 앉아 밥을 먹었다. 왼쪽엔 시어머니 오른쪽엔 큰어머니, 앞엔 큰 며느리. 괜히 젓가락질 서툴게 해서 한소리 들을까 봐 짜디짠 떡국만 맛있는 척하며 떠먹었다.

"아유 ㅁㅁ(나)이는 왜 이렇게 조금 먹니? 반찬도 좀 먹고 해라."

“그래요, 편하게 드세요.”

“얘는 원래 별로 안 먹어요. 호호호”

가뜩이나 맛도 없던 떡국을 꾸역꾸역 집어넣었다. 큰며느리는 아직 본인 밥도 다 못 먹었으면서 일찌감치 다 먹은 남자어른들 수정과까지 챙긴다. 밥을 다 먹고 상을 치우고 남편을 따라 눈치 없는 척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고 있었다. 시어머니가 설거지를 하려나보다. 옆에 있던 큰어머니 말씀이 가관이다.

“며느리도 있는데 네가 왜 하니?”


며느리가 식기세척기인줄 아시나보다. 남편은 당연히 못 들었고, 난 못 들은 척 했다. 그래도 소란스러운 느낌이 났는지 남편이 설거지하려는 본인 엄마를 보고는 내가 할게 하고 나선다. 같이 하잔다. 혼자 앉아있기가 더 싫으니 따라 나섰다. 싱크대 앞에 나란히 섰다. 시어머니가 순순히 싱크대를 내주신다.


사진출처: 썰리

“자기가 비누 묻혀서 주면 내가 헹굴게”

남편에게 말했다. 일부러 그랬다. 남편의 손이 커서 고무장갑이 맞지 않아 내가 하는 게 사실 마음은 편하다. 그런데 그집 식구들이 그러고 쳐다보고 있으니 오기로라도 시키고 싶었다. 그말을 듣고 시어머니는 질색팔색을 하며,

“얘 손 다 상해. 됐다, 그냥 내가 할게. 나와라.”

하신다. 아들 손은 귀하고 내 손은 천한가. 나 설거지 시키려고 순순히 비켜줬는데, 남편손에 비눗물 묻힐 것 같으니 싫은가보다. 이런게 모성일까. 제아들만 어쩜이리 끔찍이도 생각하는지. 이래 놓고 딸 같다고? 엄마랑 딸처럼 지내자고? 당신이 내 엄마였으면 벌써 오조오억 번쯤 들이받았을 것이다. 결국 고무장갑 맞는 내가 비누칠을 하긴 했다.


집에 가려는데 큰어머니가 날 붙잡고 말씀하신다.

“너희 시어머니가 얼마나 잘하는지 모른다. 어제 (음식 준비하느라) 엄청 고생했어.”

“아이구 그러게요~ 힘드셨겠어요~”

대충 받아주고 나왔다. 네 시어머니만 보내지말고 너도 오란 소리라는 건 나중에야 깨달았다. 그땐 그냥 시어머니를 칭찬하시는갑다했다. 나의 부족한 이해력이 그나마 심신의 안정에 기여했던 부분이다. 남편의 큰집과 내 본가가 가깝다보니 온 김에 우리집도 들르는 수준이다. 이번엔 시간이 여의치 않아 시부모와 우리 부모를 한자리에 모시고 식사를 하기로 했다. 왜 그랬을까.. 난 왜이렇게 무모한가.

역시나 가부장의 언어들이, 구시대적 언어들이 오간다. 그것만으로도 별로인데 시어머니가 그러신다.

“ㅁㅁ아 나 설 준비하느라 엄청 힘들었다. 힘들어서 죽을뻔했어.”


내가 일 시켰나? 이런 소릴 왜 나한테 하나. 의도가 없인 할 소리가 아니다. 네가 와서 일을 안해서 내가 힘들었다는 것 아닌가. 내가 곡해한 거라면 누구라도 제발 알려주길 바란다. 혹시나 몰라서 덧붙이자면 그 집 차례는 내가 원해서 지내는 것이 결코 아니다. 내가 오기 전에도 본인들이 하던 일이다. 내가 며느리가 되고 일이 늘었을리도 없고, 안 힘들던 일이 갑자기 힘들어질리는 더더욱 없을 것이다. 그렇게 힘드시면 차례 지내지마세요. 라고 말 못한 나의 착함이 한스럽다. 그리고 저런 얘길 굳이 우리 엄마 앞에서 하는 이유는 뭘까. 당신 딸이 우리집 며느리 노릇 제대로 못하고 있어 내가 힘드니 교육 좀 시켜주소, 하는 것 아닌가. 괜히 엄마 앞에서 시어머니한테 말대꾸했다가 엄마만 딸 잘못 키웠다고 자책할까봐 꾹 참았다.


밥 먹고 나오는 길. 시어머니가 말씀하신다.

“너희 이런 얘기 듣기 싫어하는거 아는데 다음엔 옷 좀 단정하게 입고 와라, 괜히 말 나오지 않게.”

싫은거 알면 하지 마시지. 싫은거 알면서도 해도 된다고 대체 누가 가르쳤나. 제 아들한테 하는 소리니까 저렇게까지 완곡히 말했지, 나한테는 저런 미사여구도 안 붙였을 거다. 남편과 나는 일부러 짙은 청바지에 니트를 입고 갔다. 이정도면 깔끔하다 생각했다. 일 안 시킬것도 아니면서 정장 입고 오라는건 말도 안되지 않나. 근데 그랬어야된단다. 정장을 챙겨와서 차례지낼땐 갈아입었어야 된단다. 어쩜 이리 세세히도 옥죄는지. 자진모리인지 휘모리인지, 도저히 장단 맞추기가 버겁다.


명절이 지나고 1-2주쯤 지났다. 퇴사는 2주 정도 남았다. 직장때문에 마음이 힘든 줄 알고 상담을 받은지 2달이 가까워온다. 여전히 잠을 못 자고, 밥은 더 못 먹는다. 상담을 받을수록 나아져야할 마음이 여전히, 아니 더 힘들다. 명절이 지나면 괜찮겠거니했는데 나아지질 않는다. 남편이 숨도 못 쉬게 바빴고, 홀로 일주일 여를 견뎠다. 그러다 도저히 견뎌지지 않아 출근길 남편에게 넌지시 던졌다.

"요즘 내가 밥을 못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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