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4(fin)
다음날 아침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깨서 나가보니 양이 게르 벽면에 머리를 긁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아침 다섯 시 50분이 지나고 있었다.
어이가 없기도 하고 귀엽기도 한 상황에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고는 문득 물이 안 나온다는 두려움에 얼른 씻으러 갔다. 아니나 다를까 어제와 물줄기가 똑같다. 물은 여전히 차가웠고 아침공기 또한 차갑다. 샤워는 포기하고 가볍게 머리를 감고 양치, 세안만 하기로 한다.
식당에서 아침을 간단히 먹고 수다를 떨다 짐을 챙기고 모이니 9시.
출발 시간이 되자 서둘러 모여 차량에 탑승한다. 인원이 많아 짐 챙길 것도 많다.
오늘의 목적지에 가기 위해 서둘러 움직인다.
출발한 지 6시간 뒤 도착한 욜링암.
한국말로 번역하면 독수리의 계곡이라는 뜻이다.
입구를 지나가면 좌우 산맥 사이에 큰 길이 이어져있다.
그 길을 가이드와 함께 쭉 따라간다. 가는 도중 말을 타고 이동하는 팀들도 심심찮게 보인다.
뒤이어 상의를 탈의한 채 멋지게 말을 모는 몽골인이 보인다. 여기저기 감탄의 환호성이 들린다.
계속해서 가다 보니 작고 귀여운 생쥐들이 보인다.
한국어로 새앙토끼라는데 피카츄의 모델이라고 한다. 작아서 쥐인 줄 알았는데 토끼란다.
가는 길 역시 삼삼오오 모여 사진을 찍으며 이곳을 기념한다.
그리고 사진작가 직업의 2명은 매일매일이 즐거운 과로인 듯하다. 이 투어동안 3만 장 이상 찍었다고 하는 걸 보니 좋아하지 않으면 못 할 일인 것 같다.
덕분에 감사하게도 좋은 사진과 영상을 많이 받았다. 볼 때마다 감사하다.
투어를 마치고 한 시간 가량을 이동해 도착한 게르
다들 많이 친해져서 이제는 모여서 사진과 영상을 찍기 바쁘다.
많이 돌아다닌 나는 서둘러 샤워부터 하기로 한다.
이때가 극 성수기라 그런지 이 게르촌의 샤워실도 물줄기가 가늘다.
어쩌겠는가. 샤워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꾸역꾸역 샤워를 하고 나온다.
뒤이어 석식을 얼른 먹고서 어제와 같은 감동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오늘은 영상회의 때 준비한 아이템을 써보기로 한다.
야광봉을 이용해 사진을 찍는다. 중간에 몇 번 틀렸지만 그 과정 또한 웃음 가득한 추억이다.
단체촬영을 얼른 마치고 각자의 방법으로 은하수를 담는다.
은하수 아래 우리는 색색이 글자를 남기며 그렇게 밤은 깊어간다.
다시 또 게르에서 눈 뜨는 아침. 여섯 시가 조금 넘었다.
조금이라도 굵은 물줄기에서 씻고 싶어 서둘러 샤워장으로 간다. 아니나 다를까 물줄기와 온도는 여전했다.
우리가 당연시 여기는 것들은 여기에선 당연한 게 아니다. 투어 첫날부터 씻는 것 과의 사투는 이어진다.
7월 말에 출발한 여행은 이제 어느덧 8월 중순을 향해 간다.
한국은 덥지만 여기는 선선하다. 핸드폰을 켜서 여기 온도를 보니 14도란다. 아침저녁은 춥고 한 낮은 덥다. 하루에 4계절 온도가 다 있는 듯하다.
우여곡절 끝에 각자 다 씻고 모이니 여행 얘기에 다들 아침부터 즐겁다. 각자의 사진을 공유하며 각자가 마주했던 자연에 대한 무용담을 펼쳐놓는다.
그러던 와중 오늘은 정말 갈 길이 멀고 험하다는 가이드의 엄포에 다들 슬금슬금 모인다.
2명의 사진작가를 비롯해 다들 사진 좀 찍는 인원들이 모이니 일정은 슬금슬금 늦어지기 부지기일수였고 가이드는 아침부터 애가 타나보다. "서둘러 준비해 주세요~ 제발요..." 막내인 가이드는 서럽다.
오늘 목적지는 홍고린앨스(고비사막)이다. 사막이라니 다들 기대하는 눈치다.
9시쯤 출발을 시작해 11:30쯤 마트를 들러 간식거리를 사고 점심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비포장도로를 계속 달린다. 그렇게 또 몇 시간을 갔을까 갑자기 차를 세운다. 길이 험해서였을까 타이어에 문제가 생겨 갈아야 한다고 잠시 쉬었다 가잔다. 기사분은 내려서 트렁크에 있는 여분의 타이어를 꺼내더니 금방 교체를 마친다.
그리고 또다시 목적지를 향해 달려간다.
가는 길은 정말 쉽지 않았다. 내비게이션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도 아니고 길은 험하고 멀다. 망망대해 같은 이 벌판을 눈대중으로 판단하며 길을 이어가는데 기사분이 대단하게만 느껴지는 여행길이다.
그렇게 4시가 다 되어갈 때쯤 너무 늦어져 아쉽지만 오늘 사막을 갈 수 없다고 얘기한다.
근래 비가 많이 와서 가는 길이 험해져 평소보다 더 많은 시간이 지연되었고 우리 인원이 많다 보니 화장실만 들러도 한 시간은 그냥 소요되었으며 식사주문도 양이 많아 식사 나오기까지도 보통 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이러한 요소들이 누적되어 결국 일정이 밀렸고 금일 관광지를 가지 못할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다들 인정은 하지만 수긍은 쉽지 않았다. 하여 오늘 조금 일찍 숙소에 가서 쉬고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해 다음날 관광지와 오늘 관광지인 고비사막을 가기로 계획을 조율했다.
어차피 오늘 글렀다. 가는 도중 길가에서 사진이나 찍고 가기로 한다.
그렇게 다음 날
사막에 대한 기대감일까 다들 이른 기상에 저항감 없이 일어난다.
어제와 비슷한 조식을 먹고 서둘러 짐들을 차에 실어 나르며 출발 준비를 한다.
사막에 가기 전 비양작에 들러 둘러본다.
각자 정해온 색상의 옷들을 맞춰 입고 알록달록 섞여 사진을 찍는다. 나는 아이보리였다.
사막까지 가려면 갈 길이 멀다. 책임감이 강한 가이드는 오늘도 애간장이 탄다.
눈치껏 다시 모여 다음 행선지로 출발한다. 그렇게 몇 시간쯤 갔을까. 슬슬 사막이 보인다.
차에서 내린 장소는 사막산까지는 거리가 좀 되었고 중간에 낙타를 타고 이동하기로 한다. 생각보다 큰 낙타에 당황스럽다. 가까이 가니 침을 흘리고 뱉는 낙타에 거부감이 들지만 안내원을 따라 조심스럽게 낙타에 탑승한다. 떨어지지 않게 혹을 잡고 있으라는 안내에 다급히 혹을 잡았다.
그렇게 하나 둘 낙타에 탑승해 사막산으로 향한다.
사진은 이쁘게 나왔지만 초췌한 모습들의 우린 카라반 행상 같은 몰골이었다.
뒤에 따라오는 낙타가 탑승자의 다리에 침을 뱉으며 실랑이하는 광경에, 나는 낙타에게 니가 뱉으면 나도 뱉겠다는 먹히지도 않을 협박을 했다. 다행히도 얌전히 도착지까지 와줬다.
일행들이 하나 둘 낙타에서 내리고 이제 정면에 사막산을 마주한다. 그렇게 높게는 안보였지만 경사가 가파르다. 뛰어서 올라가긴 힘든 경사다.
잠시 뒤 각자 내려올 때 타고 올 썰매 하나씩을 받고서 개인의 페이스에 맞게 오르기 시작했다.
평소 운동을 해서 금방 오를 줄 알았는데 몇 번 쉬어야만 했다. 맨발로 오르는 이 사막은 생각보다 저항이 거세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열심히 내딛으며 오르니 칼날처럼 반듯한 산맥이 선을 이루며 다시 한번 광활한 대지가 펼쳐 보인다.
칼날 같은 이 산등성이에 발자국을 남기며 천천히 앞으로 가본다.
바람 또한 거세다. 깎아지는 산세는 날아가는 모자를 잡을 엄두가 나질 않게 한다.
아쉬움에 돌아갔던 시선은 이내 정면을 향했고 외줄을 타듯이 천천히 발에 집중해서 한 걸음씩 내딛는다.
인적 없는 봉우리에 다다라서 가만히 주위를 둘러본다. 베이지색 사막산은 또 다른 이국의 색채로 물들인다.
내려올 때 타고 오라고 준 썰매는 타고 왔다 보다는 그냥 굴러왔다가 적합한 표현 같다.
이 역동적인 하산으로 인해 사막의 모래가 옷이며 안경이며 어디 안 들어간 데가 없다.
몽골 일정 중 오늘만큼 샤워가 간절한 날이 없었다.
그렇게 도착한 오늘의 게르촌. 모두가 간절하지만 불평하지 않았던 샤워는 샤워장에서 환호로 바뀌었다.
우리가 가정집에서 체감하는 수압까지는 아니지만 씻기에 충분한 수압의 물이 환호와 함께 쏟아져 나온다.
게다가 따듯한 물이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오늘 석식 메뉴는 삼겹살이란다.
모두들 신나서 식당으로 뛰어간다. 어린 시절날의 생일로 돌아간 것 같은 오늘의 하루.
우리는 자연스레 작은 것에도 기념일 같은 감사의 시간을 갖는다.
일상에 당연시 여기는 이런 것들에 대하여.
다음날
게르가 슬슬 적응이 돼 간다.
이제는 각자의 게르에서 벌레에 대해 대처가 유연하다.
이 패턴적인 투어 일정 또한 적응이 되어 모두 이른 아침에 기상을 하며 기계적으로 움직인다.
비소식이 있는 오늘은 늦가을의 쌀쌀함을 동반했다.
시장에서 샀던 가죽재킷을 걸치고 오늘의 행선지를 향한다.
박가가즈링촐로
비교적 일찍 투어를 마무리하고 오늘의 게르에서 다시 저녁을 맞이한다.
내리는 비를 맞으며 낭만을 느꼈던 나는 여지없이 감기에 걸린다.
(8월의 비 오는 몽골은 기온이 9도까지 떨어지더군요)
침낭을 꺼내 몸을 녹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실질적인 투어의 마지막 날
이제 여행의 막바지를 향해 달려간다.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테를지 국립공원. 오늘도 갈길이 멀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테를지공원은 오후 여섯 시가 다 되어 도착했다.
오늘의 드레스코드인 흰 티에 청바지를 입고
여기저기 모여 사진으로 기록을 남긴다.
서로 사진 찍는 게 익숙해졌으며 단체로 설현포즈나 파워레인저 같은 포즈를 한 채 사진을 찍는다.
이제는 착 하면 척이다.
가볍게 공원을 돌아보고 숙소에 도착한다.
투어 마지막 날 밤. 여행사에서 방마다 샤워실이 있는 방으로 업그레이드를 해준 덕분에 샤워시간이 줄어 계획했던 일정이 빠르게 진행된다. 다 같이 말을 타고 공원 근처를 한 시간가량 돌았고 전통음식인 허르헉을 양껏 먹었다. 뒤이어 캠프파이어에서 긴장을 풀고 각자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롤링페이퍼에 적는다.
어린 시절 수련회 느낌이 물씬 느껴온다.
인원에 맞게 총 15장의 롤링페이퍼. 정성을 담아 작성하는 건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밀린 방학숙제 같았다.
숙제를 끝낸 사람들은 모여 서로의 기록에 깔깔대며 와인과 보드카를 부딪히면서 마지막을 기념한다. 함께 다니면서 그새 정이 많이 들었다. 할 말은 하늘의 별처럼 가득하다.
숙제를 끝낸 나는 아쉽게도 전날 신나게 맞았던 비로 감기기운이 심해 일찍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전해 들은 이 기념의 자리는 새벽 5시까지 이어졌더랬다.
아침이 오고 이제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대부분 공항으로 향했지만 나는 울란바토르로 돌아가길 원했다.
그렇게 다시 울란바토르에 다시 도착을 했다.
길고도 곱씹을수록 아름다운 여정이었다. 장시간 차에서 보냈지만 내려서 마주하는 광경은 가히 압도적인 경험의 연속이었다. 이곳에서 우리는 모두 탐험가이며 천문학자였다.
별을 보며 함께 유랑했던 이 탐험은 오늘로 끝이지만 나 홀로 하루를 더 남아 울란바토르를 돌며 이 여행을 곱씹어보기로 한다.
벌써 이곳에 온 지 18일째. 시간이 훌쩍 지났다.
첫날 왔던 수호바타르 광장에 다시 와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분수대 앞 난간에 걸터앉으니 여행의 첫 순간부터 지금까지 필름처럼 지나간다. 분수 옆 뛰어다니는 어린아이의 까르르 대는 소리와 함께 생각에 잠긴다.
구름 가득한 안반데기 배추밭에서 홧김에 길가 돌멩이를 발로 찼던 걸 시작으로 산장에서 본 쏟아지는 별들, 재즈펍에서 채웠던 낭만 가득한 밤 그리고 거대한 대자연과 은하수 이 모든 게 여전히 꿈만 같았다.
눈으로 직접 마주했어도 현실감 없는 이 기행(紀行)은 벅차오르는 감정을 여전히 내게 가져다준다.
어쩌면 대책 없고 한심한 기행(奇行)으로 비쳐질지 모른다. 한국은 취업난에 항상 시끄러우며, 젊을 때 바짝 벌어야 한다. 오늘 쉬면 내일은 뛰어야 한다. 이런 문구는 이제 너무나도 익숙한 문구들이다.
누군가에게는 이 퇴행 같은 기행으로 인해 값어치 없지만 고귀한 경험들을 얻어간다.
누군가에게는 매일 볼 수 있는 별이 뭐 대단하다며 유난이라고 하겠으나 나는 유별난 걸 얻었다.
나에게 이 빛나는 경험은 내가 어둠에 잠길 때면 빛을 반짝여줄 어쩌면 등대 같은 것이라 생각된다.
세상은 내 생각보다 훨씬 아름답고, 삶을 이어가는 건 이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을 더 보고 감동할 수 있는 것이라고. 그렇게 남은 보드카와 함께 마지막 몽골의 밤을 보낸다.
다음날 느지막이 일어나 귀국 준비를 하며 벅찬 마음을 안고 공항으로 간다.
빠른 인터넷, 콸콸 나오는 온수와 쾌적한 화장실, 편안한 침구 이 모든 게 그립다. 거기에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으로 몇 번 누르면 집까지 배달되는 맛있는 음식들 뒤이어 후식으로 차가운 커피까지 곁들인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이제는 내 삶으로 돌아갈 차례다. 돌아가는 길. 일상에서 누렸던 모든 게 감사하다. 마지막으로 투어 중 일행 간 불화는커녕 훈훈하고 이상적인 에티튜드, 그리고 멋진 영상과 사진에 큰 감사함을 팀원들 그리고 가이드에게 표하며 이렇게 몽골여행의 기록을 마무리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