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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Oct 05. 2019

회의가 아니라면 어디서, 지금이 아니라면 대체 언제?

열 한 번의 심리상담, 그 기록 6

오늘도 상담에 늦고 말았다.

일찌감치 나오려고 했지만, 도무지 마무리되지 않는 일에 메이다 결국 또 늦고 말았다.


심리상담을 받기로했던건 사실 직장에 좀 더 건강하게, 오래 다니고 싶은 마음때문이었다. 이제야 내가 이 직장에서 나의 주장을 하기에 부족하지 않을만큼의 경력이 쌓였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만큼이나 나를 응원하고,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제야 내가 하는 일의 윤곽을 그려가며 할 수 있게 되었고, 더 잘하게 되었다. 스펙을 떠나 그냥 내가 이 일을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고, 일의 완성도를 보며 만족했다. 그래서 정말이지 그만두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잡은 동아줄이 심리상담이었다. 사실 심리적인 문제도 산재(산업재해)일 수 있는데, 내 마음의 병 또한 직장에서 기인한 것 아닐까. 다쳤으면 고쳐야지. 직장에도 얼마간의 책임이 있을테니 양해를 구했고, 직장내 공용 캘린더에 일부러 상담 시간까지 기입해뒀다. 그렇게 야심차게 상담을 받겠다 공언해뒀는데도 매번 지각. 상담사의 얼굴 보기가 미안해지고, 점점 상담이 두려워지는 것이 아닌가. 그러다 지난 상담에서 이런 직장을 어떻게 계속 다니느냐던 상담사의 질문까지 듣게 됐고, 직장을 유지한 상태로 회복하긴 어렵겠다 싶었다.


도저히 출근하고 싶지 않은 몸과 마음의 상태가 이어지고, 동료들을 마주하는 게 겁이나고, 새로운 일을 시작조차 할 수 없고, 하던 일에서도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상태가 이어졌다. 나 혼자서 바꿀 수 있는 것은 너무나 작다는 걸 깨달았고, 나는 지금의 내 마음 상태를 현상유지라도 하면서 직장에 계속 다닐지 그만두고 회복을 할지의 기로에 섰다. 그만둘까말까, 내가 너무 나약한가, 2년 이라는 시간을 버텼는데도 난 내가 도망가는 것만 같아 자꾸만 위축됐다. 결국엔 그만두기로 했다. 이렇게 망가지는 내 자신을 견디기도 힘들지만, 이 상태로 주변인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조금더 나를 아껴주고 싶었다.


"저 그만둘게요. 2월말까지 예정된 행사들이 많으니 그때까진 나올게요. 인수인계 제대로 해놓고 가고싶으니 그 전에 후임 구해주시면 좋겠어요."


동료들은 내 상태를 안타까워하면서도, 같이 조직을 바꿔봐야하지 않겠냐, 그래도 작년에 비하면 많이 나아지지 않았냐, 면서 만류했다. 맞다. 내가 있던 조직은 내가 들어왔을 당시엔 그만둘 당시보다 훨씬 더 열악했다. 20대 여성이 나 혼자였을뿐 아니라, 남성중에도 20대는 없었다. 나의 힘든점들을 공감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조직에의 헌신이 훨씬 더 많이 요구됐다. 주말 중 하루는 당연히 조직에 할애해야한다고 생각했고, 평일 저녁을 함께 먹는 문화는 곧장 야근을 당연시하는 문화로 이어졌다. 연차를 쓰는 것을 서로 쉬쉬하고, 권리에 대해서 얘기하면 '어떻게 저런 말을?'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한 번은 회의시간에 근로계약서 초안을 준비해왔으니 논의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다른 사람의 요구를 받아 그 필요에 공감해서 담당자로 진행하려던 것이었고, 이런 식의 노동감수성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던터라 과태료가 나올 수 있으니 형식적이나마 필요하다고까지 덧붙였다. 그럼에도 "그런건 회의에서 할 얘긴 아닌 것 같은데요"하고 단칼에 내쳐졌다. 회의가 아니라면 어디서.. 나중에 따로 얘기하자던 그 사안은 다시는 얘기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젠 연장, 야간, 휴일 수당이나 안식휴가 등에 대한 논의까지도 이뤄졌다. 물론 안식휴가는 얘기만 나오고 유야무야된듯한데, 어쨌든 권리라는 게 존재한다는 사실들을 인지하게 된것이다. 이 얼마나 장족의 발전인가.


하지만 난 이미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았고, 행여 내가 남는다해도 싸울 사람이 나뿐이라 외로운 싸움을 계속해야한다.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지는 겪어봐서 너무 잘 안다. 미움받을 각오를 단단히하고 싫은 소릴하고는 가슴이 뛰어 잠을 설치게 되겠지. 변하지 않는 것들에 허탈해하면서도 다시 마음을 다잡을테고, 그런데도 바뀌지 않는 것들이 개인의 정치력으로 치환될땐 환멸을 느끼겠지. 희망이라는 진통제엔 내성이 생겨버려서 더이상의 의지가 솟지 않는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던가. 이 조직을 놓지않으려 애쓰는  내가 너무 미련하게 느껴졌다. 이제라도 놓아야한다.


그렇게 나의 첫 직장에서의 2년 1개월을 마무리했다.

그만두기로 결정한 날부터 두달 넘는 시간동안 나의 바람은 하나였다. 후임자가 미리 구해지길, 가능한한 새로운 사람이 새로운 조직에서 연착륙할 수 있게 내가 도움을 주고 떠날 수 있길. 그러나 나의 포지션은 ‘아무나’ 뽑을 수 없으니 구하기가 어려웠을테고, 역시나 마지막날까지도 후임이 구해졌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2년 1개월간 덜지 못하고 쌓아만 왔던 것들을 쫓기듯이 정리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다음 사람에게 자리나마 깨끗하게 넘겨주고 싶었지만 마른걸레로 대충 훔치고 마지막 일정을 위해 뛰쳐나왔다. 마지막날의 퇴근시간이 지나도록 실무는 내 손을 떠나지 않았고, 느긋하게 마지막을 준비할 여유는 물론 인사를 나눌 여유도 주어지지 않았다.


내가 2년간 가장 목표했던 바는 일을 잘하는 ‘나’가 아닌, 잘한 일들이 남는 ‘조직’이었다. 물론 나는 일이 잘되게 하기 위해 갖은 수를 썼고(내가 가진 수가 터무니 없이 부족했을지언정), 역량이상으로 노력했음에도 모든 일이 잘 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주 후한 평가로 하나라도 잘했다는 평가가 남는 일이 있다면, 그 일만은 조직의 경험으로 계속해서 남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고민할 거리가 있으면 주변의 누구라도 나누려했고, 나름 구체화해서 문서로 남겨두곤 했다. 당장의 현안이 아니어도 누군가는 제대로 알고 있어야하는 일이 있다면, 나 외에 적어도 한 사람이상에게 공유했다.  사람에 의존하는 조직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합으로 굴러가는 조직이길 바랐다. 사람의 성장을 기다려줄 수 있고, 그 성장을 동력으로 삼을 줄 아는, 사람은 떠나도 그 경험과 노력들이 사라지지 않는 조직이길 바랐다.


나란 사람이 일을 잘했다거나 빈자리가 크다는 얘기는 물론 따뜻한 얘기다. 하지만 난 내가 많은 걸 쏟아부었던 2년은 나와함께 떠나오진 않았으면 좋겠다. 조직에 남아 다른 이에게도 쌓이고 또 쌓였으면 좋겠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개인의 역량에 지나치게 기대고 있는 그 조직답게, 나의 2년은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 내가 경험한 2년이 그 조직의 데이터베이스가 되지 못하고, 역량으로 남지 못한다는 것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어쩜 나는 마지막까지도 그런것을 안타까워할까. 정말이지 난 글렀다.


그만두고 까뮈의 페스트를 읽다 무릎을 탁 쳤다.

“그것은 전쟁이었다”

한시도 긴장의 끈이 놓아지도록 허용되지 않았다. 모든 일은 급하게 돌아갔고, 모두가 최전방에 내몰렸다. 저마다 치열하게 일 속에 파묻혀지냈고, 새로운 일이 생기면(그건 매일과 다름없었다) 그 일의 무게를 가늠하기전에 무작정 또 시작해야만했다. 자연스레 필요한 일들이 밀리고 당장 급한 일들이 끼어들었다. 한 번에 하나의 일을 할 수는 없었다. 최소한 세가지정도의 일을 동시에 해야했다. 따지고보면 결코 효율적일리 없지만 그런식으로라도 시시각각 들이닥치는 수요에 대응할만한 진척을 증명해보여야했다. 모두가 숨이 넘어가고 모두가 여유가 없었다. 온전히 쉬지 못하는 주말들이 이어지고 저녁에 대한 소유권은 잃은 지 오래되는 그 기간들이 지나고나서야 전쟁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것은 끝나지 않는 전쟁이었다. 이제 좀 괜찮나, 하는 시간들은 크리스마스를 맞아 자연히 맺어진 스페인 내전당시의 하루짜리 휴전과 같은, 아주 잠깐 허용된 숨고를 시간에 불과했다. 그와중에도 모든 전사들은 총알과 포탄을 준비하고 장비를 추스를 뿐이었지만. 내일의 격전을 위한 시간들. 전쟁은 계속됐고 언제까지고 끝나지 않을것만같았다.


남들 못지 않게 열심히 하려했다. 잘하고 싶었다. 첫 직장이기도, 첫 조직이기도하니 쉽게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누구와 비교하지만 않는다면 애정도 있었다고 자부한다. 조직이 잘 되길 바랐고, 함께 성장하길 바랐다. 그럼에도 결국 답없음의 결론으로 떠나온 내 심정은 오죽할까. 한두번도, 한 두명도 아니고 그렇게 많은 사람이 떠났으면 오류있음을 인지하고 성찰해야하지 않나. 2년 넘게 일하고도 그만두는 조직이면 단지 개인의 역량 부족이나 부적응이 문제일린 없는 것 아닌가? 제대로 진단하고 제대로 개선했음 좋겠다. 여느 조직에나 있는 성장통일테니. 일시적인 통증으로 지나느냐 평생의 옹이로 썩어가느냐는 절대적으로 의지의 문제로 보인다. 다 지나간 얘기지만, 아쉬움에 넋두리를 좀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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