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의 길-7(Fin)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마지막날까지 나를 추적해 오는 듯하다.
목적지에 도착이 예상되는 날 아침.
이제는 달관했다는 듯 이른 아침 머리를 감고 말리는 시늉도 없이 대충 물기만 털고 길을 나선다.
어차피 젖을 머리. 젖은 채로 그냥 나가기로 한다. 비 오는 출근길이 익숙해졌기도 했지만 드디어 오늘 목적지에 도착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굳건해진다. 심호흡을 크게 들이쉬고는 문을 힘껏 박차고 나갔으며 설레는 기분에 속도가 붙었다.
기대감과 함께 오는 들뜸 때문이었을까? 내리는 비에도 지치지 않고 걸으며 그렇게 도시의 초입이 보인다.
그렇게 정오가 되기 전 목적지인 산티아고에 들어서게 된다.
아침부터 내리던 비는 도시에 도착해서도 여전히 수시로 그쳤다 내렸다를 반복한다.
도시에 도착하니 사뭇 달라진 분위기와 현대적인 도시 느낌에 다시금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곳저곳 둘러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지만 우선은 목표했던 대성당과 완주증서를 발급받는 사무실이 우선이었기에 다리는 올바른 방향으로 두 눈만 따로 한눈을 팔며 걸었다.
그렇게 여기저기 한눈을 팔아대며 대성당과 순례자 사무실을 향해 걸어간다.
잘 포장된 보도블록에서 오래된 돌길을 마주했고 나는 그 오래된 길을 따라 고지로 향한다.
들쭉날쭉하던 비는 막바지에 다다러서야 점점 거세져 왔으며, 때 마침 돌계단을 올라갈 때쯤 흘러나오는 음악을 따라가니 비를 피하기 좋은 공간이 보인다. 소나기를 잠시 피하기 위해 통로로 이동했다.
통로에 들어가니 고요한 공간에 한 명의 플루티스트가 보인다. 플루티스트의 호흡은 음악으로 변했으며 이 공간은 울림을 더해줬다.
이 공간의 벽면을 등지고 한음씩 불어오는 플루티스트의 연주는 이곳을 원형 극장 무대로 만들어주기에 충분하였다.
빗소리는 안단테에서 포르테로 바뀌었으며 사방의 건물 기둥에서 위로 모이는 아치형의 높은 층고를 타고 울리는 빗소리가 때로는 규칙적인 메트로놈이, 때로는 스네어 드럼의 여린 스트로크 소리처럼 들려왔으며 나는 가만히 끄트머리 벽면에 기대 비를 피하며 묵묵히 시선을 플루티스트에게로 움직였다.
강렬했던 한 악장의 빗소리가 끝나고 여리게 빗소리가 전환되었을 때, 나는 이 벽면에서 몸을 떼어내어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모퉁이를 돌아 위로 오를수록 저 멀리 첨탑만 보이던 건물은 점점 페이드 인이 되어 넓은 광장이 전개된다.
이 순례자의 길의 마지막 악장에 막바지 부분.
이 순간은 카덴차처럼 빠르고 현란하게도 목적지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광장에 다다랐고
넓은 광장을 도착하니 저마다의 환호와 기념사진으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공중에는 졸업식 학사모를 연상케 하는 순례자들의 모자와 저마다 자신의 목적을 이뤄냈다는 환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대학 졸업식날 졸업생들의 학사모처럼 각자 모자를 던지며 사진을 찍기도 하고 제자리에서 뛰기도 하며 각자의 마무리에 걸맞은 포즈로 사진을 찍는 모습들이 보인다.
나 또한 이 분위기에 상기되어 간다.
그리고는 그 광경을 말없이 목도하며 울컥이는 감정을 삼킨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 또한 이곳에 오기까지 많은 것 들을 인내하였으며 기꺼이 내려놓았다.
행위는 단순하지만 거대한 의미를 가져오는 이 길을 걸음에 있어서 많은 희로애락과 깊은 경험이 서려있으며 누구도 찾을 수 없는 나의 깊은 내면을 두드리는 길이였다. 누구에게 인정받기 위해 하는 행위가 아닌 나만을 위해 걷는 이 발걸음은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이타적인 길로 인도하는 듯하였다.
정말로 내가 이곳에 왔구나 하는 인식과 함께 조금씩 새어 나오는 감동의 눈물은 자연스레 가랑비를 타고 사라진다. 이곳에 도착했다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오기까지의 과정들 또한 무엇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었다.
일정 중 조우했던 로마에서 스위스-프랑스를 지나 산티아고까지 수개월동안 걷는 중이었던 70대 할머니, 어린아이와 함께 누구보다 느긋하게 이 길을 걷고 있는 행복으로 가득한 한 가족, 아픈 몸을 이끌고 포기하지 않고 걷는 이제 갓 성인이 된 어린 친구 등등 내게는 잊지 못할 다양한 사람들과의 뜻밖의 만남 또한 이 과정의 빼놓을 수 없는 퍼즐 조각들이었다.
저마다의 가방의 무게가 다르고 걸어온 거리가 다르고 여정중 고통의 척도가 다르겠지만 힘들고 인내는 동일하게 쓰게 다가왔을 것이다.
하나 이 광장에서의 던져지는 모자와 환호성으로 이 여정은 결국 달콤한 끝맛의 초콜릿처럼 기억될 것이다.
지금의 내가 그렇듯이.
그렇게 벅찬 감정을 잠시 추스르고
이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주변을 살펴 사진을 부탁했다.
마침 한국인 커플로 보이는 순례자에게 조심히 사진을 부탁했고 흔쾌히 사진을 찍어줬다.
이 날을 위해 울릉도에서 독도 입도를 기념하기 위해 구매했던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이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사진으로 남긴다.
뭔가 나의 별 볼 일 없는 인생의 책장에 값지고 귀한 책 한 권이 꽂힌 거 같다.
마치 두서없이 모아둔 책장의 책들 사이에서 우연찮게 들어온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 초판본이 꽂여있으면 이런 기분일까.
그렇게 독도 글씨가 보이게끔 뒤를 돌아보며 사진을 찍어본다.
나 또한 그 커플의 사진을 찍어주며 간단하게 대화가 오갔다.
O: “커플이신데 쉽지 않은 여정을 오셨네요. 너무 멋지시네요! 어디를 걸으셨어요? 저는 프랑스길을 걸었어요. “
“아~그러셨구나! 저희는 몇 년 전에 프랑스길을 걸었고 이번에는 스페인 은의 길을 걸었어요. “
O: “한 번도 힘든 이 여정을 두 번씩이 나요?! 대단하시네요. 저는 두 번은 못할 거 같아요…”
그들은 이해한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저희도 그랬어요… 걸을 때는 정말 죽겠다 싶었다가도 한국에 돌아가면 자꾸 이 여정이 생각나더라구요. 오랜 고민 끝에 결국 이렇게 한 번 더 이렇게 오게 됐네요.”
피로에 찌들어 있으며 다리를 절뚝이는 그때의 나는 고개를 빠르게 저으며 안 그럴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이런 간단한 대화를 짧게 마치고 뒤를 돌아 이 광장이 한눈에 보이는 뒤로 가 바닥에 걸터앉아 이 광경을 눈으로 열심히 담았다.
나는 이 성당 정면과 광장의 사람들이 잘 어우러져 보일 수 있는 뒤로 향한 후 바닥에 앉아 생각에 잠긴다.
파리에서 기차를 놓쳐 열네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내려온 해프닝부터 시작해 이곳에 이르기까지 천천히 이 과정들을 시간순으로 나열해 본다.
신은 주사위를 굴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데 내 여정은 매 순간이 주사위의 연속이었다. 퇴사부터 시작해 몽골에 울릉도 독도를 거쳐 프랑스에 도착해 이곳까지 오기에는 크고 작은 이벤트가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연속적으로 앞만 보고 가기 바쁜 일상이었다. 하지만 이 내가 걷는 이 길이 앞으로 가는 길인지 뒤로 돌아가는 길인지 알지 못했다. 그저 나가가길 원했으며 시행착오로 인해 뒤를 돌아가야 하는 시기도 분명히 있었다.
이 여정 또한 그러했다. 예기치 못한 일들의 연속이었고 여러 이벤트들이 있었다. 중간에 방울뱀을 보고 놀라서 부리나케 도망간 일도 있었고, 서둘러 뛰어가다 넘어져 데굴데굴 구르기도 했으며, 이정표를 못 보고 정처 없이 걷다가 뒤로 돌아오는 일도 더러 있었다. 때로는 길이 아닌 곳을 잘못 들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숲을 가로질러서 더 빨리 가기도 했다.(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제가 걷던 길에서 3일 뒤 산길에서 산짐승에게 공격을 당해 돌아가신 백인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확률은 낮지만 위험한 구간이 분명 있습니다.)
이처럼 단순히 걷는 과정마저도 내 예측대로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길을 포기하지 않고 앞을 향해 꾸준히 걷다 보면 언젠가는 도착하는 이 여정처럼 꾸준한 노력이면 모든 일을 다 성공시킬 수 있을 것 같은 알 수 없는 자신감이 든다.
바로 오늘처럼.
이 여정을 축소해서 멀리서 보니 다사다난하고 즐겁다.
확실히 멀리서 봐야 희극이다.
그렇게 짧은 희극 한편을 상기하고 나니 괜히 웃음이 나오면서 배가 고파진다.
이만 일어나기로 하기로 한다. 순례자 완주 증서를 발급받기 위해 대성당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오피스를 방문해 완주 증서를 받고 알베르게로 이동한다.
알베르게에 도착해 빠르게 체크인을 하고 완주증서를 1등이 당첨된 로또복권마냥 조심스럽게 가방 가장 안쪽에 보관하였다. 아마도 이 완주증서와 순례자 여권은 죽을 때까지 간직할 듯싶다.
그리고는 서둘러 씻고 환복을 한 뒤 서둘러 이 도시를 탐험하기 위해 나왔다.
가볍게 스페인의 명물인 츄러스와 핫초코로 추위와 기력을 회복하고 성지라고 불리는 산티아고 대성당에 입장하기로 한다.
대성당 입장은 무료였으며 입장하기 위해 길게 늘어진 줄은 비교적 빠르게 빠졌다.
들어가서 보니 병목현상이 생기는 구간은 마테오의 유해를 보관한 방 앞 좁은 통로에서 사진을 찍거나 목례를 하느라 줄이 길게 생겼으며 나 또한 그 앞에서 잠시 시간을 내어 차분히 목도했다.
뒤에 길게 기다리는 줄과 좁은 통로였기에 장시간 이 자리에서 머물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으나 사람마다 각기 다른 눈빛과 태도로 이 마태오의 유해가 담긴 은빛 관을 바라본다.
홀린 듯 은빛 관을 바라보는 자, 눈물을 흘리며 무릎 꿇고 잠시동안 기도를 하는 자, 사진을 찍으며 신기해하는 자 등등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접근방식이 있는 공간이었다.
좁은 통로를 마저 내려가면 성당 내부의 큰 홀이 나오며 이는 중심부인 예배당 쪽으로 길이 이어졌다.
중앙의 홀에 들어서면 넓은 예배당이 펼쳐져 있으며 정면에는 금빛으로 화려하게 빛나는 천사들이 장식되어 있다. 이것만 봐도 중세 기독교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모두들 같은 걸 느끼는지 말없이 입은 벌어진 채로 고개를 치켜들며 천장부터 뜯어보는 방문객들의 표정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내부를 둘러보면 방문객이 꽤 있으나 소란스러움은 없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 공간에 있음을 인식하며 기억에 새기는 듯하였다. 누군가는 사진을, 누군가는 기도를, 누군가는 연인과 대화를 하며 각자의 기억 속에 이 장소를 새겨 넣었을 것이다.
마침 다리에 통증이 느껴졌기에 의자에 앉아 조용히 이 웅장함을 바라보며 몸과 맘을 달랬다.
대성당을 한 시간 반 가량 둘러보면서 오늘이 가기 전 여러 장소를 가보고 싶은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성당을 나왔다. 뒤이어 바로 옆에 있는 대성당 박물관에 들어가기로 한다.
입장하기 위한 대기줄은 없었으며 입장료를 내고 입장을 했다.
애매한 시기였는지, 점심시간 즈음이어서 그랬는지 방문객은 거의 보이지 않았으며 2시간 정도 관람하였으나 나 이외에 다른 관람객을 마주친 건 10명 남짓이었기에 차분하게 온전히 내 페이스대로 관람을 할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대성당 공중에 보이던 커다란 향로부터 오랜 기간 보존해 온 의복이나 각종 전시물 그리고 주교의 무덤까지 볼 수 있었으며 목 좋은 곳에 차분히 앉아 이 분위기를 감상하였다.
-대성당 박물관
대성당은 무료지만 박물관은 별도로 입장료가 있습니다. 10유로 정도 했던 거 같은데 순례자여권 지참 시 할인이 됩니다. 오디오가이드가 있었지만 한국어 버전은 아쉽게도 없었습니다.
아쉬운 데로 오디오가이드 없이 둘러봤지만 충분히 값어치 있고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박물관의 장점답게 소장품 한 점 한 점 세밀히 볼 수 있다는 점과 진귀한 전시품들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방문할 가치가 충분한 장소였습니다.
평온했던 관람을 마치고 나와 사람들이 북적이던 번화가로 발길을 돌렸다.
박물관을 나오면서 번화가로 가는 길목에서 다시 그 플루티스트와 마주쳤다.
긴장이 풀린 지금 이 플루티스트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어린 시절 취미치고는 꽤 오래 플루트를 불었었고 이 악기를 계속했다면 나도 지금 길거리에서 이러고 있었을까 라며 과거에 만약을 대입해 본다. 악기를 전공하려 했으나 취미로만 하기로 하고 공부를 하기로 했던 부모님과의 대화까지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별에 별 생각이 다 든다. 왠지 남일 같지 않음에 마침 주머니에 있던 동전 전부를 탈탈 털어 조심히 거리의 악사에게 주고는 뒤돌아선다.
최우선적으로 방문해야 할 장소들은 다녀왔기에 이제 도시를 찬찬히 구경해 보기로 한다.
작은 마을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상가들이 즐비해있으며 마음과 발길이 가는 데로 하나씩 들어가 보기로 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감자칩을 파는 가게에 들어가 보고 눈에 띄는 하몽가게를 방문해 하몽을 구입했다. 점원의 추천을 받아 좋은 등급의 하몽을 구매하였으며 이 하몽은 여정중 가장 맛있는 하몽으로 기억된다. 상태 좋은 참치 뱃살이 주는 지방의 깊은 맛과 함께 녹진한 향과 무거움에서는 주는 감동은 가격이 아깝지 않았다. 일반 식자재 마트에서 먹었던 하몽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맛이었기에 인상깊이 기억에 남았다.
한국이었으면 맛있는 안주를 먹을 때 소주 N병은 마실 수 있겠다고들 표현하는데 저 한팩이면 와인 2병은 마실 수 있을 듯했다. (실제로 저 한팩으로 혼자 와인 2병을 마셨다.)
마지막으로 알베르게에 돌아가기 전 큰 마트에서 장을 봤고 알베르게에 돌아와 나만의 저녁식사를 준비하기로 한다.
알베르게 주방에서는 두세 명이 유지가 될 만큼 조금의 유동인구가 있었으며 나는 간단(?)하게 저녁을 차린 뒤 테이블에서 식사를 이어갔다.
혼자 와인을 벌컥벌컥 마시는 나를 보며 옆테이블에서 말을 걸어온다.
"그래, 오늘은 축하하기 좋은 날이지. 어디서부터 걸어왔어?"
라며 간단한 질문을 시작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대만에서 온 친구였으며 가볍게 통성명을 하고 서로의 출발지를 시작으로 간단한 대화가 오갔다.
약 100km를 걸었다는 이 친구는 나의 프랑스부터 걸어왔다는 얘기에 놀라며 어땠냐고 물어본다.
'어떠긴 뭘 어때. 엄청 힘들었지... 아휴 죽겠다 아주 그냥! '이라는 문장이 먼저 스치고 지나갔으나
"그 건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지만, 좋은 경험 중 하나였어."라고 잘 돌려서 얘기했다.
이후 서로에 대해 가벼운 문답 후 나의 저녁식사를 보고서는 본인도 장을 보러 가겠다면서 어디 마트에 다녀왔냐고 묻기에 마트 위치를 알려주는 것을 마지막으로 대화는 끝이 났다.
대화를 끝으로 풀려버린 긴장감에서 일까. 식사 후 가볍게 젤라토로 디저트를 먹고 입가심으로 펍에 가서 맥주와 올리브를 먹었다.
풀려버린 긴장감과 포만감으로 여정중 가장 깊게 잠든 하루였다.
여러 감정들이 오갔던 하루가 지나고 개운해진 다음날.
아침에 미사를 보기 위해 대성당을 다시 방문했다.
그렇게 나의 인생 첫 미사는 이곳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서 시작되었다.
성지답게 비교적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성당 내에 좌석들은 빠르게 채워져 나갔으며 미사는 스페인어와 영어로 진행되는 듯하였다. 엄숙한 분위기에서 진행되는 미사는 체감상 30~40분가량 진행되었고 미사도중 촬영은 금지되었으며 식순 마지막에 매달린 향로를 도르래로 움직이는 순간부터 촬영이 되는 분위기였다.
미사 중 눈치껏 일어나고 앉거나 옆사람과 간단한 허그나 악수와 같은 순서를 따라갔으며, 차분하고 무겁게 진행되는 미사의 분위기가 어색하였으나 새로운 경험이었다.
대성당의 한가운데에 있는 돔에는 이 대성당에 세워진 유명한 향로인 '보타푸메이로'를 흔드는 도르래 장치가 있다. 보타푸메이로는 1851년에 금세공업자 호세 로사다가 제작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의 보타푸메이로는 세계에서 제일 큰 향로이며, 무게는 80 kg (180 lb)이고 높이는 1.60 m (5.2 ft)이다. 평상시에는 대성당의 도서관에 전시되어 있으나, 특정 중요 종교 행사 기간에는 40 kg (88 lb)의 숯과 향이 채워진 채 도르래 장치에 부착된다. 환희년 (성 야고보 축일이 일요일에 돌아오는 해)에 보타푸메이로는 순례자들의 미사에 사용되기도 한다. 붉은색 로브를 입은 '티라볼레이로스'(tiraboleiros) 여덟 명이 줄을 잡아당겨 트랜셉트 지붕에 거의 닿을 정도로 흔드는데, 속도가 거의 80 km/h (50 mph)에 다다르며 두터운 향 연기를 퍼트린다.
- 해당 문단은 위키피디아에서 가져왔습니다.
이렇게 아침 미사를 보고 나서 이 걸음의 에필로그인 피스테라에 가기 위해 다시 배낭을 메고 이동을 시작한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이 장소를 끝으로 보통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아니면 다른 국가로 넘어들 가는 분위기였지만 왠지 순례자의 길을 걸었다는 이 감동의 불씨가 있지 않고서는 피스테라를 생에 다시 방문을 계획할 일이 있을까? 하는 마음에 피스테라까지 가기로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