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관한 고찰
어느덧 겨울이다.
알록달록 화려한 나뭇잎으로
옷을 입은 나무들이 옷을 벗고 나니,
내 사랑도 벗겨졌다
사랑을 말하면서
사랑에 관한 의문만 품었던 내게 찾아온 너
나를 가장 무지하게 만든 상대를 만날 때
내 사랑은 성립됐다.
물론 그 사람과 나는 우리가 될 수 없었다.
나는 부족했고 무지해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계산적이고 실험적인 태도로 그녀 앞에 섰다면,
지금도 크리스마스 이벤트를 구상하며
함께는 있었겠지만, 아마 그 사랑은
사랑이 아닌 성에 그치고 말 것이다.
성에 그쳤다면 난 지금처럼 고통받지 않겠지만
지금처럼 삶에 감명받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빛이라고 생각했던 그녀는
함께 있을 땐 작은 촛불 같더니,
떠날 때는 내 세상을 온통 환하게 비춰놓았다.
나는 벌거벗어있었고, 이상하게 창피하지 않았다.
내 몸에 잔뜩 묻어있던 촛농은
어느새 다 떨어져 나간 듯싶다.
그녀가 밝혀놓은 세상엔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그만큼 아픔도 가득 차 있다.
난 이제 아픔이 눈에 보인다,
다른 말로 사랑이 눈에 보인다.
아픔을 볼 수 있고 사랑을 볼 수 있게 해 준
그녀에게 감사하며 이젠 매일 도망칠 수 없는 슬픔이 온다면 마주하리라 다짐하며 살려고 한다
어쩌면 이 세상을 가득 채운 아픔과 슬픔,
벗어 날 수 없는 것일 테니.
고마워요 잘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