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3
다음날
"안녕하세요.
오신다고 고생 많으셨어요."
투어 이틀 전 먼저 온 일행은 두 명이었고 대로변에서 만났다. 장소가 장소인지라 북적거려 바로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그들에게 건네는 나의 인사는 외려 현지인 같은 인상을 줬던 거 같다.
그도 그럴게 만남의 장소가 이미 대여섯 번은 갔던 카페였기에 주문과 자리 안내까지 자연스럽게 진행되었으며 그들에게는 다소 신선한 첫인상이었던 거 같다.
여기 사는 사람인 줄 알았다는 농담과 함께 간단한 인사와 소개를 마치고 나니 어느새 저녁시간이다.
한국에서 중국을 거쳐 몽골에 이르기까지 경유로 온 일행은 많이 지쳐있었다.
기운 빠진 이 분위기를 맛있는 식사와 음악으로 안내하기로 한다.
문뜩 며칠 전 갔던 재즈펍이 생각났다.
가는 길 괜찮은 식당도 더러 있기에 동선낭비 없는 괜찮은 코스가 될 거 같았다.
가는 길 재즈 펍 예약전화를 했으나 이미 예약은 다 차 있었고 현장방문을 유도했다.
막상 가보니 무대 정면의 테이블이 만석이였고 조금 기다려달란 말에 근처에서 식사를 하고 돌아오기로 한다.
바로 위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내려오니 마침 자리를 준비해 줬고 그렇게 공연을 관람했다.
오늘은 지난번 공연과 다르게 트럼본이 추가되었다.
공연이 끝나고 서로 각자의 숙소로 돌아가 내일 만남을 기약한다.
도시의 밤은 낭만과 함께 저물어간다.
그리고 다음 날
투어 일행이 모이는 날이다.
모두가 모이기로 한 숙소에 먼저 가 짐을 두고 나니 어제 먼저 온 일행을 만났다.
어차피 시내를 돌아다닐 예정인지라 시티투어 가이드를 해주고 나니 금세 저녁이다.
슬슬 저녁식사 시간이 다가올 때쯤 우리를 제외한 팀원 모두가 도착했다는 소식에 서둘러 합류한다.
모두 모여 저녁식사를 하고 장을 본 뒤에 숙소에 돌아와 간단한 자기소개를 한다.
모임장을 제외한 모두는 서로를 알지 못했다. 여행에 앞서 세 차례 영상회의를 진행했으나 여행 관련 아이템과 계획에 대해 회의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알 수 없었다.
이 투어에 들어오기 앞서 모임장에게 다들 자소서 형식에 장문의 글을 보냈으며, 모임장의 일종에 선별과정이 있었다. 모집글을 보고 '음.. 조금 과한 거 아닌가'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읽다 보니 충분히 납득이 갔다.
보통 타인과 함께하는 여행은 쉽지 않다. 일면식도 없는 타인이라면 더더욱 위태롭다. 여행을 이끌어본 경험이 많은 모임장은 불화를 어느 정도 예방하고 각자 특색이 있는 캐릭터를 모아 여행하기를 원했던 거 같다.
겹치지 않는 직업군과 다양한 캐릭터의 만남은 어색했지만 설레었고 즐거웠다.
공군소령, 개발자, 교사, 기자, 연구원, 작가 등등 다 열거할 수 없지만 누구나 들어봤음직한 회사의 일원으로 현재를 열심히 살고 있는 반짝이는 청춘들이었다.
간단한 소개를 끝내고 장 봐왔던 술을 마시며 이번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니 금세 친해져 간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을 안고 투어의 전야제를 마무리한다.
투어의 시작
아침이 밝았고 모두들 짐을 챙기고 승합차 2대에 짐을 실어 나른다.
인원이 15명이기에 승합차 2대로 이동했으며 매일 아침 인원은 1, 2 호차 랜덤 하게 배정하기로 한다.
도심을 빠져나오기 전 가볍게 마트에서 간식거리를 구매 후 마저 이동한다.
이때는 몰랐지... 차 안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 있어야 하는 줄...
설레는 마음으로 한참을 이동했다. 몇 시간쯤 지나니 이제 포장된 도로가 끊겼으며 황무지를 내내 달렸다.
그렇게 몇 시간을 갔을까 중간에 내려서 사진을 남기며 잠깐 쉬어가기로 한다.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며 차에서 내리니 광활히 펼쳐지는 황무지 그리고 구름들이 아득하게 멀리까지 보였다.
정말 허허벌판인 이 황무지가 감동으로 가득하다. 그렇게 각자 핸드폰을 꺼내며 이 장소를 기념하고 일행 중 사진작가인 모임장과 한 살 위 작가형의 이중촬영이 시작되었다.
아직도 그들에게는 감사하다. 이번 여행 그들이 찍어준 사진과 드론영상은 볼 때마다 감동스럽다.
빠르게 기념사진을 찍고 다시 두어 시간 이동하니 목적지에 도착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차강소브라가다.
짧게 설명하면 고생대 바닷속 지층이 융기·풍화돼 생성된 절벽이다.
원초적인 자연을 마주하는 기분에 감격스러움을 느낀다.
깎아지는 벼랑과 그 밑에 펼쳐지는 광오한 대지 뒤이어 이어지는 구름들과 무지개
이 장엄하고도 신비한 풍경은 우리를 모두 들뜨게 만들었다.
작가일행들은 바쁘게 셔터를 눌러댔으며, 나 또한 내 눈으로 담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진득하게 마주했다. 이 무용한 것들을 사유하고 싶었고 이 생경함을 하나라도 더 담아가고 싶었다.
그렇게 각자의 방법으로 이곳을 탐닉했다.
그렇게 관광을 마치고 숙소로 이동한다.
비포장도로를 두어 시간 더 이동했지만 다들 방금 마주한 자연에 감탄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도착한 게르는 4인 1실로 생각보다 아늑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끝을 알 수 없는 지평선과 가까이에는 양과 고양이 그리고 게르촌이 전부였다.
무해해 보이는 이 자연경관에 너도 나도 설렘이 가득하다.
바로 짐을 풀었고 늦으면 물이 안 나와 샤워를 못한다는 얘기에 샤워부터 하러 갔다. 바로 갔으나 아니 이게 웬걸.. 왜 그 있잖는가 18.9L 물통을 끼워 넣고 쓰는 클래식한 정수기. 그 통에 물이 다 떨어질 때쯤 졸졸졸 나오는 그 시기. 그 시기의 물줄기로 샤워를 해야 했다. 물줄기는 점점 얇아져가고 몸에 이미 거품이 가득하다. 낙장불입인 이 상황. 씻어내기 위해 한 시간 가까이 샤워를 했다.
샤워를 끝내고 기진맥진해진 몸으로 식당에 가서 몽골식을 먹고 나니 일몰이 끝나간다.
해가 사라지기 전 서둘러 캠핑의자와 스피커 그리고 보드카를 챙겨 목 좋은 곳에 자리를 튼다.
마침 오늘이 달 없는 날이었고 그 말인즉슨 별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날이었다.
그렇게 해가 지고 별이 하나 둘 존재감 뚜렷이 보인다.
그리고 어느덧 거대한 우주를 맞이한다.
페가수스는 실제 했으며 오늘로써 나는 산증인이 되었다.
산장에서 바라본 별만 해도 나에게 낭만을 가득 안겨줬지만 게르촌에서 바라본 이 하늘은 나에게 두려울 만큼 거대한 우주를 안겨주었다.
우리는 모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장엄한 어둠 짙게 깔린 고요함.
누군가는 공포에 가까운 경원감을 누군가는 아름다움을 또 누군가는 신비함을 목도하는 이 순간은 실로 고귀한 것이었다.
그렇게 스피커에 나오는 영화 인터스텔라 OST의 first step을 시작으로 이 별스러운 것에 대한 집중력을 잃지 않는 음악들로 공간을 채웠다.
시간이 지나 침묵이 깨지고 각자 기억으로 남길 수 있는 촬영을 한다. 밤은 더 시리고 반짝인다.
서로의 옆에 놓여있는 보드카를 따라 마신다.
이 아름다움에 대해 서로 얘기를 나누면서 오랜 시간 회자될 일임을 모두가 확신한다.
이렇게 별빛과 함께 밤은 사그라들고 아침이 밝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