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 포르투 (16)
무사히 순례자의 길을 갈무리하며
피스테라에서 산티아고로 그리고 다시 버스를 타고 산티아고에서 포르투로 이동했다.
산티아고 버스터미널에서 3시간 남짓 이동했을까? 풀려버린 긴장과 누적된 피로로 인해 버스에서 쓰러져 잠들었고 에어팟 배터리가 다 될 때쯤 도착한 포르투.
버스 탈 때는 제법 맑았는데 도착할 때쯤 되니 불안하게 흐리다.
'어어.. 이거 비 올 거 같은데...?' 하는 생각에 버스터미널에서 지하철을 타고 서둘러 번화가로 이동을 한다.
아니나 다를까 지하철에서 밖으로 나오니 역시나 예상이 맞았다. 한숨 섞인 표정으로 터벅터벅 나와 빗속을 향해 뛰어들었다. 근래 들어 비를 안 맞은 날이 없는 듯하다. 빗방울은 점점 굵어졌으며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처량해 보이는 나를 더 처량하게 만들었다.
힘들게 짊어진 배낭을 내려놓고 싶은 마음에 예약한 숙소로 뛰듯 이동했다.
숙소로 뛰어서 가는 길목에서 옆을 보니 멋진 건물들이 보인다. 비 오는 길목에서 서둘러 가는 길이 주마간산이었겠으나 그럼에도 아름다움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나갈 때는 몰랐는데 알아보니 시청사 건물이란다. 화려하고 아름다워서 괜스레 출근하는 공무원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생판 남들과 함께 숙박하는 걸 질색팔색 했겠으나 어느덧 이제는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가벼운 대화와 함께 그들의 여행 일정을 물어보며 정보를 얻는 게 제법 쏠쏠하기도 했고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외국인들과 섞여 한방에서 지내겠나 생각하니 꽤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수긍이 쉬워졌다.
그렇게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맞으며 깔끔하다는 평이 많은 게스트 하우스로 망설임 없이 향한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에 금세 도착한 숙소. 리셉션에서 체크인을 하며 기다리는 중 제공되는 웰컴드링크인 포트와인 한잔에 눈이 뜨인다. 마음속 작게 쾌재를 부르며 이거다 싶어 추운 몸을 달래기 위한 핑계로 포트와인 12y이라고 적혀있는 것을 한잔 추가로 주문해 마셔본다.
역시 포트와인답게 빠르게 취기가 올라온다. 잔을 비우던 찰나 녹아버린 추위와 들뜬 마음을 안고 객실로 안내를 받았고 직원에 안내를 받아 객실에서 짐을 풀었다.
연박없는 순례자의 길. 매일 다른 곳에서 잠을 청하는 이 유목민 같은 경험은 짐을 금방 풀고 싸게 해 준다.
짐을 풀고 창문을 바라보니 때마침 비는 그쳤고 이때다 싶어 숙소에서 나와 포르투 명물이라는 프란세지냐를 먹기 위해 근처 눈에 보이는 식당에 들어간다.
한껏 기대했던 프란세지냐를 주문하고 화이트와인 한잔을 곁들여 같이 주문했으며 서빙되는 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받아보고 나니 음식은 적셔먹는 샌드위치 느낌에 겉에는 치즈가 덮여있고 내부는 빵 안에 고기와 햄이 들어있었다. 쌀국수에 넣어먹는 빵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다. 일반적으로 어니언 수프에서의 위에 올려져 있는 빵에 조금 더 가까운 식감이었고 소스는 걸쭉하고 버터와 토마토소스 풍미가 나는 듯하다.
보통 혼자서 2가지 이상 음식을 주문하는데 음식을 받아보고 나니 여기서 더 주문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포만감도 그렇고 칼로리가 상당히 높아 보이기에 이거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게 먹었다.
단일메뉴의 식사를 마치고 조금 쌀쌀한 날씨와 어울리는 디저트를 찾아 돌아다니던 중 눈에 띄는 예쁜 가게를 발견했다. 안에 들어가서 보니 동그란 구형 모양의 빵과 음료를 팔았으며 빵은 대구로 만든 크로켓 느낌의 빵인데 생긴 건 공룡알 빵처럼 생겼다. 빵 안에 말린 대구살과 치즈를 넣어 만들었다는데 가게 인테리어가 이뻐서인지 홀린 듯 들어가서 주문을 했다.
방금 밥을 먹었기에 맛보기로 1개만 주문했고 1개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어보니 새로움에 대한 경험으로 1개는 괜찮지만 2개는 좀 곤란할 거 같다. 같이 주문한 포트와인은 나름 괜찮았으며 유리잔까지 같이 포함된 금액으로 판매가 이뤄졌다. 기념품으로 챙길까 잠시 고민되었지만 어림도 없다. 배낭 안에 넣자마자 10리도 못 가서 부서질게 확실했기에 마시고 잔은 그냥 괜찮다면서 반납했다.
야외테이블에서 간단히 주문했던 빵을 먹으며 오늘 돌아볼 관광지 경로를 잡아본다.
상벤투 역을 지나 산투 일데폰소 성당을 거쳐 동 루이스 다리까지 경로를 설정해 차근차근 걸어보기로 한다.
발걸음을 뗀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역을 지나가는 도중 해리포터에서 나올법한 검은색 망토를 입고 있는 네댓 명의 무리가 보인다.
해리포터의상의 영감을 받았다는 코임브라 대학교의 교복이었고 중세시대 느낌과 주변 건축물의 배경이 꽤나 잘 어우러진다. 조금 더 이동해 성당 앞을 지나가는 길. 성당 외관 공사 중이었기에 아쉬운 데로 성당도 멋지지만 때마침 지나가는 파란색 쓰레기차까지 멋지다. 다소 미화된 기억인지 모르겠으나 쓰레기차까지 도시 미관을 해치지 않는 느낌이라 눈이 즐겁다.
즐거워진 눈은 세상을 더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 뒤이어 다음 행선지인 루이스 다리를 향하던 중 길을 걷다 보니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난다. 군밤이다. 멀리서부터 보이는 연기와 함께 고소한 냄새가 풍겨온다. 큰 골목마다 군밤을 팔고 있기에 한 봉지 샀다.
아무래도 디저트로 먹었던 빵이 시원찮았나 보다.
그렇게 군밤 한 봉지를 달랑달랑 들고 다니며 멀리서부터 보이는 루이스 다리를 행해 걸었고 얼마 걷지 않아 포르투의 명물 중 하나인 루이스다리를 도착한다.
다리는 지상철이 오고 갔으며 빠른 속도로 오가는 게 아니었기에 열차가 오는 게 아니라면 양쪽을 횡단하기에 문제가 없었다.
다리 위를 지나는 지상철이 마치 한강을 건너는 한국의 지하철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군밤을 하나씩 입에 가져다 넣으며 도우로 강을 바라본다. 차분히 평화로운 분위기에 녹아들기로 한다.
때마침 에어팟에서는 coldplay의 ever glow가 흘러나왔으며 소리 없이 따라 부르며 천천히 이동하다 보니 모루정원까지 금세 도착했다.
모루정원에 도착해 한적한 벤치들 사에에 앉아 강가를 바라보며 음악을 들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날수록 구름은 조금씩 개였다.
적당히 구름 낀 날씨는 더위를 가시게 하였고 드문드문 햇빛이 잔잔하게 내려쬐었으며 바람은 선선하게 불어와 어느 한적한 가을날 공원에 누워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앞에는 잔잔한 테마의 음악들로 버스킹 공연이 한창이었고 나는 술기운과 함께 느긋하게 바닥에 절반쯤 누워 이 도시에서 자유로움을 만끽한다.
마치 20대 초반의 어린 시절 한창 음악에 빠져 이곳저곳 찾아다닐 시기의 록 페스티벌과 재즈 페스티벌이 생각나는 느낌이다.
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놀고 난 뒤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적당히 눈에 보이는 거 아무거나 대충 주워 먹고 술이 슬슬 깰 때쯤 스테이지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에 이끌려 놀다 보면 하루가 다 가지 않던가. 경험자라면 옅은 미소가 번질만한 그런 경험들.
나는 이 도시에서 그런 일상을 보낸다.
아침에 일어나 가볍게 커피 한잔 후 주변 산책 겸 관광을 하다 보면 점심. 점심에 식당에서 추천하는 포트와인을 두세 잔 마시다 보면 금방 오르는 취기에 근처 광장으로 가서 한적한 버스킹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기도 하고 때로는 꾸벅꾸벅 졸며 시간을 보냈다. 저녁에는 밴드구성의 버스킹이 많아 와인 한두병 들고 마시며 음악에 몸을 맡기며 즐기다 보니 하루가 금방이었다.
돌이켜보면 3박의 포르투 일정은 한량 같게도 술 먹고 버스킹 구경하는 기억이 대부분이다.
어쩌면 순례자의 길 완주를 자축하는 나만의 뒤풀이였는지도 모르겠다.
아, 물론 기억을 남기기 위해 틈틈이 사진을 찍었다.
이튿날부터는 먹구름은 개이고 날은 화창해졌다.
아침에는 날씨가 좋아서 산책 겸 수정궁 공원에 가서 아침식사로 챙겨 온 내 빵을 새들과 함께 나눠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잘 정돈된 조경에 아이들 웃음소리가 여기저기 새어 나와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조류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조금 곤란할 만큼 여러 새들이 많이 있었다.
뒤를 돌아 다른 곳으로 가려는데 배가 덜 고팠는지 새들이 따라와 빠른 걸음으로 달아나듯 자리를 이동했다.
도망치듯 걷다 보니 조금 더워서 번화가를 지날 때 젤라토 한 컵을 구매한 뒤 도시를 마저 구경한다.
어린 날 퍼먹던 3색 아이스크림이 생각나 바닐라 초코 딸기로 골랐다. 어느덧 이제 적은 나이는 아닌데 아직도 왜 그 아이스크림이 좋은지 모르겠다.
이동하는 길 골목 곳곳에 아줄레주 양식의 타일들로 장식된 건물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아랍어로 '작고 예쁜 돌'이라는 뜻을 가진 아줄레주는 그라나다에 있는 알람브라 궁전을 방문한 마누엘 1세가 타일장식에 매료되어 신트라 왕궁에 처음 장식하였다고 한다.
그 뒤 포르투갈 전역으로 퍼져나간 타일공예로 포르투갈에서 오랜(약 500여 년) 역사가 있는 타일공예였기에 도시 곳곳에는 심심찮게 볼 수 있었으며 관련된 각종 기념품 또한 많이 판매되고 있었다.
젤라토를 야금야금 퍼먹으면서 도시 경관을 찬찬히 뜯어본다.
길을 걷다 보니 유독 긴 줄이 보인다.
해리포터 기숙사의 영감을 얻었다는 렐루서점의 입장줄이었으며 예약을 하지 않고는 입장이 안된다는 말에 빠르게 다음날로 오후로 예약을 잡았다.
점심으로는 가볍게(?) 로스트 치킨과 와인으로 점심을 먹고 마저 도시를 탐험하기로 한다.
어제와는 확연이 다른 파란 하늘에 도시 분위기가 확연이 뒤바뀐다.
클레리구스 성당과 기념품 가게들, 멋진 건물들을 따라서 골목골목 걷다 보니 다시금 모루정원에 도착하였고
가벼운 간식거리를 사들고 분위기에 녹아든다.
잔잔한 음악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빠른 템포의 노래들로 변했고 그렇게 강변을 음악과 함께 바라보며 하루를 보낸다.
셋째 날
느지막이 일어나 숙소 근처에서 구매한 에그타르트를 두어 개 집어먹으며 전날 예약했던 렐루서점에 가기 위해 게으르게 밖을 나선다.
역시나 어제와 같이 입장줄은 시간대별로 상당히 많은 인원들이 대기 중이었으며 나의 입장시간의 대기줄에 맞춰 줄을 섰다.
무슨 놈의 서점을 들어가는데 미리부터 입장권을 구매하고 줄까지 서야하나라고 생각이 들 법도 하지만 서점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안 가기 어려운 장소 중 하나였기에 가능한 빠른 시간에 예매를 했으나 아쉽게도 그게 점심시간이었다. 입장 티켓은 9시부터 15분 간격으로 있으며 오픈런이 아무래도 사진을 찍고 감상하기가 가장 좋겠지만 티켓을 한참 전에 미리 예매하는 게 아니라면 구하기 어려웠기에 그나마 예약이 가능한 가장 빠른 시간대인 점심시간대를 예매하였다.
30분 정도 기다렸다 시간에 맞춰 입장하였으며 입장하니 확연이 다른 공간이 펼쳐진다.
화려한 계단이 먼저 보이는데 이 계단은 해리포터에서 움직이는 기숙사 계단에 모티브가 된 것으로 유명하다.
그와 동시에 출입구에서는 많은 인파가 들어가고 나오는데 입장티켓과 15분 간격의 입장라인이 있을 정도로 많은 인원이 왕래하기에 상당히 혼잡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 이유는 명확히 보였다. 서점 내부에는 생택쥐페리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으며 작가와 연관이 많은 서점이기에 생택쥐페리 코너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었다. 또한 해리포터 섹션도 별도로 마련되어 있었다.
쭉 둘러보니 책 가격이 상당히 비싼 편이었는데 이는 책 구매 시 입장권 가격을 책 가격에서 차감해 주는 구조였다.(책만 해당되며 다른 기념품과 굿즈들은 해당이 안 됩니다.) 책값이 비싸지만 입장권 가격이 아까워서 결국 어린 왕자 책 한 권과 이뻐 보이는 쇼핑백 서너 개를 사들고 나왔다.
책과 기념품을 구매 후 다시 숙소에 들러 기념품을 두고서는 다시 도시를 둘러보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모루공원 옆 높은 언덕에 위치한 세하 두 필라르 전망대에 방문해 루이스다리를 사진으로 남겨본다.
공원 바로 길 건너편 언덕에 있었으나 귀찮아서 미루고 미루다 결국 오늘 올라가기로 한다.
막상 올라와보니 전체적인 풍경이 잘 보였고 사진이 잘 나오는 스폿이었기에 많은 관광객들이 올라와 사진을 찍기 바빴다.
나 또한 가볍게 사진을 찍고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음악이 흘러나오는 모루정원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이 포르투의 마지막 밤이었기에 조금 더 늦게까지 이곳에 머물러보기로 한다.
벌써 3번째 방문이었기에 근처 마트에서 마실거리와 가벼운 안주를 싸들고 자리를 잡고 다시 이 분위기에 녹아든다.
정원에는 아이스박스에 물이나 맥주 와인들 파는 행상인들이 있었으나 걸어서 5분 거리에 큰 마트가 있으니 가급적 마트에서 마실 것들을 미리 구매하는 게 좋았으며, 또한 근처 공중화장실 줄이 매우 길기에 차라리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한잔 입가심으로 후다닥 마시고 화장실을 사용하는 게 훨씬 좋았다.
짤막한 팁을 남길 수 있을 정도로 어느덧 이곳에 꽤 적응이 되었나 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적당히 취기는 오르고 신나는 밴드음악과 함께 옆사람들과 함께 환호를 하며 분위기에 녹아들다 보니 시간이 금방이다.
이렇게 하루가 또 마무리된다.
신나게 놀고 난 뒤 다음날 아침
리스본으로 향하는 일정이 있기에 이른 아침부터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파리에서 고생을 해봤기 때문에 그 고생을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서둘러 준비하고 나왔으며 밖으로 나오니 이제 해가 슬슬 떠오른다. 그렇게 나는 리스본으로 향하기 위해 버스터미널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린다.
여행을 떠나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버스를 타는 기분은 언제나 설렘이 가득하다. 마치 이른 아침 공항버스를 타고 공항에 가는 것처럼.
내가 모르던 새로운 세상을 탐험하는 일은 늘 설레고 즐겁기에 오늘 아침도 설렘을 가득 안고서 리스본으로 향하기 위해 터미널로 이동한다.