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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Oct 29. 2019

가부장 없는 가부장주의

가부장이란 이름의 폭력 6


1년간의 재수 끝에 대학에 합격했다. 대학 등록금을 내라는 연락이 왔다. 안 그럼 합격이 취소된단다. 엄마한테 말했다. "엄마 내 등록금은? 내 돈 빌려간 건 언제 줄 거야?" "준다고! 누가 안 준대! 지 어미한테 빚쟁이처럼 아휴" 엄마는 버럭 화를 냈다. 학자금 대출을 받아 등록금과 입학금을 내고 은행을 나오면서 한참을 울었다. 나는 절대 빚을 지고 살지 않겠다고, 나의 부모처럼 살고 싶진 않다고 다짐했는데 성인의 삶을 빚으로 시작하는 게, 심지어 모아놓은 돈이 있었는데도 빚을 져야 하는 게 너무 속이 상하고 억울했다. 결국 4년 내내 학자금 대출을 받았고, 지금도 다 못 갚았다. 엄마가 빌려간 그 돈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고, 언니의 3천만 원도 아직 빚으로 남아있다.

이미지출처: 경향신문

내가 합격한 곳은 친척언니가 합격해서 할머니가 좋아했던 대학의 같은 과다. 그 언니가 붙었을땐 할머니가 장하다며 용돈도 쥐어줬었다. 그것까지 기대한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아무튼 대학에 합격하고서 무슨 바람인지 할머니댁에 갔다. "할머니 저 00언니랑 같은 대학가요." 돌아온 할머니의 대답. "등록금은 무슨 돈으로 낼라고?" 첫 마디부터 돈 얘기라니. 기분이 확 상하는데 옆에 있던 아빠가 쉴드라고 생각했는지 이렇게 말한다. "학자금대출 받는대요" 그 말이 왜이렇게 밉던지. 네가 가져갔잖아, 내 등록금...


적어도 우리 가족은 한 순간도 아빠만의 경제력으로 살아본적이 없다. 커녕 제 한 목숨도 아빠는 엄마 덕으로 살았다. 경제적인 무능으로 개인을 비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 아이를 이렇게 많이 낳지 말았어야지, 적어도 지가 낳은 자식들이면 최소한의 책임감은 있었어야지, 힘든 일 하기 싫고 사장소리 듣고싶어서 평생 사업해서 말아먹고, 지 딸들 돈까지 말아먹었으면 죄책감은 있어야지. 여전히 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엄마한테 아는 거 없다고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게 너무 꼴 보기 싫다. 엄마가 조금만 다른 이야기하면 "당신은 알지도 못하면서 ..." 누구보다 악착같이, 제 힘으로 일곱식구 건사하며 살아온 엄마를 지가 뭔데 막 대해. 여전히 큰소리치고, 사업말아먹은 얘기만 하면 버럭 화부터 낸다. 자신의 가오가 상하는 말을 하면 여전히 손찌검을 하려한다. 이래서 싫다.


난 가난이 개인의 탓이 아니라고 믿는다. 가난한 사람은 그만큼 딛고 오를 기회가 적고, 가난의 늪에서 계속해서 허우적대며,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질 확률이 높다. 그렇지만 나의 아빠는 다르다. 기회가 없어서가 아니라 욕심이 많아서였다. 자신을 낮추기 싫어서, 자신을 낮춰야할땐 엄마를 낮춰가며 가오를 잡느라 그랬다. 엄마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돈을 가져다줘서, 남들이 사업에 대해 안될거라 하는 얘기들을 귀담아 듣지 않아서였다. 그런 얘기들을 아빠의 가족들은 아무도 해주지 않았고, 그런 말을 하는 주변인들은 자신보다 멍청한 사람들이라고 무시했던 탓이다. 사업에 실패하고 공사판에서 일하며 빚을 갚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차라리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고 노숙인의 삶을 택하는 사람들이 천만배쯤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인간이 내 아빠라는 사실이 너무 싫다.


갖은 고생을 한 덕에, 평생 빚구덩이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온 덕에, 파산인생이 되어버린 덕에, 엄마는 파킨슨병에 걸렸다. 일명 고생병이라고 부른다. 농약에 많이 노출된 사람들이 걸려서 농약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는데 증명된 것은 아니고, 농약을 치는 농사일을, 그만큼 고된 노동을 한 사람들이 걸려서 고생병이라고 한다. 난 엄마의 병이 아빠때문인 것만 같다. 왜 열심히 살아온 엄마만, 평생 아파트에서 살아보는 게 소원이라며 악착같이 살아온 엄마만, 삼종지교라고 남편한테 순종하며 살았던 엄마만 아파야하나. 아빠는 엄마가 병에 걸린 걸 알고는 바로 옆에 엄마가 있는데 나한테 이렇게 말했다.

"불치병 이제 국가에서 지원 좀 해준다던데"

"불치병 아니고 난치병이야. 그리고 그런 소릴 왜 하는건데.”


대체 아빠란 인간의 뇌 속엔 뭐가 있는걸까. 이게 가장의 뇌라는 걸까. 가장 노릇 못하고 가장 대접 받고만 싶었던 아빠같은 인간들이 내 주변엔 왜 이렇게 많을까. 아는 후배의 아빠도, 친구의 아빠도, 동료의 아빠도.. 아빠들은 하나같이 말아먹고 엄마들이 수습했다는데, 여전히 아빠들은 정신 못 차리고 말도 안되는 직함 달러 돈 안되는 단체에서 가오잡는다는데, 왜 가장의 타이틀을 그런 아빠들에게 달아주는걸까. 나한테 가장은 우리 엄마였고, 고등학교 이후엔 나였다. 나는 나 하나 건사하는 게 일생의 목표고, 지금까지 그렇게 살고 있다.


불과 작년, 취업한 지 2년, 결혼한 지 1년쯤. 겨우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족을 꾸리고 산다는 안도감이 찾아들때쯤. 통장이 압류가 됐단다. 학자금 이자 밀린적도, 카드값 안 낸 적도 없는데 왜? 알고보니 건강보험료가 800만원이 밀렸고 내 연대채무가 400이 넘는다고 한다. 가족이란 이유로 연대책임을 하는 게 말이 되냐고 따졌지만, 그 상담원의 권한 밖임이 뻔하다. 통장 압류를 막으려 마이너스통장에서 돈을 빼다 갚았다. 그리고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또 말 안한 거 있으면 미리 말해달라고, 이자만 부풀어서 일 키우지말고 제발 말해달라고했다. 엄마가 울면서 미안하다고 더는 없다고 한다. 건강보험료 체납은 엄마때문이 아니다. 결국 아빠 사업때문에 가져간 돈들이 필요한 곳에 못 간것일테다. 엄마한테 할 얘기가 아니니 아빠를 바꾸라고 했다. “너때문에 내가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돼? 대체 왜 벗어나지도 못하게 하는거야. 너 하나때문에 왜 다들 이렇게 힘들어야돼. 왜 잘못도 없이 우리가 이러고 살아야돼!”


가장이란 이름의 무게로 아빠를 측은하게 여길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 인간의 욕심때문에 평생을 고생한 우리 엄마가, 그 와중에도 제 살길 찾아 어린 시절을 빼앗겨버린, 너무 일찍 어른이 돼버린 우리 다섯 딸들이, 아직도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내가 너무 불쌍해서 그 인간한테까지 내어줄 마음이 없다. 나에게 아빠는 저 하나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인간일 뿐이다. 생계를 책임지는 게 가장의 역할이고 정의라면, 우리집의 가장은 엄마와 우리였다. 우리집은 가부장주의로 불행했지만, 가'부'장은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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