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편-1
이른 아침에 울란바토르 공항에 도착했고 설레는 마음으로 수화물을 찾았다. 공항 환전소에서 환전을 마치고 공항을 나오니 새벽공기가 시원하게 다가왔다.
처음 마주하는 환경. 혼자 시간을 보낼 계획에 설레기도 조금 걱정되기도 했다.
사람이란 게 참 간사해서 도시는 시골을 시골은 도시를 마음 한편에 그리며 살아간다. 그리고 나 또한 그들 중 하나임을 부정할 수 없다. 서울 번화가에 지친 나는 울란바토르 외곽에 있는 산장에 머물기로 한다.
도심을 빠져나와 산중 캠핑장에서 보내는 시간도 좋지만 산속 은거생활과는 괘를 달리한다. 체류 기간은 짧지만 나는 후자를 원했고 이처럼 익숙하지만 생경한 게 필요했다.
택시를 타고 예약했던 숙소까지 한 시간 반 가량을 갔다. 가는 도중 요새 우스갯소리로 몽탄 신도시 하는 표현이 우습게도 체감이 되었다. 몽골 택시기사분과 한국말로 하는 대화와 함께 가는 길 보이는 CU편의점들과 E마트 때문이다.
그렇게 도심을 빠져나왔고, 한국에서 본 적 없는 깨끗한 초록색 언덕을 지나 한적하고 외딴곳의 산장에 도착한다.
생각했던 이상적인 분위기. 짐을 푸는 동시에 음악을 틀며 잠시 감탄에 이은 사색에 잠겼다.
이번 여행 서사와 전개의 이음새가 좋았다. 이제 그토록 고대하면 별. 별만 잘 나타나주면 완벽할 거 같았다.
하지만 별을 바라보기에는 시간이 너무 일렀기에 당장 생활에 필요한 식료품부터 사기로 한다.
사람이 거의 없는 외곽이다 보니 반경 수 km 내로는 식료품을 구할 데가 없었다. 그럴만한 게 전경을 보면 정말 아무것도 없다. 하여 구글맵에 찍히는 버스정류장을 찾아 일단 나가본다.
언덕길을 내려가고 대로변이 보일 때쯤 한 승합차가 멈춰 선다. 창문을 내리니 한 남성이 인사했으며 다소 당황스러운 이 상황의 운전자는 조수석에 어린 딸아이로 보이는 소녀로 인해 한 딸의 아버지로 보였다.
대뜸 영어로 한국인이냐고 묻더니 시내로 나가는지 질문을 이어갔다. 나는 그렇다고 했더니 일단 차에 타란다. 나는 기꺼이 감사인사를 표하고 차량에 탑승한다.
시내까지는 40-50분이 소요된다며 자기는 딸아이 학원을 데려다주는 길이라고 설명을 이어갔다. 아버지로 보이는, 어쩌면 내 또래일지도 모르는 이 남성과 짧은 영단어로 대화를 이어나갔고 6-7살로 보이는 딸아이는 자연스러운 영어로 나와 그의 대화를 접목시켰다. 그렇게 딸아이를 데려다준 뒤 영어단어 몇 개의 조합으로 대화를 더듬으며 이어나갔고 수호바타르광장을 시작으로 가벼운 도시 소개와 식당 추천을 해주며 나를 백화점에 데려다준다.
대화 끝에 알아낸 그의 이름은 바트뭉흐였으며 나와 동갑이었다.
그의 호의가 너무 감사했다. 이역만리 떨어진 타국에서 처음 받는 현지인의 호의. 나에게는 별처럼 빛나는 것이었다. 이렇게 보낼 수 없기에 추천해 줬던 식당에 같이 가서 식사를 대접하고 백화점에서 가장 커 보이는 생크림 케이크를 산 뒤 딸아이 선물이라는 말과 함께 소정의 현금을 택시비 명목하게 감사한 마음으로 건넸다. 처음에는 케이크만 받겠다고 한 그였지만 두세 번째 권유에서는 기꺼이 받아줬다.
케이크와 함께 식료품을 구매 후 양손 가득 식료품이 담긴 봉투를 들고 있는 나를 보고서는 다시 집으로 데려다주겠다고 한다. 택시비치고는 조금 많다면서 데려다주겠다고 하여 감사히 제안을 받아들여 양손 가득 식료품 봉투를 들고 귀가한다. 숙소 앞에서 바트뭉흐는 당신이 체류하는 기간 동안에 언제 한번 가이드를 해주겠다는 인사를 하고 해어졌다.
그렇게 숙소로 와서 윈도우 배경화면과 같은 풍경을 보며 식사를 하고 마저 짐을 풀었다.
저녁식사를 6시쯤 하고 캠핑의자와 작은 스피커 그리고 음료를 들고 집 맞은편 언덕길을 올랐다.
올라가는 길. 말 몇 마리를 봤으나 '이게 몽골이고 이게 자연이지' 하는 혼잣말과 함께 나도 모르게 말이 된 것처럼 신이 나서 뛰어 올라갔다.
올라간 뒤 캠핑의자를 펴고 느긋하게 앉아 감탄을 하며 찬찬히 일몰을 감상하고 있자니 이 현실감 없던 광경이 서서히 내게 녹아듦을 느낀다.
내 주위로 인기척은 느낄 수 없으며 자연과 독대하는 이 느낌이 벅차게 다가왔다.
혼자 말없이 그렇게 석양을 응시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기를 한 시간째 풀밭이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모기는 많았으며 해는 길었다.
그렇기를 한 시간. 청승을 떨다가 언덕을 내려왔다.
집과 언덕을 가로지르는 길은 아무것도 없었다.
드문드문 보이는 원형 울타리는 말 몇 마리만이 소리없이 나를 바라본다. 내려오는 길은 미끄러지듯 서둘러 내려왔다.
숙소에 도착하니 피로가 몰려와 침대에 바로 쓰러져 잠들었다.
그렇게 잠깐 잠들고 일어나니 주변은 어둠이 짙게 깔렸으며 조금 큰 집에 혼자 있는 게 무서워 스피커로 음악을 틀었다. 용기가 생긴 나는 맥주 한 캔과 의자를 들고 집 앞마당으로 나갔다.
그토록 고대하던 별을 보기 위해.
그리고 감동의 순간은 이렇게 다가왔다.
빛공해가 없어서일까 별이 선명하게 잘 보였다.
자정이었고 하늘은 높았으며 별은 선명하게 빛난다.
쪽빛 융단에 흩뿌려져 있는 은빛 반짝임
내가 이 반짝임을 보기 위해 이 모든 과정들이 연이어 일어났다고 생각이 들 만큼 아름다웠다.
이곳에 와서 별을 마주하기까지의 서사는 필름처럼 지나갔고 이제 이 장엄한 막은 밤의 커튼과 함께 맞이한다.
밤이 어두울수록 별은 더 빛난다. 그렇게 별을 올려보며 첫날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