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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표류기 12화

순례자의 길 - 작은 깨달음

순례자의 길-5

by 외노자O

부르고스를 지나고 나니 큰 마을은 대체로 보이지 않았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어느새 유럽에 넘어온 지 한 달이 되어가고, 점점 품경도 익숙해지고 특출 나게 눈에 띄는 게 없다 보니 감정의 변화가 점점 줄어갔다. 게다가 점점 이 행군이 적응이 되어가는 것도 한몫했으리라.

순례자의 길 루트를 검색해 보면 데일리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반복되는 일정은 점점 속도가 붙어 하루 25킬로씩 걷던 걸음은 하루에 30~40킬로 가까이 걷게 되었으며 계속되는 평탄한 길 또한 속도에 박차를 가하게 했다.


아침 6시에 기상과 함께 도시락을 챙기고 알베르게를 박차고 나와 아직 해 뜨지 않는 새벽녘부터 하염없이 걷기 시작해 도중 배고프면 간식을 챙겨 먹었으며, 중간중간 작은 마을에 들러 커피를 마시는 게 반복되는 이 일과는 오후 5시 전후로 끝나는 것이었다.

7to5 일과인 이 하루들은 5시가 넘어서 오늘 머무를 숙소를 주변을 둘러보며 장을 봐오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이 일과는 이제 점점 일상이 되어 익숙해졌다.


이 구간이 비교적 지루한 것도 있었지만 이 여정 자체가 점점 순탄해지고 몸이 적응하니 편해져서 그런지 길을 걸으며 별에 별 생각을 다 한다.

왜 그런 생각 다들 한 번씩 하지 않는가. 나는 어디서 왔으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그리고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올바름이란 무엇인가 등등. 미래에 대한 건설적인 포트폴리오들마냥 3년 뒤, 5년 뒤, 10년 뒤에 목표하는 자리에 올라가야겠다가 아닌, 삶의 근원적인 것에 대한 그런 고민들 있지 않는가? 어쩌면 이런 뒤늦은 사춘기스런 생각들은 점점 몸이 적응되니 평소 풀어볼 엄두가 나지 않아 꺼내지 못했던 생각들을 하나 둘 꺼내어 곰곰이 생각해 본다. 이 개똥철학 같은 것들을 시작으로 마음속 책장 깊숙한 곳에 꼽혀있던 정리안 된 낙서장까지 천천히 펼쳐본다.


언젠가는 정리정돈이 필요했다. 정리안 된 생각은 어지럽혀진 방처럼 나를 산만하고 흐리게 만들었기에.

너저분한 생각의 방. 바빴던 날들로 인해 방치해 두었던 창고처럼.

그리고 모처럼만의 휴일에 대청소를 하는 듯이 하나 둘 나의 널브러져 있는 것들을 들춰내어 필요한 것들과 불필요한 것들 그리고 남겨야 할 것 들을 하나하나 정리 정돈해 나간다.

어쩌면 나의 인생에 있어 인터미션 같은 이 짧은 시간 속에서 나의 좁디좁은 내면의 방을 조금이나마 넓혀보는 구간이었을지 모르겠다.




그렇게 하루하루 잡생각으로 가득 채워 걷다 보니 어느덧 시작한 지 보름이 훌쩍 넘었다.

중간에 사하군이 그나마 기억에 남았으나 레온에 도착하는 순간 다시 또 별천지 같은 도시가 반갑게 맞아준다. 확실히 도시라 그런지 멋진 옷차림의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오래된 보이는 카페에서 고급스러운 현대식 차림의 사람들이 앉아 와인을 마시는 걸 보니 시간을 뛰어넘는 멋진 장면으로 보인다. 한국의 시선에서 본다면 마치 고풍스러운 전통찻집에서 디올 코트를 입고 우아하게 백주를 마시는 느낌일까 싶다.


모처럼의 도시에 왔기에 에어비엔비를 통해 적당한 숙소를 예약해 묵었으며 밝을 때의 도시와 저녁때의 도시를 배회하며 도시 하나하나를 훑어본다.

성당을 찾아 들어가는 길은 왠지 모르게 아웃렛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길목을 지나니 확실히 웅장한 건축물들과 아름다운 거리가 펼쳐진다.

사람들의 발길이 먼저 행하는 성당을 보며 가볍게 멀찍이 앉아 천천히 배경을 눈에 담았다.

밝은 대낮의 화려한 대성당의 외관은 경원감을 자아냈으며 저녁의 대성당은 고고하게 빛을 밝히는 듯하다.


도시에 온 기념으로 작은 마을에서 먹기 힘든 매운 음식을 찾아 거리를 배회하던 중 인도음식점이 눈에 보여 홀린 듯이 들어갔다. 한식이 그리운 것도 크지만 그 매운맛이 주는 그리움이 크게 다가오는 듯하다. 아쉬운 데로 메뉴판에 있는 고추그림을 보고서 최대한 맵게 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새우카레와 추천받은 메뉴를 주문했다. 매운 게 정말 당겨서 그랬는지 마치 국밥을 먹듯 땀 흘리며 열심히 먹었다.

식사를 부랴부랴 후 저녁에 조명을 받고 있는 대성당을 포함해 가우디가 건축했다는 카사 데 보티네스를 구경해 본다. 저녁이라 입장은 불가했지만 외관을 본 것 만으로 만족하고 돌아가기로 한다.


대성당 앞 거리
레온 대성당 / 카사 데 보티네스(Cass de Botines)
인도음식 / 숙소




정처 없이 걷는 이 길. 모든 순간이 아름답게 보이기도 합니다.




레온을 지나 아스트로가에 가는 이 길 이쯤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타이완에서 온 한 커플은 나를 큰 충격과 함께 반성하게 했다.


요 근래 무리를 해서인지 발목 통증이 수시로 찾아왔고 이 막연한 걸음에 대해 힘들고 지친다고 느껴져 '내가 왜 이걸 하고 있나...', '이만큼 했으면 할 만큼 한 거 같은데 버스나 기차 타고 바로 종착지인 산티아고로 그냥 갈까....' 하는 생각을 꽤나 자주 할 시기였다.

어차피 아무것도 예약한 게 없고 그때그때 발길 가는 데로의 일정이다 보니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돌아갈 수 있는 지금 이 상황. 그냥 집에 갈까 하는 심마에 빠져들 때쯤 저 멀리 내 눈앞에서 걸어가는 한 커플이 달그락거리는 거슬리는 소리와 함께 눈에 밟히기 시작한다. 달그락거리는 바퀴소리는 카트 같은 것에서 나는 소리였다. '짐이 얼마나 많길래 카트에 짐을 싣고 다니는 건가? 요란도 하다.' 싶어 걸음을 재촉해 그들을 앞질러 거슬리는 소리를 뒤로할 생각에 속도를 내어 걸어갔고 그들에게 다가가 부엔카미노 인사를 건네려는 순간 눈은 동그래지고 머리가 하얘졌다.

아이와 함께 하는 그들은 나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으며 그들의 얼굴에는 아무런 불평도 그늘짐도 없었다.

집 앞 공원을 산책 나온 듯이 그저 서로 즐겁게 얘기를 나누며 천천히 이 길을 유모차를 끌며 걸어가고 있었다.


대만에서 왔다는 이 가족은 나에게 하나의 깨달음이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 했던가.

불행을 유발하는 나의 불만 섞인 이 짜증은 내 앞 가족의 행복한 미소를 보고 가루처럼 부서져 사라졌다.

나는 크리스천은 아니지만 만약에 선한 크리스천의 이미지를 상상해 보라 하면 주저 없이 이 커플의 모습을 떠올릴 듯하다.


사람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이 있는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나오는 3가지 질문이다.

어쩌면 나는 이 첫 번째 항목을 이 가족에게서 깨달았고 미소를 짓는다.


나보다 더 힘든 이 상황에 오히려 나의 안부를 물으며 걱정하는 그들의 눈빛에는 선함이 가득하다.

이 길을 걷고 있는 것은 나와 동일한 행위이나 저 사랑스러운 아이로 인해 이 길의 난이도는 말할 수 없이 올라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부의 마음은 아이에 대한 사랑과 이 길을 걷는다는 감사함으로 가득했기에 타인에 대한 이타적인 태도 또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듯하다. 오히려 발이 안 좋아 보이는 나를 보며 먼저 걱정과 함께 본인의 약을 건네주려는 그 모습에 감사함과 부끄러움을 느꼈다.


많은 내색은 못했지만 초라해진 나의 마음과 함께

나는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짧지만 강렬한 만남을 뒤로하며 아스트로가로 마저 향했다.

너무 멋있어서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여정 중에서 아스트로가라는 지역은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초콜릿으로도 유명한 마을에 멋진 대성당과 가우디의 초기 작품인 주교궁이 있기 때문이다.

확실히 계획된 일정은 아니었지만 순례자의 길이 끝나고 포르투갈을 거친 뒤 모로코로 이동해 카사블랑카 해변에서 느긋하게 이 여독을 풀 생각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이 주교궁으로 인해 바르셀로나를 가게 되었다.

가우디의 작품을 보기 위해.

주교궁에 입장하면 대칭과 곡선 그리고 빛을 이용한 구조가 아름답게 펼쳐진다. 초기 작품이 이 정도인데 그의 전성기 시절과 마지막 작품은 어떨까 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결국 이 건축물로 인해 바르셀로나를 가게 된다.


아스트로가 가는 길
도시배경/ 동네마트 향신료 코너 / 마트에서 구매한 음식들로 해결하는 석식
알베르게(테라스)에서 바라본 밤의 풍경

-아스트로가 대성당.

순례자 여권을 지참하면 입장료가 할인됩니다.

외부, 내부 화려한 장식은 보는 즐거움을 더해주고 성당 내부 중간에 VR기기가 있습니다.

VR기기를 쓰면 성당 내부 구조를 앉아서 편히 감상할 수 있습니다. 대성당이라고 할 만큼 성당이 크고 웅장합니다.

장엄하고 고요한 분위기가 순례자의 길 일정의 무드에 매우 잘 어울립니다.

-주교궁

가우디의 초기 작품이며 완공은 가우디가 아닌 '리카르도 가르시아 게레타'라는 인물이 마무리 지었습니다.

가우디의 후원자였던 그라우 주교가 사고로 인해 사망하였고 새로운 교회 당국 간의 불화로 가우디는 이 주교궁의 건축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나오게 됩니다.

주교궁으로 만들어졌던 이 건축물은 현재 박물관으로 운영되며 여기 또한 순례자의 여권을 지참하면 입장료가 할인됩니다.(순례자 여권 도장 찍어줍니다.)

입장권을 구매하는 곳에서 기념품을 파는데 개인적으로 은으로 만든 제품과 책갈피가 예쁘더군요.

혹자는 외관이 디즈니랜드성을 닮았다고도 하네요.




아스트로가를 지나 폰페리다를 지나갈 때쯤 눈에 띄는 성이 있어 잠시 발걸음을 틀었다.

12세기에 지어졌다는 템플 기사단의 성이라는데 멀리서부터 웅장한 게 눈에 띈다.

입장하는 다리를 건너면 매표소가 보였으며 마침 매표소 뒤에 짐 보관을 해줬다.(따로 관리를 하는 게 아닌 누가 가져가도 모를 정도로 가방들이 쌓여있으나 타인의 무거운 가방을 가져가는 사람들은 없는 듯했다.) 그리고 순례자 여권에 도장도 찍어주기에 여유가 있다면 들러서 마을의 전경과 중세시대 성의 디테일한 모습을 보는 것도 좋은 옵션인 듯하다.


성 내부도 내부지만 성곽에 올라 마을 전경을 바라보면 이미 유럽이지만 유럽느낌 가득한 건물들의 전경과 초록빛 조경들이 조화롭게 보인다.

성에서 보는 마을 전경은 어쩌면 동화 속에 들어온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만큼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했고, 성 내부는 실제 중세시대의 느낌을 온전히 받을 수 있어서 좋은 체험의 장이 되었다.


성 내부에서 바라본 마을 풍경





흐렸다 맑았다 하는 날씨의 변동폭이 심해지는 듯하더니 결국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앞으로 200km가 남은 시점부터 서서히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데 빗방울은 점점 굵어져만 간다.

여정을 출발하기 앞서 한국에서 비 와서 고생했다는 후기들을 본 기억이 있는데, 속으로 안도하며 이 정도까지 비가 안 왔으면 앞으로도 안 오겠거니 하는 안일한 생각에 바로 뒤통수를 맞았다.

가방 가장 밑에 박아두었던 판초우의를 꺼내기 위해 짐을 다 들어내어 우의를 주섬주섬 꺼내 입고 출발하는데 이미 비에 홀딱 젖어 상거지 꼴이 따로 없다.

어쩌겠는가. 소 잃고 외양간도 고치지 않으면 소를 키우지 말아야지. 이제라도 우의를 정비하며 가방 상단에 배치하며 앞으로의 여정을 걸어간다.

애석하게도 이때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도착 때까지 걸핏하면 내리기 일쑤였다.




순례자의 길 중에서 처음으로 접한 한식.

카카벨로스 지역의 작은 슈퍼마켓이었는데 식료품과 함께 라면을 끓여서 판매를 하는 가게였다.

조금 차가운 밥 한 공기와 신라면 그리고 김치가 같이 제공되었다. 파리부터 지금까지 한식 없는 식단의 여행은 라면과 식어버린 밥 한 그릇이 너무 소중하게 다가왔다.

날은 추웠고 허기진 저녁. 별거 아닌 그냥 신라면에 찬 밥 한공기지만 이때의 라면은 군대에서 행군 중에 먹었던 육개장 라면보다 더 감동스럽게 다가왔다. 오랜만에 한식이라 그런지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과 함께 괜스레 한국 생각이 나서 부모님께 안부인사를 보이스톡으로 전했다.

언제나 어색하지만 잘 지냈냐는 안부와 함께 여정의 과정을 최대한 압축해서 덤덤하게 풀어놓는다.

내심 걱정하는 목소리에 별거 아니라는 듯 팔자 좋은 웃음소리를 들려주며 마치는 가벼운 통화였으나 허기진 마음이 채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통화를 마치고 동네를 묵묵히 걸으며 문뜩 독립한 지 십수 년이 지났지만 집 나오면 개고생이라는 말이 와닿는다. 이 라면하나에도 감동하는 걸 보면 말이다.


그렇게 밤은 깊어가고 여정은 계속된다.

라면 한 그릇(7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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