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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Oct 05. 2019

모두가 각자의 무게로 삶을 견디고 있다

열 한 번의 심리상담, 그 기록 5

두 번째 상담.
#상담실 의 공기가 날 울리는 걸까. 이 온도가? 습도가? 눈물을 유발하는 미세분자라도 뿌려놓는건가? 아니면 상담사의 외모가 슬퍼보이나?
어찌된 영문인지, 나는 상담실만 들어가면 들어서는 순간부터 #눈물 이 맺혔다. 그래도 이번 상담에서 처음부터 울지는 않았다. 다행이라면 다행인데, 심리검사에 대한 결과를 듣다가 초반에 울어버렸다. 역시나 눈물은 시간을 잡아 먹었고 예정된 시간 보다 초과 되어서야 상담이 끝났다.

상담사는 지난 #상담 이 끝나고 내가 작성했던 검사지를 프로그램으로 분석해서 결과지를 가져왔다. 이번 상담은 그 결과를 토대로 이루어졌다. #우울 과 #불안 이 상당히 높다고 했고 #분노 와 #자존감 은 생각보다는(물론 #상담사 의 말에 따르면 굉장히 높다고는 했지만) 낮게 나왔다. 마음의 힘든 상태를 검사하는 거다보니 대부분이 부정적인 지표들이다. 그리고 나는 그 지표들의 대부분이 높은 수치를 보였다.

#강박-특히 #공포 와 불안-이 너무 높아서, 상담실에 들어서자마자 상담사는 아주 조심스럽게 나에게 약물 치료가 필요할 것 같다고 얘기를 했었다. 나에게 있는 증상 중에 가장 위험한 건 강박, #편집증 과 같은 증상이었다. 어떤 강박이 있는지 언뜻 떠오르진 않아서, 상담을 끝내고 다음 상담이 있기까지의 시간동안 그것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일주일을 보냈다. 그러다보니 느낀건데, 난 생각보다 일상에서 다양한 강박을 지니고 있었나보다. 일을 잘 해야한다, 완벽해야한다, 다른 사람보다 없어보이면 안된다, 틀리면 안된다 등등.. 내가 정해 놓은 규칙에 절대적으로 따라야 하는 스스로의 룰이 꽤 있었다. 하다못해 게임을 할 때도 아이템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스스로와의 룰을 어기지 않기 위해 게임에서 지는 걸 택하기도 한다.

가만히 짚어보니 벼라별 강박이 다 있는 것도 같네. 상담사는 수치를 하나하나 설명할 때마다 어떤 걸 근거로 나타난 건지 떠올려 보게했다. 그러고 얘기를 나누는 시간을 많이 가졌는데, 생각보다 내가 어린 시절에 많이 매여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 시기의 경험과 사고를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상담실에 들어섰을때 상담사는 내게 오늘 일을 하고 왔는지 물었다. 나는 약속 시간을 조금 넘긴터라, 늦은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으로 일을 하다 늦었다고 설명을 했다. 근데 상담사는 늦어서가 아니라 검사 결과를 보니 이 상태로 일하고 있는게 너무 힘들 것 같더라고 얘기를 했다. 이런 상태로 그런곳에서 어떻게 계속 일을 하고 있느냐고. 그 말이, 내 마음의 상태가 직장문화로 인해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그 말이, 묘하게도 조금 위로가 됐다. 그리고 조금 용기가 생겼다. 사람들에게 떳떳하게(?) 힘들다고 말해도 되겠구나. 나름 버텨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덜 힘든 사람이 있다고한들 저마다의 기준은 다른것 아니겠냐고. 뭐 과대해석이라해도 어쩌겠나. 그걸로 위로가 됐으니 장땡이지.

상담이 끝날 때 상담사는 내가 죽고 싶다는 문항에 답을 많이 했다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하느냐고 덧붙여 물었다. 너무 힘들고 무기력하고 다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걸 죽음으로 연결시킨 적은 없었다. 죽을일인지까지 생각해본적도 없다. 무엇보다 죽을만큼의 용기가 없다. 그런데 왜 그렇게 말했을까. 어떤 수치에서도 정상이 잘 없었고 대부분이 이상 수치를 넘어섰다. 내 심리상태가 그 정도로 위험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죽고싶다는 생각도 나도 모르게 들었던걸까? 어쩌면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일지 모르겠다. 정신과 치료를 받아볼 의향이 있는지, 견딜 수 있으면 혼자 견뎌도 되지만 힘들면 약물 도움을 받아도 괜찮을 거라고 상담사가 권했다. 약물 치료가 필요한 수준이긴 한가보다. #정신과상담 을 받아봐야겠구나 생각하는 찰나,  '그치만 성격을 고치는 치료여서 시작하면 오랜 기간 약을 먹어야 한다'고 주의 비슷한 안내를 덧붙인다. 양약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얼마나 오래도록 먹어야 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너무 막막하지 않을까 싶어졌다. 일단은 심리상담을 좀 더 받아보고 결정하겠다고 말하고, 마무리했다.

내 마음을 객관화한 수치로 보니 주인 잘못 만나 고생이 많구나, 싶다. 모난 성격은 익히 알고있었지만, 마음을 갉아먹으며 살고 있는줄은 꿈에도 몰랐다. 마음도 몸도 지쳐서 '거 주인 나부랭이는 대체 뭐하고 사는거냐'하고 말하는 것만 같다. 평생 짊어질 나의 몸과 마음. 더 다치지 않게 당분간 잘 살펴줘야겠다.

(그림출처: 이크종님의 네이버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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