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연재 중 표류기 10화

순례자의 길 - 부엔카미노

순례자의 길-3

by 외노자O


어느덧 여덟째 날.

길을 따라 걸으며 건네는 '부엔카미노' 인사가 어느덧 자연스레 나온다.

이쯤 되니 이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격려하듯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적어도 이 인사 안에서는 국적과 남녀노소가 불문했다.


이른 아침 출발에 앞서 나의 루틴이 되어버린

guns N’ roses의 sweet child o mine를 의식적으로 들었다.

해가 뜨지 않아 아직은 어두운 새벽녘

이 새벽녘을 여는 행진곡은 전주만으로도 여명이 떠오르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루를 힘차게 열고 걷기 시작한다.

걷다 보니 알베르게에서 스쳐가는 투숙객들에게 듣기로는 한국인이 많다고 했는데 지금껏 길을 걸으며 만난 한국인은 다섯 명 남짓 되는 듯하다.

생각보다 드문드문 보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크게 다를 건 없었다.

대부분 부엔카미노 뒤 ”파이팅“하며 가벼운 인사를 덧붙이며 솔바람처럼 지나갔다.




각자가 마주한 이 길.

길은 여전히 끝을 모르게 펼쳐 저 있고, 우리 모두 각자의 카미노를 위해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각자의 속도와 여정에 맞게 템포는 다르지만

모두가 내딛는 길들은 수확이 끝난 밭들 사이로 장엄하게 늘어져있다.


중간중간 해바라기 밭과 올리브나무 밭이 펼쳐져 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염장되어 있는 올리브만 먹어봤지 나무에서 열리는 건 여전히 신기하기만 하다.

이런 생경한 경험들은 어쩌면 마치 양질의 책을 읽는 것과 비슷했다.

눈으로 새로운 것들을 읽어가는 이 여정.

매 페이지마다 새로운 구절은 개연성 가득한 일정의 연속이었다.

중간중간 인상적인 구절에 밑줄을 긋는 것처럼 인상적인 부분에서 차분히 앉아 눈으로 밑줄을 그었다.

때로는 30분, 길게는 한 시간가량을 가만히 앉아 이 길을 눈에 담았다.

사진 찍어둔 배경은 책갈피가 되어 종종 회상의 표지판이 되었다.


다소 기름지게 표현했지만

단순히 걷고, 보고, 쉬고의 반복인 이 패턴은

먼발치에서 돌이켜보면

본질적이고 원초적인 행위였을지도 모르겠다.






첨부된 사진 중에는 길바닥에서 먹는 사진이 다소 많다.

파리에서부터 시작된 길바닥에서의 취식에 대해 익숙해진 것도 있지만 시에스타로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식당문을 열지 않아 길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위해 매일같이 장을 보고 다음날 먹을 음식들을 미리 준비해서 걷는 길 중간중간 먹었다.

새삼스럽지만 다시 한번 새벽배송이 편리하구나 느끼는 순간이었다.

가능한 대로 식당에 가서 사 먹기는 했으나 빠른 칼로리 소모는 금방 허기지게 한다.

그도 그럴게 짊어진 배낭의 무게는 17킬로 내외였다.

동키라고 불리는 배낭 이송 서비스는 있었지만 내가 오늘 어디까지 갈지 나 또한 몰랐기에 나의 짐을 짊어지고 가야만 했다.

이렇게 배낭에 음식을 넉넉하게 담고서 아침과 점심, 점심과 저녁 중간에 식사 비슷한걸 한 번 더 했다.

이를 위해 숙박할 마을이나 큰 마을을 지나가면서 마트나 시장을 들러 과일과 같은 먹고 싶은걸 미리 구매 후 숙소 냉장고에 보관해 뒀다가 다음날 아침에 챙겨서 다녔다.

어느 정도 식비도 줄고 조금 더 현지스러운 맛있는 것들을 많이 먹으며 느끼는 경험이 좋았다. 다만 무거워지는 가방으로 값을 지불해야 했다.



올리브나무밭 그리고 포도밭




걷다 보면 때때로 마주하게 되는 시에스타의 도시 풍경

작은 소도시를 가로지르며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느긋함으로 가득하다.

한국이었으면 한창 업무에 치일 시간이었겠으나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이 상반된 분위기의 풍경은 이질적임과 포근함을 동반하며 다가온다.

이 차분한 무드에 맞춰 종종 들려오는 거리의 버스킹소리에 내 지갑의 동전은 항상 남아나질 않았다.


그날그날 식료품들을 사며 체감하는 게 대체적으로 빵값과 과일의 가격이 저렴하다.

한국에서 파는 가격을 생각하면 마치 마감세일 때 '이래도 안 사?' 하는 듯 한 가격들이다. 물론 유혹에 약한 그냥 지나치치 못했고, 그날그날 먹고 싶은 빵과 과일들을 구매하고 휴대하기 편한 팩와인이나 즉석에서 샐프로 착즙 하는 오렌지주스를 구매했다. 특히 한국에서 맛보기 어려운 생 라즈베리 그리고 복숭아와 같은 과일들을 자주 구매했다. 라즈베리는 1팩에 2유로(약 3,000원)가 채 안 되는 금액이었으며 왠지 돈 쓰고 돈 버는 기분이 들었다. 특히 복숭아를 매일 먹었는데 개인적인 입맛으로는 납작복숭이보다 황도복숭아가 너무 맛있었다. 캔에 들어있는 황도복숭아 맛과 어느 정도 비슷하였으나 아삭거리는 식감과 풍부한 과즙은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맛이었다. 일정 중 항상 어딜 가던 우선적으로 눈에 보이는 대로 집었다.






여정 중 나헤라의 입구를 지나가는 길

느닷없는 음악소리와 함께 다소 요란스러운 시가행진이 보인다. 뭐라는지는 모르겠으나 흥겨워 보여 가방을 잠 내려놓고 구경을 한다.

이 요란하고도 즐거운 광경은 근처 알베르게 투숙객을 비롯해 모두를 나오게 했다.

어린 시절 플루트와 드럼을 나름 오랜 시간 다뤘기에 시가행진을 몇 번 참여해 본 적이 있었고, 내심 반가운 마음과 들떠 보이는 도시 분위기에 오늘은 여기서 묵기로 결정했다.

근처 알베르게에 체크인 후 간단히 정리하고 나와서 이 행진을 마저 구경했다.


그렇게 보고 있자니 나에게는 다소 큰 문화충격이 다가온다.

학생처럼 보이는 인원이 요란하게 시가행진을 하는 모습은 제삼자에서 보면 확실한 희극이었다. 하나 로터리를 장악하며 교통을 마비시키는 이 행진은 교통정체를 유발했고 유혈사태를 걱정했던 나는 이내 괜한 걱정이었음을 알게 된다.

한국이었다면 비키라고 고성방가를 지를만한 이 상황은 그 누구도 눈살 찌푸리지 않고 즐기는 분위기였다. 오히려 길어지는 기다림에 차에서 일부 운전자가 나와 같이 춤을 추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시에스타도 그렇고 참 유쾌한 나라인 게 다시 한번 체감이 된다.

그렇게 유쾌한 행진과 함께 시에스타가 지났고 근처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기로 한다. 들뜬 분위기에 발길이 이끄는 대로 식당 들어갔고, 가서 보니 바에 걸터앉아 술 한잔 하며 수다를 떠는 현지인들이 보인다. 그들처럼 이곳에 녹아들고 싶어 나도 바에 들어가서 맥주 한잔을 우선 주문하며 천천히 메뉴를 골라본다.


“올라~포르빠보르 우노 세르베자”

(안녕하세요~ 맥주 한 잔 주세요.)


다른 건 몰라도 이 주문만큼은 입에서 자연스레 나왔다.

이후 바 테이블에 먼저 앉아 맥주를 마시며 식사 메뉴를 주문했고

식사 메뉴가 나옴과 함께 식사 테이블로 옮겨 마저 식사를 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친 뒤

올리브를 몇 번 더 받아먹으며 술을 한 껏 마시고 식당 주인과 가벼운 대화를 끝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렇게 또다시 아침을 맞이하며 부지런한 발걸음을 옮긴다.








keyword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